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 결혼하여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굳이 고향 군청청사에까지 관심을 기울일 만큼 애향심이 높지도, 할 일이 없지도 않았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촉이 그쪽으로 닿았던 게 그녀 집안과 원수지간이었던 사람이 군수 자리에 오르고 나서였다. 바로 동생의 둘도 없던 죽마고우 홍석표였다.
동생의 죽음에 대한 울분이 저 뾰족한 청사로 향했다.
현숙은 악령을 퇴치하는 주술사의 주문처럼 ‘군수-석표….’ 두 단어를 되뇌며 탑돌이 하듯 주변을 돌았다.
건물을 돌아 주차장으로 막 나오던 참이었다. 낯선 트럭 한 대가 들어오고, 차에서 내리는 운전기사와 눈이 딱 마주쳤다.
“혹시 101호 상주라예? 아아 참, 거밖에 없네예.”
그는 혼자 묻고 답하며 서둘러 트럭 적재함에 실린 화환을 내려 바람처럼 안으로 사라졌다.
타인! 완벽한 타인의 등장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으며 현숙도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101호 앞에서 언니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누가 보냈어?”
현숙의 물음에 언니는 대답 대신 고갯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특별할 것 없는 하얀 국화꽃 화환 아래 ‘형제 일동!’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실망과 허탈감이 몰려왔다. 조금 전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트럭과 기사가 얼마나 반갑던지, 하마터면 뛰어가 반길 뻔했었다.
두 올케가 테이블에 아침 식사를 차리고 있었다. 다 합쳐 8명이었다. 아이들이 없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삼촌, 외삼촌 가는 길에 예를 갖춰야 할 것 같은…, 현숙의 마음이 열두 번도 넘게 오락가락했다.
미움과 원망의 종잡을 수 없는 감정 언저리에 남편도 있었다. 어제 형부와 술잔을 기울이며 히히대더니, 오늘은 식전 댓바람부터 카세트테이프 소리에 짜증을 내는가 하면, 억지로 밥을 넘기는 형제들과 달리 주방에서 커다란 양푼을 찾아 국을 퍼 담고는 밥 두 공기를 한꺼번에 말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육개장이 시원하다’며 올케에게 한 그릇 더 부탁해 땀을 닦아가며 후루룩 마시는 형부와는 난형난제로, 누가 더하고 덜하지 않았다.
부엌 설거지를 돕고 돌아서니, 남편과 형부가 믹스커피를 타 마시며 고스톱 판을 벌이고 있었다. 형제간 DNA를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언니가 현숙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시원하게 그들을 응징했다. 펼치고 있는 고스톱 판을 홱 둘러엎었던 것이다.
“이 여자가 와 이라노? 뭐하는 짓이라?”
“당신 집에 가소!”
“죽어가는 거 겨우 살리놨더니, 정신이 돌았나?”
“그러게, 안 돌아서 미칠 지경, 당신 동생이 이렇게 죽었어도 여기서 고스톱 판 벌렸겠나?”
“내가 처남 죽어라 켔나?”
“죽인 거나 다름없다. 엄마 아플 적에 우리 집에서 다문 몇 달만이라도 모시자고 사정했을 때 뭐라켔노? 결혼하면서부터 당신 부모 한집에 살며 수발했어. 그런데 엄마는 한 번도 모시지 못하고….”
소싸움 하듯 형부에게 돌진하려던 언니를 현숙과 오빠들이 붙들고, 형부는 남편이 막아섰다.
결국 현숙이 남편을 몰아세웠다.
“형부 모시고 나가! 발인할 때 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두 남자는 오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피가 섞이지 않은 두 이방인은 그렇게 퇴각했다.
빈소를 차린 후 가까이 지내는 친구 몇 명에게 연락을 하려는 현숙을 언니 오빠들이 강하게 말렸다. 부모상(喪)은 지인이나 동창회 등에 알리는 게 온당하지만 형제상은 관례도 아니거니와 예의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동생의 지난날을 기억하고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의 방문이 절실했다. 명치를 누르고 있는 응어리를 토해내고 싶었다.
점심을 먹은 기억이 없는데 오후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간간이 곡을 하던 언니도 더는 기운이 없는지 빈소 바닥에 물귀신처럼 풀어져 있었다. 카세트테이프가 한 치 오차 없이 도는 가운데 매캐한 향냄새와 연기는 점점 심해지자, 두 올케가 독한 향과 음악 소리에 몸이 아프다며 병원에 다녀와야겠다고 했다.
육신 편한 것조차 죄악이라는 생각에 참고 견디는 형제들과 그들은 분명 다른 족속이었다.
오빠들로부터 향과 라디오 볼륨을 줄이자는 이야기를 들은 언니는 보란 듯 향을 한 움큼 더 집어 향로에 꽂고는 라디오도 소리 끝까지 올렸다.
천둥 번개 치듯 쿵쾅거리는 소리와 매캐하고 코를 찌르는 연기가 전쟁 영화 장면 같기도 했다. 현숙은 오소리 작전 지령을 받은 군인들이 군악대를 동원하여 탱크를 밀고 내려온다고 상상했다.
선봉에 선 사령관이 명령했다.
“불편하고 거북한 사람 모두 가라! 내가 저지른 일, 내가 감당한다!”
“그래요, 올케들은 집에 갔다가 발인 때 오세요.”
형제들의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한 올케들이 방으로 들어가 한 보따리 짐을 챙겨들고는 빛처럼 사라졌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명의 전사를 더 퇴각시킨 작전은 바둑의 묘수와도 같았다. 공범끼리 나눠 가져야 할 떳떳지 못한 비밀을 그들이 몰래 들여다보며 히죽대는 것 같아, 못내 이물스럽게 느껴지던 중이었다.
끈끈한 핏줄로 연결된 4명이 남았다.
“어이, 모두 여어 와서 저어 좀 봐라!”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던 큰오빠가 뒤를 돌며 동생들을 부르자 둘째 오빠와 현숙이 다가갔다. 저 멀리 산 아래서 아이들 몇 명이 썰매를 타고 있었다.
“우와! 벌써 얼음이 얼었나? 무슨 소리예요? 밖이 얼마나 추운데….”
“우리 논에도 얼음 꽝꽝 얼었겠다….”
언제 왔는지 언니가 창가로 다가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치, 언니이?”
“저런 얼음장을 숙박업소에 비유하면 여인숙, 우리 논은 7성급 호텔이다!”
“키야아아! 우리 언니 표현 쥑인다…! 시인들 모두 다 죽었어… 맞다!”
사위어가는 거품처럼 허물어지던 언니가 함께 서 있는 자체로 형제들에게 고무적이어서 모두는 과장스레 수선을 떨며 화답했다.
형제들은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때의 시절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났다.
유년 시절 가장 행복했던 놀이가 썰매 타기였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변변한 고무통조차 없던 시절, 동네 아이들은 비료 부대나 나무판때기 아래 변변치 않은 철사 등을 박은 허접한 것으로 탔으나, 현숙네는 아버지가 훌륭한 재료를 사다 만들어준 고급 승용차 같은 썰매로 얼음장을 누볐었다.
언니 오빠들이 아버지와 함께했던 얼음장의 추억들을 하나둘 이어가자 현숙도 아련한 추억 하나를 건져 올렸다.
아버지가 어린 현숙에게 처음으로 썰매를 태워주었던 날이었다. 조심스럽게 그녀를 썰매 위에 들어 올린 후 꽉 붙들라며 살살 밀고 당기다 현숙이 조금씩 몸의 균형을 잡아 나가는 듯하자, 어느 순간 힘껏 밀었다.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두려우면서 짜릿하게 느껴지는 속도감, 아버지 손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그 설레던 감격….
동심의 나라에서 행복에 겨운 웃음보따리를 풀어내고 있는 형제들이 현실로 돌아온 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구성진 곡소리에 의해서였다.
“누가 들어오나 보다.”
“그러게.”
“안 그래도 시골 장례식장 운영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누가 아니래, 이 큰 장례식장에 단 우리만….”
곡소리가 점점 101호 가까이로 다가오는 듯하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소리 나는 쪽을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7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늙수그레한 여인이 입구에서 주춤하며, 상주 한 명 한 명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게 아닌가. 몇 초가 흐르고, 여인이 신발을 벗고 올라오더니 빈소로 직진하며 오체투지 하듯 미끄러졌다.
“고모가 너를 우찌 키웠는데, 천재라꼬, 천재났다꼬, 읍내가 떠들썩했는데, 꽃도 한 번 피워보지 못하고, 우찌 그리 모질고 무정하게 지 목숨 지가 끊고 가노오, 아이고오 어으이야 어이야아….”
언니가 ‘외사촌 언니’ 같다고 했다. 읍내 부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큰 외삼촌 맏딸이었다.
가뭄으로 타들어가던 산야에 소나기 광풍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슬프디슬픈 곡조로 토해내는 구성진 가락에 모두의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물컹물컹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각각의 죄의식에 사로잡혀 속으로 삼켰던, 단단하게 뭉쳐 명치끝을 누르는 응어리가 외사촌 언니의 가락을 마중물 삼아 울컥울컥 올라왔다. 그녀의 곡소리는 오케스트라 단원을 이끄는 지휘봉 같았으며, 장엄한 연주는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모두 고마 울어라!”
칼로 무 자르듯 자신의 울음을 뚝! 끊고는 코를 ‘팽’ 풀며, 형제들을 향해 나무라듯 꾸짖었다.
“이것들아! 이 지경이 되도록 뭐했노오! 인정머리 없기로, 나한테 연락도 안 하고. 사람이 올 때도 집안에 금줄 걸고 귀히 맞지만, 갈 때도 외롭지 않게 보내야 한다. 장례식장이 와이리 헐렁하노! 자손이 없으니, 친구라도 몇 명 불러 술 몇 잔 따르게 해라! 아이고오….”
외종언니의 곡은 그렇게 찰지고 구성질 수가 없었다. 어디서 일부러 배웠을까? 저런 곡이야말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충분히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현숙은 생각했다.
한바탕 회오리를 몰고 온 외종언니가 떠나자 빈소는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형제들은 모두 이 구석 저 구석의 소품처럼 고정돼 있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정승 집 문지방이 닳아 없어지도록 문상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는 속담들을 되뇌며, 조문 부담을 안겨도 될 만한 인맥의 고리를 더듬었다. ‘동생 친구 몇 명이라도 불러 가는 길 배웅하게 하라’는 외종언니의 말이 현숙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생은 한바탕 축제인가, 소풍 끝난 후의 쓸쓸함인가?”
외사촌 언니가 등장하기 전까지 생생하게 살아있던 동생이 어느새 국화꽃 속 영정 사진으로 돌아가고, 형제들은 꼭 필요한 정책을 고언하지 못해 나라가 혼란스러워진 질책을 당하는 상감마마 앞의 대신들처럼, 내장 빠진 호피처럼, 이 구석 저 구석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너른 공간에서 네 남매끼리 서로의 숨소리를 의식해야 하는 일이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현숙은 인간의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소리와 잡음들이 삶을 영위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깨달았다. 지금껏 다녀본 장례식장은 예외 없이 시끌벅적했다. 호실마다 들리는 곡과 조문객들의 술렁이는 소리가 가끔은 축제의 장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지상의 모든 소리들을 제거한 듯한 이 정적이야말로 시인 단테가 미처 묘사하지 못한 지옥의 풍경일 거라 생각했다.
우주 적막강산에 한줄기 빛처럼, 바깥세상의 소리가 또 한 번 찾아들었다. 스피커를 켠 채 통화하는 언니의 휴대폰 너머, 완벽한 타인이 있었다. 여간 반가운 마음에 현숙이 몸을 일으켜 언니 곁으로 다가가자 스피커를 끄며, 전화기 든 반대편 손으로 ‘저리 가라!’는 제스처를 했다. 민망한 듯 쫓겨나며 두 오빠들을 보자 모두 언니 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 통화가 끝나고, 현숙이 다시 언니 곁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