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 수업 걱정. 아니 솔직히 일자리 걱정이겠지.
"네, 형 어쩐 일이세요?"
예의 그 상냥하고 과도하게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우주임은 병원으로 지금 당장 출발할 것이며 어떤 사인도 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아이고 보기보다 많이 다치셨네. 나는 아프다는 말씀을 안 하시길래 뭐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자 이 엑스레이를 잘 보시면 이게 복숭아 뼈예요. 여섯 조각이 났어요. 근데 이게 좀 큰 덩어리로 쪼개지면 예쁘게 잘 붙일 수 있는데 큰 개 두덩이고 아이고 이건 너무 작다. 뭐 수술해서 뭉쳐 드릴게요. 그리고 이거 발목뼈 보이시죠? 이것도 지금 네 조각이 났어요. 우리가 핀을 박아서 잘 고정해 드릴게요. 그리고 여기 인대 밀린 거 보이시죠 이것도 수술로 원위치시킵니다. 그리고 보자... 목이랑 허리는 약간 삔 것 같은데 안 아프시죠? 뭐 지금은 발목이 워낙 아프셔서 병원에 계시면서 다 검사해 드릴 거예요. 7주 동안은 절대 발을 딛으시면 안 되고 그 이후로 재활이 중요합니다. 다시 두발로 걷는 데 적어도 6개월은 걸리실 거예요. 관리 잘 못하시면 관절염 생길 수도 있어요.
엑스레이를 보며 랩을 하듯 나의 골절 부위를 읊어주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이었다. 당장 내일 강의는 어떻게 하지. 선생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지만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방학 중 주요 수입원인 외부 강의와 기관의 영상 제작 용역이 모두 취소되어 지난 석 달간의 수입이 0원이었던 상황에서 벌이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학교에 병가를 내고 입원기간 동안의 수입을 휴업 손실 보상금으로 받고 치료에만 집중한다면. 퇴원 후에 나의 고용은 보장되어 있을까. 나를 대신한 누군가들로 나의 역할은 대체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순간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속 산드라의 처지가 떠올랐다.
“선생님, 저 얼마나 입원해야 할까요?”
“지금으로서는 확답할 수는 없는데 적어도 7주는 생각하셔야 할 거예요.”
7주라니. 코로나 19로 인해 개강이 한 달이나 미뤄지고 비대면 수업이라는 기괴한 형태로 수업을 진행하다 이제 다음 주부터 대면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제가 강의를 해야 하는데”
“어차피 요새 다 인터넷으로 하지 않나요?”
“병실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우선 수술부터 하고 다시 한번 이야기해 봅시다. 지금 그런 걱정하실 때가 아니에요.”
앞이 막막해졌다. 다른 수업은 몰라도 입학 이후 단 한 번도 학교에 와 수업을 들어보지 못한 1학년들에게는 내 탓도 아닌데 왠지 모를 미안함이 있었다. 수술을 하고 깁스를 하면 학교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로 입학식은커녕 학교에 와 보지도 못한 신입생들에게 다음 주에 만나자고 이야기를 했는데 약속을 지킬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동시에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을 하고 있는 현실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병실에서 앉을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도 나는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아홉 시를 훌쩍 넘겼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행정조교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조교님, 제가 교통사고가 나서
내일 수업부터 한 주간 휴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화요일 저녁 대학원 수업부터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깜짝 놀라 답장을 한 조교님을 안심시키며 5일 뒤부터 수업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이 약속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깨닫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때 마침 헐레벌떡 도착한 우주임에게 강의를 할 수 있는 조용한 병실을 찾아낼 것을 요구했다.
우주임이 한참을 원무과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30분 후 나는 리모델링이 막 끝나 아직 간호사 스테이션 조차 설치되지 않은 병동의 한 병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주임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너무도 궁금했지만 발목의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
병원에서의 첫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떠올린 영화는 다르덴 형제의 2014년 작, <내일을 위한 시간>입니다. 원제는 Deux jours, une nuit(Two Days, One Night)이지만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어떤 예능 프로그램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는 배급사의 판단에서 공모를 통해 정해진 한국어 제목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산드라는 우울증으로 휴직을 했다가 복직을 하려 하는 공장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쉬는 동안 잔업을 통해 그 빈자리를 메워 주던 동료들이 투표를 통해 자신의 복직 대신 천 유로의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투표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에 항의해 산드에게 다시 한번 동료들의 투표라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 영화는 돌아오는 월요일, 재투표까지의 1박 2일의 과정을 섬세하고 과감한 연출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산드라에게 이 시간은 내 일자리를 위한 시간이기도, 다가온 재투표일인 내일을 위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보너스를 선택한 동료들에게도 나름의 사정들이 있었습니다. 산드라에게 다시 일자리는 주어질까요?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을 꼭 한 번 감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