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난 안 태우고 갔냐?"고 따지는 것이 꼭 어릴 때 나를 닮았다. 차를 돌려 큰 딸을 태우고 큰 딸은 지상철 버스정류장으로 둘째딸은 아르바이트하는 곳으로 태워 주었다. 사실 둘은 도착 시간과 방향이 달라 누군가는 감래 해야 될 문제였다. 좀 일찍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가면 될 텐데 ㆍㆍㆍ
"할 일 없으면 서문시장에 가자, 내 옷이 별로 없다"고 엄마는 갑자기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오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피곤한지 뭘 하는지는 중요치 않았고 또 나는 피곤해도 거절을 못 했다. 가까이 언니, 오빠도 있는데
대충 치우고 씻고 입고 친정으로 갔다.
엄마집은 재개발 후 새 아파트로 며칠 전 이삿짐을 옮겨준다고 신랑과 같이 온 다음 오늘이 두 번째라 아파트 입구에서만나기로 했는데 난 한 참 헤맸다. 주차장 입구에 갔더니경비아저씨께서는 한사코 지하주차장으로 가야 된다고 입구에 세우면 안 된다고 빙돌아서 후문으로 가라고 해서 아파트 지하를 돌고 돌아도엄마는 만나기로 한 장소에 안 보였다. 알고 보니 택시가 엄마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겨우 엄마를 만났는데 "왜 이제 오냐 "고 화부터 내셨다.
오십이 넘은 나에게 팔십넘은 엄마가 처음으로 당신 옷을 사러 가자고 했기 때문에 억울함을 꾹 참았다.
서문시장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 30분 이상 기다리고서 주차장에 들어갔다.
차 안에서도 엄마는 여기 아니다 왜 이쪽으로 왔냐는 둥 계속 나무랐다. 그럴 것이 예전에 서문시장 화재로 새 단장을 하여 나도 잘 몰랐다. 한 참을 기다렸다가 차를 겨우 주차하고 내렸는데 대뜸 엄마는 "집에 가자!"라고 하기에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이때까지 기다렸는데 무슨 말하냐"면서 나도 화를 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못 온다고 왔을 때 옷을 사자 "고 말을 뱉었고 엄마는 그제서야 순순히 나를 따랐다. 나도 서문시장을 몇 번을 와도 어디에 무엇을 파는지 잘 몰랐고 엄마 역시 똑같았다.
여기저기 헤매다 배가 고파서 국수 한 그릇 먹으려니 30분을 넘게 또 기다려야 해서 먹는 것을 포기했다.
엄마는 돌아다니시다 "할매들 입는 옷가게가 어디에 있냐"면서 상인에게 물어보니 "건너편 동산상가 건물에 있다"고 하니 또 내게 역정을 냈다. 차를 빼서 옮기기엔 자리가 또 없을 것 같아 건너 건물로 다시 걸어야 했다.
엄마는 심장이 안 좋으셔서 빨리도 못 걷고 조금만 걸으시면 숨이 헐 떡 헐 떡 거리신다 게다가 무릎도 안 좋으셔서 오래 많이 걷는 것이 힘드셨다.
그래서 가다가 잠깐 쉬고, 쉬었다 가고 해야 했다.
겨우 건너편 옷가게에 가서 당신 옷을 골랐다.
이것저것 가계아주머니가 권하였고 엄마는 딱 마음에 드시는지 바로 샀다.
돌아가는 길에 외투를 보시더니 이거 한 번 입어봐라고 했다. 내 옷도 사주게? 물으니 사준단다. 그래서 사양 안 하고 이것저것 입어 보았다. 엄마가 이쁘다면서 다른 것도 입어봐라고 하셨다. 예전 같으면 굳이 안 산다고 했을 나는 엄마가 시키는 데로 옷을 입고 코트 두 개 다 어울린다면서 사라고 하셨다. 웬일이실까? 싼 가격도 아닌데 "엄마한테 사줘도 내가 사드려야 하는데 엄마가 왜 내 옷을 사주냐"고 했더니 "니 생일 아니가 생일선물이다." 하셨다. 어쩐 일로 내 생일선물을 사주는가 싶어 "고맙다"고 그냥 받았다. "그동안 내한테 해 준 게 없다"면서 " 나중에 또 사준다"고 하셨다.
엄마는 당신 옷 사는 것은 핑계셨다.
내 생일선물을 사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몸에 열이 많은 엄마는 늘 화를 냈고 그것을 듣는 나도 엄마에게 화로 받아쳤다. 그래서 엄마랑 나는 웃음으로 시작해서 화로 끝나기에 엄마랑 있으면 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엄마 집에 와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엄마가 "아이고~아까 주차장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숨이 딱 막히고 어찌나 어지러운지ㆍㆍ"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차에는 물이 있었는데도 그 생각도 못했다. 내가 엄마께 얼마나 무심했던지 엄마 맘도 모르고 "그럼 그렇다고 말하면 되지"말하고는 나를 자책했다. 엄마는 늘 이런 식이셨다. 자신의 생각은 늘 이야기하지 않고 평생을 참으셨고 그러다가 불쑥불쑥 화를 내셨다. 그렇게 엄마와 단 둘 이서 서문시장에 가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구경도 제대로 못 하고 옷 만 싸서 왔다. 엄마는 다음에 또 가자고 예쁜도 또 사준다면서ㆍㆍㆍ
집에 와서 엄마가 사주신 옷을 다음날 바로 입고 다녔다.
보는 사람들 마다 옷이 예쁘다면서 어디서 샀냐고 물었다. 나는 기분 좋게 "울 엄마가 제 생일선물로 사줬어요" 어깨를 으쓱대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