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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해야할 바로 그 일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

by 슬기로운 뉴욕의사

나를 나이게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 이런 것을 정체성 identity 이라고 한다- 그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여행가’이다. 나는 가 본 나라가 50개가 훌쩍 넘는- 50을 넘은 이후로 세는 것을 중단하고 여행을 위한 여행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면서 정확하게 지금 기록이 몇 개가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 꽤 숙련된 여행가이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 천국이었던 나에게 여행은 견문을 넓혀줄 뿐 아니라 그 당시 속해있던 세상이 좁다고 느끼던 내가 마음껏 숨을 내쉴 수 있는 곳이었다. 경계를 넘나들며 다른 문화를 만끽하며 내가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알고 보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이었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인데… 그런 맛에 취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뉴욕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 게다(하지만 알고 보면 여행과 이민은 연애와 결혼의 차이만큼이나!ㅋㅋㅋ ).







미당 서정주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듯 내가 이런 여행가가 된 데도 큰 역할을 한 분들이 있으니… 바로 나의 부모님이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막내인 내가 대학을 들어가던 해 대한민국 부모님의 공적 책임을 마무리 한 기념으로 RV 한 달 유럽 여행을 떠나셨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신 나의 부모님은 다음 해 여름, 온 가족 캐나다 대륙 횡단 대장정을 계획하셨다. 캐나다 서쪽의 밴쿠버에서 시작해서 동쪽 끝 헬리팩스까지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 대장정을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친가 외가 사촌들까지 우르르 거느리고 12인승 소형 버스를 타고 마치 휴가라기보다는 부트 캠프 같은, 아침 6시부터 때로는 끼니도 걸러가며 가이드책에 나오는 명소는 단 하나도 빠트릴 수 없어! 하며 모든 곳이 문을 닫아 숙소로 돌아오면 몸이 침대에 들어붙을 것 같이 녹초가 되던, 이 휴가가 끝나고 나면 쉬기 위해 또 다른 휴가가 필요한 그런 빡빡한 일정을 그 철없던 어린 시절의 나는 견뎌낼 수가 없었기에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 방식대로 가겠다 하면서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일본, 미국 등등으로 떠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내 나름대로의 여행 철학과 이야기들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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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각자의 길을 가던 우리가 다시 함께 여행을 하는 데까지는 자그마치 1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서 만난 우리의 테마는 미국의 국립공원; 자이온, 옐로 스톤, 그랜드 캐년, 세쿼이아 등등 미국 유수의 국립공원들을 거쳐 엘에이 코리아 타운까지. 그 앞에 서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웅장함에 절로 숙연해지는 곳들을 함께 여행하면서 나는 14년의 시간과 그 시간이 우리에게 가져온 변화를 돌아보았다. 시차적응이 채 안 되어 차 뒷좌석에 뻗어 자고 있는 우리들을 깨우며 경치 구경하라던 아빠는 다른 사람의 차이를 수용하는 데 조금 더 유연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옐로 스톤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마지막 날에는 나한테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여기저기 신나 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아빠에게 내가 " 아빠, 아까 거기랑 뭐 다른 게 있나?" 하자 눈을 반짝반짝 거리며

다 그 나름의 다름이 있는데…


하며 여기는 뭐가 다르고 저기는 뭐가 다르고 하며 소년처럼 재잘되던 아빠의 그 표정과 목소리의 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엄마는 그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 내면서도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는 든든한 서포터 역할을 여전히 잘해 주셨다. 그러면서도 옐로 스톤에서 뷰포인트랑 뷰포인트는 다 서던 아빠에게 “ 느그 아빠는 사람을 질리게 한다!” 하고 한 번 질러 주시기도 하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 이제 그만 보고 집에 가자고 시종일관 투덜대던 나에게는, 내가 직접 돌아보고 나니 이런 여행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획과 준비가 필요한 지를 알게 되어 생긴 감사가 조금 자라 있었다. 그리고 그래도 미국 좀 살아봤다고 생긴 경륜으로 고속도로에서 가끔 운전도 하며 아빠에게 크루즈 컨트롤 기능도 가르쳐 주고, 렌터카 차번호판 유효 기간 지나려는 것도 알아서 고쳐주고 하며 약간의 쓸모를 발휘하며 어른 역할을 하기도 했다.



14년의 간격이 6년으로 줄어 코비드가 끝나가던 그해, 우리는 다시 한번 아이슬란드를 함께 여행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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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또 3년이 지난 올해, 이번 여름은 우리도 이제 그만 좀 돌아다니고 한 군데에서 좀 지긋이 머무르면서 품위 있게 리조트식 여행 좀 해 보자고 그리스를 추천했다. 그런데 아빠가 이제는 체력과 건강이 안 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국내에도 너무 좋은 곳이 많아서 아빠는 국내를 더 잘 보고 싶다고 하셨다. 매년 나가시던 부모님이 3년째 안 나가시길래 나름 체력 및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제시한 플랜인데… 평소에는 애써 무시하고 살던 시간의 무게가 덜컥 느껴졌다.






나는 이미 부모님이 없이도 나는 법을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엄마아빠가 없으면’을 외치며 어쩔 때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서럽게 느껴지던 그 순간들은 바로 이런 때를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더 이상 우리가 함께하는 해외여행, 아니 해외 탐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걸 조금 바꾸면 혹시나, 저걸 좀 다르게 해 보면 행여나. 여름의 에게해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리스의 해산물이 얼마나 맛있을까를 좀 더 혹하게 잘 말해볼까. 아니면 장소를 좀 더 가까이 다른 곳으로 바꿔볼까.


시간을 다시 돌린다면 내가 가지 않았던 여행들을 따라갔을까. 그렇게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더 쌓였으면 나는 엄마아빠를 더 빨리, 더 잘 이해했을까. 내 마음에 감사가 더 넘쳤을까.


지금은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 갈길을 가야 할 때일까. 아니면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이루어 보려고 좀 더 노오력해야 할 때일까.



내가 이 자리에서 지금 해야 할 바로 그 일은 무엇일까.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2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전도서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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