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y for Itaewon

사고가 발생하기 하루 전 현장에 갔을 때 ‘사람이 많다’라는 정도로 여겼을 뿐 참사가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화재나 건물 붕괴처럼 무언가 큰 피해가 예견되는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니라, 웃으며 거닐던 그 골목에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점점 움직일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모든 것들이 서서히, 서서히 일어났을 것이다.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일이라 자면서도 이상한 꿈을 꾸고 일어나서도 현실이 꿈이라고 여겨졌다. 나 역시도 시험을 치르고 고생한 스스로에게 보답하러, 또한 언니의 기념일을 축하하러 간 것인데.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각자 다른 사정을 지닌, 주말 신나게 놀고 다시 일할 원동력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나를 은은하게 비껴 간 이번 참사를 돌아보며 문득문득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상황을 그려본다. 희망을 갖고 쉼 없이 CPR을 하는 사람과, 소식을 듣고 행방을 찾으러 온 남겨진 이들을 생각한다.

요즘 들어 둔감해진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10년 전에 나였다면 잔인하거나 고통스러운 것들을 보고 접할 때 며칠 동안은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정도로 그 잔상이 어디갈 때나 따라오고 가위에 눌렸을 것이다. 쉴 새 없이 울었을 것이다. 이제 그렇지는 않다. 밥을 잘 씹어 넘기고 과제를 수행할 정도의 정신을 가진 채 일상을 지낸다. 인터넷상에서 오가는 희생자들을 탓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잔인함과 무자비함에 휘둘리기보다는 그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이라고 여긴다. 감정의 고갈이 훨씬 덜하긴 한데. 무언가를 잃고 얻은 느낌이다. 불의한 것들을 못 견디는 이전의 나와는 다르게 약간은 회색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매연을 들이마시는데 익숙해진 탓이다.

공감은 능력이다. 이런 일 앞에서 아픔을 가장 먼저 논하지 못하는 것은 엄연히 공감 ‘능력’의 부재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개인의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을 것이다. 돌이키지 못할 시간, 이전과 같지 않을 공간 속에서 남겨진 이들의 삶을 상상하면서 이 숨 막히는 느낌이 꽤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각할수록 아프겠지만, 그럼에도 자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위로와 공감이 가장 필요한 때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제쳐두고 언니와 밥을 지어먹고 많은 대화를 했다. 앞으로의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걱정들로 골머리를 앓던 요즘, 그런 걱정들이 얕고 사소하게 느껴졌고 그저 조용히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