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R 없이는 한국 드라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손오공이 요괴랑 싸우다가 기세가 밀린다 싶으면 머리카락을 뽑아서 분신술을 썼는데, 그렇게 생긴 복제 손오공들이 본체 손오공과 힘을 모아 결국에는 요괴를 물리치게 되죠.
세포 1개는 대략 6 pg (피코그램)의 아주 적은 양의 DNA를 갖고 있습니다. kg (킬로그램)도 아니고, g (그램)도 아닌 피코그램 단위의 DNA는 상상이 안될 만큼 적은 양인 데다가 실험을 진행하기에 매우 부족한 양입니다. 그래서 이때! 연구자들은 DNA를 연구하기 위해 복제술을 사용합니다. DNA를 Ctrl+C (복사), Ctrl+V (붙이기) 하는 것이죠. 이 복제술이 바로 polymerase chain reaction (PCR, 중합효소 연쇄 반응)입니다. 'PCR? 어디서 들어봤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사실 이 기술은 예전부터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용어가 생소했을 뿐인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사태를 통해 PCR이란 용어의 미디어 노출 빈도가 높아졌습니다. 최근 코로나-19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면, '국내 PCR 진단 키트 승인', '유학생 입국 전후 PCR 검사 실시', '미국 입국 시 PCR 검사 음성 확인서 제출 필수'등의 기사들이 쉽게 검색됩니다.
PCR은 적은 양의 DNA를 복제하여 양을 늘리는 기술입니다. 따라서 코로나-19 의심 환자에게서 채취한 소량의 검체에 있는 적은 양의 유전 물질을 PCR을 통해 복제하여 그중에 바이러스의 유전 물질이 있으면 양성, 바이러스의 유전 물질이 발견되지 않으면 음성이 되는 것입니다.
PCR은 친자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도 사용됩니다. 인터넷에 '친자 확인'을 검색하면 친자 확인 검사를 제공하는 회사들의 홈페이지가 꽤 뜹니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가 보니, 검사 가능한 시료의 종류에 '머리카락 5가닥, 타액, 칫솔, 손톱 등 기타 인체 세포가 묻은 모든 것'이라고 나와있습니다. 묻어 있는 소량의 세포에서 DNA를 추출하여 PCR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DNA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복제를 하는 것입니다.
PCR은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에서도 사용됩니다. 범죄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물에 혹시라도 범인의 DNA가 남아있게 되면 PCR을 통해 복제하여 용의자의 DNA와 대조합니다. 소량의 DNA라도 대조가 가능한 수준까지 복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미제 사건의 증거물에서 DNA를 확보하여 몇십 년 만에 범임을 검거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많은 생명과학 연구자들이 생명과학 분야가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사건 중 하나로 PCR의 발명을 꼽습니다. 그리고 저는 PCR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중독성 있고, 다음 회가 기다려지는 많은 드라마들이 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음 주에도 연구실에 가서 이렇게 중요한 PCR을 합니다. 손오공이 분신술을 써서 요괴를 물리친 것처럼, 저도 다음 주에는 제발 의미 있는 PCR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