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돈 쓰는 법

by 채수아

우리 부부는 돈을 이렇게 쓰고 살았다

어머님이 목돈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드렸다. 평생 가난에 한 맺힌 어머님께 그렇게 해드리고 싶었다. 따로 사는 형님께 말도 안 하고 나 혼자 해드릴 때가 많았다.


IMF가 터졌을 때 친정 엄마께 '사촌 언니의 아들이 폭삭 망해서 알거지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들은 처가에 맡기고, 거처가 없어 떠돌고 있다고 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무스탕 가게를 계속 늘리다 그리 되었다고 한다. 미리 가까운 친척들에게 돈을 빌린 상태라 모두 나몰라라라 했다. 그 말을 남편에게 하면서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현금이 없어 몇 개 보험 중 하나를 깨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이 그러지 말라며 대출을 삼백만 원을 받아서 주자고 했다. 나는 엄마께 전화해서 조카며느리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돈을 바로 입금해 주었다.


그 후 시누님이 이혼을 해서 경제적 어려움이 컸다. 가끔 생활비를 도와드리다, 조카가 대학생이었을 때 학비를 내 월급으로 입금해 주었다. 시누님은 자식들에게 작은 외숙모 은혜 잊으면 안 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남편과 결혼해 살면서 돈 문제로 싸운 적은 없었다. 서로의 집안 챙기느라 부부 싸움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지만, 우리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항상 같은 마음으로, 좀 더 좋은 선물, 좀 더 필요한 선물을 해서 상대방을 기쁘게 해 주면 우리가 행복했다.


나의 시어머님은 무학이셨고, 그 형제분들도 많이 배우지 못하셨는데, 어머님 성격과 비슷하셔서 투박한 면이 있으셔도 잔정이 많으셨다. 어머님을 오래 모시고 살 때 특히 나를 예뻐하신 막내삼촌은 직업이 경비셨는데, 매우 성실한 분이셨다. 가족 모임에서 술을 드시면 욕을 잘하셔서 처음엔 많이 놀랐지만, 나중엔 그분 본심을 아니까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분은 전화하시면 늘 나를 위로해 주셨다. "성격 벨쭉맞은 자기 누님 모시고 사느라 고생 많은 거 안다, 우리 누님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늘 가슴이 아프다, 고맙다"라고 하셨다.


어느 날, 막내삼촌이 무릎관절이 아파 수술을 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몸이 자주 아픈 내가 그때 서울 올라갈 컨디션이 안 되어 삼촌 계좌번호를 묻고 50만 원을 입금해 드렸다. 남편에게는 며칠 후에 말했다. 퇴원하신 후 막내삼촌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하셨다.


"지혜 에미야, 정말 고맙다. 이 은혜 평생 안 잊으마. 입원했을 때 돈이 없어서 아프면서도 걱정이 많았는데, 니 돈이 큰 도움이 되었어. 내가 죽어도 니 은혜 안 잊을 거야. 너 잘 되기를 빈다."

그 삼촌은 고마운 마음에 친척 결혼식이 있으면 미리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시고, 아들 차 트렁크에서 김장김치를 꺼내 우리 차로 옮겨 주신 적도 있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나서도 정성스럽게 담근 김장김치를 택배로 보내주시기도 했다


난 주는 게 전 좋았다. 그냥 좋았다. 힘든 상대방이 좀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런 도움과 나눔을 받은 많은 분들 중에, 때로는 뒤통수를 치고 우리 가슴 아프게 한 분도 계시지만, 나와 남편은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능력과 마음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고, 그걸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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