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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부 18화

호구의 삶

by 채수아

살아가면서 가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 집안 경조사에 알렸는데, 전혀 반응이 없던 사람이, 시간이 흘러 본인의 경조사에 와달라고 연락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어떤 경우는 내가 부의금을 보냈는데도, 내 경조사에 모른 척하다가, 얼마 후 또 소식을 알리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좀 황당하다. 인간관계가 서로 주고받는 소통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떤 경우는 사례를 하겠다고 일을 부탁해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음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내가 다니던 한 옷 가게에서 있던 일이다. 그래도 난 단골이라 생각했고, 그녀도 내게 꽤 살갑게 굴었다. 어느 한 날에 카톡이 왔다.


"언니, 정말 기대해도 좋아. 언니를 위해 예쁜 선물을 준비해 놓았거든. 시간 있을 때 가게 들르세요."


며칠 후에 그 가게에 들렀는데, 전에 보았던 아주 오랜 단골손님과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 아가씨는 계속 뜨개질을 하면서 가끔 내게 눈길을 주었고, 말을 시켰다. 난 '이 상황이 뭐지?' 생각하다,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그냥 나왔다.


나는 오랫동안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어머님은 가까운 친척의 경조사에는 다 함께 가자고 하셨고, 좀 멀다 싶으면 당신 혼자서 삼 남매의 봉투를 챙겨서 가시곤 했다.


"에미야, 봉투 세 개 만들어라."


나는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봉투 세 개에 돈을 넣고 이름을 정성껏 써서 드리곤 했다. 칭찬에 인색하셨던 어머님이셨지만, 내 필체가 좋다는 말씀은 자주 해주셨고, 남들에게도 자랑을 많이 하셨다. 나는 그 봉투에 넣었던 돈을 제대로 돌려받은 적이 없었고, 세 개 모두 어머님 몫이라고 생각했다. 평생을 너무나 가난하게 살아오신 분께 내 통장은 어머님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목돈을 요구하시는 대로 다 해드렸고, 심지어 작은 아파트를 구입해서 주말 쉼터로 살고 싶다는 말씀에도 흔쾌히 ''라고 대답했다. 내가 학교에서 대출을 받은 돈과 아주버님이 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돈이 반반 합해져서 어머님 소유의 작은 아파트가 생겼다. 내 남편은 살고 있던 아파트 대출이 있어서 내가 책임을 진 것이다. 어머님과 연결된 많은 돈들은 빠짐없이 다 해드려도 아까운 마음이 없었다.


호구로 살면 본인은 점점 바보가 되고, 상대방은 그러려니 요구하다가, 어느 선을 넘어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주변에서도 가끔 그런 사람을 본다.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데, 누가 그 사람을 존중하겠는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해 주겠는가.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스스로도 잘 챙기고, 배려도 적절히 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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