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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Aug 05. 2023

나의 아버지

항상 큰일을 앞두면 아버지가 떠올랐다. 케이블 직업방송 '신직업의 발견, 네이미스트 편' 녹화날에도 담담하다가 살짝살짝 불안감이 스쳤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었다.


교대 입학, 교사 발령, 결혼, 출산... 내 인생의 굵직한 일들에 늘 아버지와 의논하고, 아버지의 축하를 받고 좋아했지만, 아버지께 말씀드릴 수 없는 중요한 순간이 왔다  중풍으로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혀까지 마비가 되어 말씀을 못 하게 되신 것이다. 나는 1년 병 휴직 후, 사직서를 내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께 전화를 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엄마, 나 오늘 사직서를 냈어. 이제 좀 쉬고 싶어. 아프면서 교사 생활하기 너무 힘들었어. 이제 가족 좀 챙기면서 살려고."


내 말에 엄마는 잘했다고 바로 대답하셨다. 내 전화를 받고, 엄마는 말 못 하시는 아버지께 다가가 내 말을 전하셨을까? 모르겠다. 가끔 생각한 적이 있다. 아버지의 혀가 마비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내 퇴직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당신 뒤를 이어 교사가 되라고 다섯 살 어린 나이부터 나를 안내하셨고, 교사 발령이 난 나에게 교사로서의 자세에 대해 진심을 담아 말씀해 주시던 아버지셨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아버지 없이는 설명이 안 된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이셨고, 내 삶의 멘토셨으니까. 교사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내게 '책'이라는 평생 친구를 소개해 주셔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뿌리를 만들어 주신 분 또한 아버지시다.​


어느 날 우연히, 여동생의 딸인 조카의 카톡 사진에서 아버지 사진을 발견했다. 깜짝 놀랐다. 아마 그 조카도 우리 아들처럼 외할아버지를 삶의 멘토로 삼고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공군 장교인 아들이, 자기의 앞으로의 삶에 대한 설계 글을 긴 카톡으로 내게 보내온 적이 있다. 그 글에 외할아버지처럼 훌륭하게 살고 싶다는 문장이 있었다. 너무나 고맙고 또 고마웠다.


조카의 카톡 사진을 발견한 것이 마치 선물 같았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젊은 시절 아버지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사진 속의 아버지 나이보다 두 배 이삼의 나이를 먹은 중년의 여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쩜 이렇게 잘 생기셨을까? 어쩜 삶이 그리도 아름다우셨을까?'


아버지를 만났던 인연들은 아버지가 얼마나 따스한 눈빛을 가진 분이셨는지, 얼마나 선한 마음을 가진 분이셨는지 기억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자식들처럼 아버지의 제자들도 아버지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저, 잘 살게요, 잘 살게요. 아버지께 받은 큰 사랑, 아버지께 갚지 못하고 살았지만, 아버지처럼 따스한 사람으로 살아갈게요.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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