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매일 밤 헤어지는 게 너무 싫어 결혼을 했다. 매일 같이 있고 싶었다. 결혼식장에서 아버지와 두 오빠가 눈물을 흘리는걸, 나중에 비디오를 보면서 알았다. 나도 친구가 축가를 부를 때 눈물이 쏟아졌다. 축가는 장엄하면서도 가슴을 파고드는 뭔가가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남편도 당황했다.
가족과 친지들의 배웅을 받으며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나는 앞으로 이 남자의 얼굴을 매일 보며 한 집에서 함께 산다는 생각에 가슴이 터질 정도로 행복했다 한 마디로 배신자 같은 딸이 된 것이다.
형님이 시어머님을 몹시 두려워하는 걸 알았다. 시어머님이 내게는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전혀 몰랐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나도 형님처럼 어머니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뭔가 폭탄이 터질 것 같은 분이라고 할까? 말투가 사나우시고 화를 잘 내시니, 늘 불안 불안했다. 나는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어머님이 싫고 미워질 때마다 어머님의 한 많은 인생을 떠올렸고, 내 사랑하는 남자를 낳아 키우신 분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힘들어하는 내게 남편은 늘 반복해서 말했다
"알아 내가 왜 모르겠어. 당신 감정, 나도 무수히 느끼며 자랐던 사람이야. 하지만 평생 고생을 너무 많이 하신 분이잖아. 그래서 늘 마음이 아팠어. 조금만 마음을 넓혀서 이해해 줘. 당신은 좋은 환경에서 많이 배운 사람이잖아. 대한민국의 훌륭한 교사잖아. 착한 사람이잖아. 다 알아.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엄마가 나중에는 당신 진심을 알아주실 거야."
이 남자의 마약 같은 말로 나는 긴 세월을 버티어 나갔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시어머님은 내가 몸이 많이 아파 학교를 퇴직하고, 분가를 한 후 갑자기 변하셨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뭔가를 해드려도 당연하다 생각하셨던 분이 늘 "고맙다"란 말이 입에 배셨다. 눈빛은 다정다감해지셨고, 말투는 따스함과 온유함이 가득했다.
내가 살면서 만난 가장 큰 '기적'이었다. 나는 시어머님을 진심으로 대했다. 어머님이 그 사랑을 알아주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도 시어머님은 그리운 고향처럼 내 마음 안에 함께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