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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부 04화

우리 집의 역사

by 채수아

결혼해서 살았던 나의 첫 집은 이층 집의 이층이었다. 남편과 나는 아주 좁은 철제 계단을 내려와 손을 꼭 잡고 출근을 했다. 내가 만삭의 몸이 되어 그 계단을 내려올 때는 꽤 힘이 들었고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우리 큰 아이는 그 집을 모른다. 왜냐하면 태어나기도 전에 집을 옮겼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높게 전셋값을 올려달라는 말에 어머님은 이사를 결정하셨고, 버스 정류장과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겼다.


나의 두 번째 집은 첫 집보다 삼백만 원이 싼 전셋집이었다. 전에는 이층이었지만, 반대로 그 집은 이층 집의 아랫집이었다. 주인집 위주로 집을 지어, 위층으로 올라가는 멋스러운 계단 때문에 우리 집 현관이 가려져서, 우리는 늘 낮에도 불을 켜고 있어야 했다. 거기서 큰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까지 살았다.


나의 세 번째 집은 우리 소유의 첫 아파트였다. 방이 세 개 있고 우리가 주인인 그 집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특히나 그 집에서 둘째와 셋째가 자랐고, 육아휴직을 해서 거의 '집 엄마'로 살았기 때문에 특별히 집을 예쁘게 꾸미고 살았던 때이다. 동네 아줌마들과도 친하게, 재미있게 살았던 추억의 집이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가 새 아파트를 준비하며 그 집을 내놓았는데, 연락도 없이 복덕방 사장님이 어르신 한 분을 모시고 왔다. 세 아이가 어질러 놓은 우리 집은 차마 볼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그 어르신은 우리 집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너무 좋다고 바로 계약을 하셨다. 그러니까 집을 내놓자마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집이 팔린 거였다.


그 어르신은 며칠 뒤에 혼자 방문을 하셔서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셨다. 혹시 두고 갈만한 물건이 있으면 다 두고 가라고, 자기는 교회의 작은 사택을 빌려 평생을 살았고, 그동안 돈을 모아 처음 집을 사는 것인데, 이 아파트에 들여올 물건을 살 돈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고, 두고 올 수 있는 모든 것을 두고 왔다. 산 지 일 년밖에 안 된 에어컨, 내가 무척 아꼈던 원탁 모양의 원목 식탁, 가스오븐레인지, 집 전체의 고급 커튼까지. 그리고 사람을 불러 집구석구석 대청소를 하고, 나의 첫 집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그곳을 떠났다.


큰딸이 초등학교 6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 방학 때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나의 네 번째 집이다. 초등학생이던 큰딸은 직장인이 되었고, 몸이 약했던 아들은 몸짱 공군 장교가 되었고, 우리 늦둥이 막내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인이 되었다.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은 공기업으로 직장을 옮겼고, 교사였던 나는 학교를 나와 글쟁이로, 브랜드 네이밍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변신을 했다.


자기 스스로를 '명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명당에 사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우리 가족이 명당임을 안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는 예쁜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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