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느끼면
몸은 벌써 저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우물쭈물이 없었다.
이거다 싶으면
늘 그랬다.
평범한 가정과는 좀 달랐던 시댁에 적응하는 게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부모님이 어른의 기준이었던 나였기에, 쉽게 화를 내시고, 부정적인 말씀을 습관적으로 잘하셨던, 너무도 강한 시어머님을 대하기가 너무나 어렵고 힘들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가씨였던 내게, 모든 게 너무나 낯설었다. 어머님의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은 욕심은 있었으나 그 방법이 늘 어려웠다. 나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내 남자는, 막내며느리인 내가 맏이 역할을 해내기를 바랐고, 나는 그걸 오롯이 내 몫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결혼생활을 지켜보던 여동생은 늘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지켜보았고, 내게 '잔다르크' 같다는 말까지 했다. 어깨가 많이 아팠다. 바위가 누르는 것처럼 무거웠다. 통증이 너무 심한 날은 쉬는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의 작은 고사리손을 빌리기까지 했다.
언젠가 큰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는 수녀님같이 살아온 것 같다고. 깜짝 놀랐다. 내가 간절히 열망했으나 가지 못했던 그 길! 마음에 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밖으로 드러나는 것일까? 학교 동료 교사에게도, 형님의 친구에게도, 심지어는 페이스북 친구에게도 수녀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 어찌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힘든 시댁과의 만남을 '인생 수행'으로 받아들였으니까.
결혼해 살아오면서, 내가 갑자기 '공간이동'을 하여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참 많이도 아팠고, 많이도 울었다. 철없고 순진했던 아가씨가, 며느리와 사위, 손주까지 둔 친구들을 몇이나 둔 나이가 되었다. 잘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자신은 없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나를 토닥여준다.
설 명절이 다가오니 온화하고 사랑 많으셨던 모습으로 당신의 후반기를 살다가신 어머님이 떠오른다. 나의 가장 힘든 인연이라 생각했던 분이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으로 남아계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드라마를 보다가도, 음식을 같이 만들다가도, 우리 부부는 어머님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우리 두 사람이 많이 사랑했던 분이기에 마음이 환해지고 따스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