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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부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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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Nov 06. 2023

드라마를 보며 내가 많이 울었던 이유

TV 드라마들 중에 내 가슴을 파고드는 건,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설정이다. 좋으면 좋은 대로, 갈등이 있으면 있는 대로, 힘들게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던 나에게는 그냥 무심히 볼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남편을 일찍 잃고 자식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  결혼 후 계속 모시고 살다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들! 그 아들의 고뇌가 깊이 느껴져서 내가 많이 울었던 드라마가 있었다. 내 눈에는 며느리가 겪는 서운함 보다, 아들의 모습이 자꾸만 보였다. 내 남편과 오버랩이 되면서.


드라마의 할머니가 물가에 서 있었다. 난 또 울었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던 "물가에 가서 오래 서 있었어. 모자란 남편(장애가 있던 시아버님을 늘 그렇게 부르셨다)과 어린 삼 남매를 나 혼자 키울 자신이 없어서 물가에 갔었는데, 물이 너무 무서워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


하나밖에 없는 우리 형님은 "모시는 건 오로지 동서의 몫이야. 내게 도움을 요청하지 마. 난 불편하게는 하루도 못 살아."라고 하셔서 내게 대못을 쾅, 박았지만 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형님이 오히려 지혜로운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막내며느리가 큰며느리 역할을 하고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주 속상하고, 자주 서러웠다. 잘 참는 내 성격은 나를 힘들게 하여 내 몸까지 아프게 했다. 무거운 어깨가 힘에 겨워 내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 역할을 17년을 하다가 몸이 완전히 망가져서 학교를 퇴직할 정도가 되어서야, '나도 살아야겠다.'라고 정신이 든 건, 병 휴직 때의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의 조언 덕분이었다. 이제는 자기를 좀 돌보면서, 사랑하면서 살아보라고, 이제는 그만 아프고 살아보라는 조언! 그래서 나는 무거운 그 옷을 벗어버렸다. 나도 휴식이 필요했다. 결혼 이후 열 번 이상의 병원 생활은, 너무 힘들다는 내 마음의 소리였는데,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 살았다.


'어머니 삶을 생각해 봐. 혼자 힘으로 남편과 삼 남매를 먹여 살리느라 피눈물(우리 어머님 표현)을 흘리신 삶이셨어. 자식과 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헤아려야 해.'


나는 나를 다그쳤다. 나 하나만 참으면 시댁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다고. 상처 깊은 시댁에  온기 품은 사랑 씨가 되어 살아야겠다는, 무슨 사명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가고 싶었던 수도자(수녀)의 길을, 내 나름대로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너무 많이 힘들었고, 너무 많이 지쳤다. 나는 도인이 아니거늘, 막내며느리 역할을 종종 하면서 밝게 사는 형님과 모시고 사는 내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시던 우리 어머니, 두 사람의 묘한 관계가 지친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마음 그릇이 굉장히 큰 사람인 양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 솔직하지 못했던 긴 세월은 결국 나를 고꾸라뜨리고 말았다.


병 휴직 기간에 나는 어머님과 분가를 했고, 그 이후에는 약간의 죄책감까지 들어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자식을 좀 지혜롭게 키우셔야지. 늘 조금 손해 보라고, 이기적인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피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키우셨던 아버지! 내 인생의 가장 큰 사랑이고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나는 아버지를 원망할 때도  있었다.


왜 그리 어리석었냐고, 왜 그리 자신을 챙기지 못하고 망가졌냐고 묻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게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었다. 드라마의 박상원의 고뇌처럼, 그런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가슴 아픈 분가 이후에도, 연락도 없이 아무 때나 찾아오셨던 어머니, 만나면 몇 시간 수다는 기본이었던 우리 고부, 자주 안부 전화를 하며 서로를 걱정하던 우리 고부, 말기 암 통증으로 고통받으실 때 내 손을 잡고 우시던 우리 어머니, 참았던 눈물을 복도로 나가 쏟아냈던 나, 서로 사랑한다고 울며 고백했던 우리 고부, 우리 고부, 우리 고부...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은 그리도 아프고 절절했다.


살다가 힘든 일이 있으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불렀는데, 어머니 돌아가신 이후에는 어머니를 부를 때가 더 많다. 내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닥치면, 꿈결에 아버지가 다녀가시곤 했는데, 이제는 어머님이 다녀가신다. 그 자체가 내게는 힘이 된다.


"내가 널 위해 기도하고 있어. 귀한 내 며느리, 이쁜 내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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