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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부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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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Oct 25. 2023

해피엔딩이었지만

내 집을 갖기 전, 시어머님과 함께 살던 이층 집의 아래층! 그 집은 늘 어두컴컴했다. 주인집이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를 화려하게 만들어 지은 집이어서 아래층 거실 창문을 거의 다 가렸기 때문이다. 전셋값이 싼 편이어서 급하게 옮긴 집이었다. 내가 만삭일 때 우리는 이사를 했다. 그전 집도 이층 집이었는데, 거기서는 2층에 살았다. 그 집은 햇살은 밝았지만, 올라가는 철제 계단이 녹슬고 좁아서 오르내릴 때마다 늘 가슴이 조마조마했었다.  아들이 대기업에 다니는 데다가 들어온 며느리까지 초등학교 교사라는 사실을 안 그 주인은 때를 기다리다가 전셋값을 왕창 올리려고 하자, 우리 어머니는 곧바로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강행하신 거였다. 어머니 팔짱을 끼고 만삭의 몸으로 10여 분을 걸어서 한 동네에 있는 새 집을 둘러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급히 싼 집을 구하는 게 목적이어서 불 켜진 거실을 대충 보고 그냥 계약을 한 집이었다. 거기서 사는 동안, 우리는 항상 거실에 불을 켜고 살았다.  어머니 방과 우리 방은 딱 붙어있었고, 화장실도 손바닥만 하고, 주방도 아주 작았다. 그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작고 초라했다. 돈을 아끼려고 장판과 도배도 새로 하지 않아서 우리가 쓰던 방의 장판은 이사를 나올 때까지 10센티 정도 찢어진 채였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곳이어서 그냥 두고 살았다.  어머님과의 신혼 생활은 아주 초라했지만, 난 그 부분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내 생활이 그대로 노출이 된다는 거였다. 내 일거수일투족이 어머님 입을 통해 밖으로 나돌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 방문이 열려있는 채로 동네 사람들이 우리 거실에서 자주 놀다가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문을 잠그고 다닐 수도 없었다. 며느리가 그 동네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어머님 머릿속에는 아예 없는 듯했다. 집이 좁아서 신혼 가구가 들어가던 날에 침대가 취소되었기 때문에, 그 집에서도 침대는 없었다. 보통은 이불을 개고 출근을 했었는데, 어느 한 날은 우리 부부의 몸 상태가 안 좋았는지, 아니면 늦잠을 잤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이불도 개지 않고 출근을 한 적이 있었다. 퇴근을 해서 집에 와 보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작은 거실에서 깔깔 웃으며 수다를 떨고 계셨다. 나는 인사를 드리고 나서 열린 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이불은 그야말로 ㅠ ㅠ  난 순간 너무나 부끄러워 어디라도 숨고 있었다. 또한 어머님의 막말이나 거짓말로 내가 화가 나서 기분이 언짢아 있던 날은, 퇴근하는 나를 동네 할머니들이 쭈욱 모여 앉아서 걸어오는 나를 계속 주시하면서 소곤대기도 했다. 그럴 때의 그 좁은 골목길은 왜 그리도 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가여운 모습이었다. 비쩍 마른 몸에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걸어오던 나의 모습.


늘 벌거벗은 채로 무대 위에 서 있는 듯한 불편함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바로 옆집에 내 옆 반 아이가 살고 있는 그 현실에, 나의 적응력은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 집에서의 몇 년 이후,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나는 절대 동네 학교로는 전근을 가지 않았다.  어머님의 거짓말은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 가기 직전에 방점을 찍었다. 좋은 아파트에 가면서 시어머니를 두고 가는 못된 며느리로. 그 고통은 그다음 아파트로 옮길 때도 또 이어졌다. 정말 힘들게 참아가며 모시고 있었던 막내며느리에게 우리 어머님은 해도 해도 너무하셨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분노하게 하고, 가장 많이 울게 만들었던 어머님이셨는데 지금은 가장 보고 싶은 분이 되었으니, 인생은 살 만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나는 가끔 궁금하다. 분가 이후에야 내 소중함을 알고 잘해주신 거였을까, 아니면 함께 살던 그때에도 조금은 아셨던 걸까? 해피엔딩으로 끝난 사랑의 고부 사이였지만, 마음속에 아쉬움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어머님 평생 모시고 살겠다는 막내며느리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으면 좋으련만, 막말은 되도록 안 하셨으면 좋으련만, 거짓말로 인해 상대방 억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아셨더라면 좋으련만... 얼마 전의 절친 모임에서 나는 말했다. 어르신들을 좋아하고, 잘 소통하던 나였는데, 우리 어머니 조금만 조심하시지, 깊은 상처만 주지 않으셨더라도 평생 어머님 모시고 살았을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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