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주말엔 서울에 있는 큰딸이 내려온다. 우리 부부는 금요일 밤이면 "내일 뭘 만들어 먹이지?"라는 대화를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지난 주말에도 메뉴를 정해 동네 슈퍼마켓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곳은 물건이 많고도 채소와 해산물이 특히 싱싱한 곳이었다. 가는 길목에 노점상 할머니와 다섯 살 정도의 손주를 보았다. 할머님은 옆의 두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고, 그 손주는 작은 손으로 고구마 줄거리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신통한 아이라며 칭찬을 하며 그 앞을 지나갔다. "어머니 생각난다." 난 또 그 말을 하고 말았다.
슈퍼마켓에서 살 것을 꼼꼼히 다 챙겨서 샀다. 나는 덜렁이지만 남편이 꼼꼼한 편이라 같이 장을 보는 날은 실수가 거의 없다. 돌아오는 길에 그 손주를 보니 아까와 똑같이 고구마 줄거리 껍질을 까는 데에 몰입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니 무슨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있는 아이 같았다.
20여 년 전, 우리 어머님도 내 큰딸과 함께 수원 인계동에 있는 뉴코아 백화점 앞 노점에서 물건을 파셨다. 나 몰래 비밀리에 하셨던 일이라, 얼마 동안 그 일을 하셨는지는 모른다. 아이 입단속을 시켰건만, 자기도 모르게 우리 딸은 내게 그 말을 하고 말았고, 난 그 사실에 몹시 화가 나고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더군다나 그때는 매우 쌀쌀한 날씨였던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난 어머님이 고생하신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지금 생각하니 아주 못된 며느리였네) 내 아이가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았다는 사실이 무척 속상했던 것이다. 엄마 아빠가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임에도, 내 딸은 초라한 옷을 입고(어머님은 집에 있는 브랜드 옷 대신 시장에서 사신 형광색 옷을 잘 입히셨고, 그 또한 내 불만이었다) 할머니 옆에 앉아 몇 시간을 떨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속상했다. 더군다나 나는 그 백화점 바로 옆에 사는 동네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내가 어머니께 화를 냈던가? 그 기억은 없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싫어할 걸 아시고, 비밀리에 장사를 하셨던 것이다. 쓰실 돈을 충분히 드렸지만, 어머님은 시골에서 가지고 올라온 곡물들을 늘 하시던 대로 노점에 나가 파셨던 것이다. 손녀가 태어나 어느 정도 크니까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가셨을 뿐. 어머님은 돈도 벌고 재미도 있어하셨던 일이었지만, 난 어머니 입장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부끄럽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노점상 할머님들이 파는 물건들을 자주 사는 사람이 되었다. 호박 하나를 사도. 고추 한 바구니를 사도, 늘 싱싱하고 맛도 좋았지만, 그 순간 어머님이 떠올라 더 그랬던 것 같다. 분가 후에도 여동생에게 한 번 들은 적이 있다. 제부가 오산 쪽을 다녀오다가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시는 우리 어머니를 보았다고. 하지만 나는 어머님께 안부전화를 드릴 때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어머님이 하고 싶어서 하시는 '일'이라고 그냥 받아들였다.
우리 큰딸이 노점상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었으니까. 내가 살아가는 곳곳에 어머님의 흔적이 남아있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과일,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색깔들, 어머님이 잘 만드셨던 반찬들, 어머님과 같이 가서 맛있게 먹었던 식당들... 너무나 많아서 어머님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신 것 같다. 얼마 전에 선배 언니를 만난 장소가, 어머님을 모시고 몇 번 같이 갔던 한정식당이었다. 난 또 언니 앞에서 중얼거렸다.
"언니, 여기 음식, 우리 어머님이 참 좋아하셨어요. 아... 우리 어머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