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Apr 21. 2024

나의 시부모님

어제 산책길에,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이 났습니다. 청각장애와 수전증으로 평생 요양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신 분, 마치 내 자식처럼 늘 제 마음을 아프게 하셨던 분이셨지요. 말씀은 못하시고, 대화를 할 때는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글씨를 쓰셨던 아버님!


"아버님, 제 이름이 뭐예요?"


천천히 말하는 나의 입술을 읽으시고, 아버님은 활짝 웃으시며 또박또박 제 이름을 쓰시곤 하셨습니다. 저는 글자를 익히는 유치원 아이를 칭찬하듯이 마구마구 박수를 쳐드렸지요. 전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아버님께서 어젯밤 제 꿈속에서 웃으시며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활짝 핀 얼굴 모습이 제게 크나큰 편안함을 주더군요.


한 많은 어머님의 삶도, 장애인으로 가엽게 살다가신 아버님의 한도 다 풀어지셨다고 믿고 싶습니다. 남편으로서 어머님이 사랑했던 분은 아니었지만, 거의 평생을 떨어져 사신 부부였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님은 저희 부부에게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 죽으면 화장해서 너희들 가까이에 모셔라. 그리고 아버지도 시골에서 모시고 와."


너무나 길었던, 상처 깊었던 부부가 지금은 한 곳에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제게 많은 사랑을 주셨던 친정아버지, 모시고 살 때 저를 가장 힘들게 하셨지만 나중에는 친정엄마보다도 저를 더 아껴주셨던 시어머님, 그리고 이 세상에서 너무나 초라하고 외롭게 살다 떠나신 시아버님! 그 세 분이 생각나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20여 년 전, 혼자 계신 시아버님까지 모시려고 대출까지 받아 방 네 개가 있는(각 방 쓰셔야 하는 시부모님) 큰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아파트 입주 3개월 전에 아버님은 급히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 생각에 한 달을 엉엉 울고 있던 막내며느리를 위해, 꿈에 나타나 환하게 웃으셨던 착한 우리 아버님! 그날 이후로 전 눈물을 그칠 수 있었습니다.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새로운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평범했던 친정 부모님과는 다르게 두 분은 상처가 깊은 삶을 살아오셨더군요. 좋은 며느리가 되어 보겠다고 애쓰다 저도 꽤나 힘들었지만, 저는 시부모님을 많이 사랑합니다. 파릇했던 저를 잘 익은 김치가 되라고 담금질해 주신 분들이죠.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하다가 화가 솟구쳐서,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삶이 이리 힘들지는 않았을 거야'라고 막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에요. 전 결혼해서 얻은 남편과 저의 세 아이와 시부모님을 아주 많이 좋아한답니다. ​​



​♡제가 담근 백김치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깊은 공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