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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Apr 17. 2024

기적을 여는 문

살면서 종종 기적을 만났다. 믿을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놀라움과 감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내가 만난 첫 번째 기적은, 큰딸이 네 살 때 겪은 화상 사건! 퇴근 후 방에서 잠시 쉬고 있던 내게 들려온 딸의 비명 소리! 아... 아이는 시어머님이 팔팔 끓인 후 식히고 있던 대형 양은솥 안의 간장에 빠졌다. 이층 집의 아래층에 전세로 살고 있던 그 집의 마당은 아주 비좁았다. 꽤 넓은 보일러실이 있었음에도 어머니는 왜 그 좁은 마당에 그 솥을 내놓으셨을까?


감사하게도 집 바로 근처에 단골 병원이 있어, 우리 부부는 아이를 안고 달려갔다. 완벽한 응급조치(후에 대학병원에서 들은 말)를 끝내고, 내가 사는 수원에서 가장 큰 병원의 응급실로 갔지만,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고, 구로에 있는 고려대 병원을 추천해 주었다. 남편은 벌벌 떨며 서울을 향해 운전을 했고, 나는 간장 냄새가 진동하는 아이를 안고 계속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다.


고려대 구로 병원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자리가 없어 그냥 응급실에서 2차 응급조치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수원에서 들었던 '수가 위험하다'는 말과 비슷한 말을 젊은 의사에게 또 들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화상 부위가 신체의 1/3이 넘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밖으로 나가 울고 있었고, 나는 강철 엄마가 되어 계속 기도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입원하려던 한 환자가 취소를 해서 우리 딸이 병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 순간이 많았다. 간절한 기도와 함께 시어머님에 대한 원망이 너무 커서 마음이 지옥이었다. 깊은 묵상에 잠겼다. 어머님의 죄의식과 어머님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마음으로 느껴졌다. 내가 용서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받아들이고 맡겨야 할 그 무엇이었다. 나는 미움이 한 톨도 없는 100% 내맡기는 기도로 순간순간을 임했고, 우리에게 기적은 찾아왔다.


아이는 화상의 통증을 느끼지 못해 방실방실 웃으며 병원 생활을 했고, 상처는 눈에 보이게 아물어 갔으며, 13일 만에 퇴원 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그리고... 그 하얗고 징그러운 화상의 상처는 몇 년 안에 다 사라졌다.


또 몇 년이 흘렀다. 나는 학교 대표 수업을 준비하다 과로로 혈압이 40으로 떨어졌다. "인간의 혈압은 40 이하가 없다. 그 아래는 죽음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과로의 위험함을 강조하셨던 원장님이 퇴원을 앞둔 내게 준 것은 '소견서'였다. 백혈구 수치가 마구 치솟는 내게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올라가라고 하셨다. 수원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던 내게, 새벽 미사에서 만났던 수녀님의 말씀은 '다 맡기라'였다.


어떻게 맡기나... 작은 두 아이를 어떻게 맡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통곡을 하고 난 후 난 비장해졌다.


"알았습니다. 다 맡길게요. 두 아이와 남편과 우리 어머니, 당신이 다 책임져주세요. 다 맡깁니다. 다 맡깁니다."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만난 백혈병 일인자이신, 김춘수 박사님의 '백혈병으로 판단된다'는 말씀에도 나는 담담했고, 남편은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일주일 후 나는 백혈병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수원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음 해 또 한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교사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나는 안다. 내맡김의 기도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그 마음결에는 절대 미움이나 원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자기에 대한 용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용서! 어렵게 깨달은 진리를 잊을 때도 있지만, 나는 또 그 마음을 되찾고, 기적을 만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은 '신과의 게임' 같기도 하고, 꼭꼭 숨어있는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고, 흥미롭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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