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Apr 25. 2024

아버님 모시고 올라오는 날

시골 산소에서 17년을 혼자 계시던 시아버님이 오늘 올라오십니다. 지난여름에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계신 가족 납골묘로요. 평생을 보통의 부부처럼 사시지 못했지만, 저는 어머님이 아버님을 받아들이시고 떠나셨다는 걸 압니다. 저희들 가까이에 계시고 싶다고 하셨고, 시골에 계신 아버님도 모시고 올라오라고 하셨으니까요. 저희 부부는 그게 유언이 될 줄 몰랐습니다. 말기 암 진단을 받기 전이었으니까요.


며칠 전 아버님의 밝은 모습도 꿈에서 뵈었고, 어머님도 좋아하실 거라고 믿고 있지만, 너무나 죄송한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삼 남매 잘 지내라고 유언으로 말씀하시고 떠나신 어머님께, "네, 어머님!"이라고 대답을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막내로서 맏이 노릇을 하며 살아왔던 저희 부부는, 그래도 맏이 부부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집안의 기둥으로 맏이 역할을 잘해주기를 기대했지만, 그건 기대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어머님 삼우제를 마치고, 식당에서 선포한(형님의 또 한 번의 선포는 제 남편 결혼 전, 어머님을 자기는 죽어도 못 모시니 도련님이 책임지라고 했다는..) '앞으로 모든 행사는 각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삼 남매는 거의 의절 상태로 만나지 않고 있다가, 아버님 산소 이장 문제로 두 형제가 오랜만에 만나서 일을 진행시킨 겁니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해빙'이라고 할까요? 한평생을 떨어져 살았던 부부가 한 곳에서 함께하시니까요. 집안의 슬프고도 아픈 역사가 잘 마무리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감사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집안이 전체적으로 의절 상태 비슷하니, 아주버님께서 제안하시기를 '두 아들과 장손'만 움직이는 걸로 하셨습니다. 저는 그냥 따르고자 마음을 먹고 있지만, 이 뜻깊은 행사에 가족들이 모두 참석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애석하더군요. 남편과 미리 가족묘에 가서 청소도 하고, 꽃도 갈아드리고 왔지만, 그 허전함은 제 마음에 크게 남아 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요즘 저는 자주 하늘을 바라봅니다.


오늘은 평생 장애인으로 외롭게 사셨던 저희 시아버님이 저희가 사는 곳 가까이로 오시는 날입니다. 남편은 새벽에 일어나 아주버님과 장손 태우고, 하루가 바쁘게 돌아갈 겁니다. 충청도 보령에 계신 아버님을 홍성 화장터로, 거기에서 어머님 계신 용인으로 모셔야 하니까요. 오늘 행사는 잘 마무리될 겁니다.

이전 09화 들려오는 소리의 효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