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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Aug 02. 2024

죽기 전, 덜 후회할 삶을 위하여

어린 시절 내 주변에는 이혼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내가 어린 자식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경우에 재혼을 한 가정만 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일찍 떠난 집의 아내들은 거의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내가 이혼한 사람을 처음 만난 건, 30여 년 전의 동료 교사였다. 직업이 교사인 만큼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전근을 오자마자 그 소문은 학교에 빠르게  퍼지고 말았다. 단아한 모습에  성품 또한 좋은 분이셔서 난 그 선생님과 가장 친한 동료가 되었고,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선생님이 내게 물으셨다. 자기가 왜 이혼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난 아마도 어색하게 웃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지방에서 교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서울대생을 소개받아 사귀다가 결혼을 했다. 결혼 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사람의 인성이 꽤 좋지 않았다. 이기심이 지나쳐서 자주 화가 났는데, 한 예를 들면, 만원 버스에서 아기를 업고 아기 짐 가방까지 들고 있었는데, 옆에 남편이 없어져서 둘러보니 혼자 저쪽에 편안히 앉아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선생님은 그 시대에 드문 '이혼녀'가 된 것이다. 선생님은 그 이후 재혼을 하지 않으셨다. 첫 남자에 대한 상처가 너무나 커서 그랬을 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


몇 년 전에 이혼한 지인이 딸을 결혼시켰다. 결혼 전에 사귀던 남자들도, 결혼을 한 남자도 그 딸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유를 딸에게 물었더니,


"난 이혼녀의 딸이잖아. 난 항상 그게 부끄러웠나 봐. 남자를 고를 때도 그렇게 되더라고."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남편이 도박에 미쳐 재산을 탕진하여 이혼 후 아이들을 홀로 키우느라 무척이나 힘들었던 삶이었다. 그랬는데 딸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말았다. 그녀는 상대방의 잘못으로 이혼한 게 이렇게 큰 죄냐고 내게 말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몇 년 전부터 TV에서 '졸혼'이 많이 나온다. 아직 내 주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황혼이혼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 살아온 환경과 성격이 다른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게 쉬운 노릇이 아니라는 걸 결혼한 대부분의 사람은 안다. 오죽하면 수행자로 살아가는 스님이나 신부님이나 수녀님보다 결혼해서 오래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을 더 큰 수행자라는 말이 있을까. 어느 집이나 많은 갈등 상황을 만났을 것이고, 또 그것을 해결하느라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 한쪽이 많이 참음으로써 결혼 생활이 이어진 경우도 있을 테고, 서로 싸우며 당당하게 극복한 경우도 있을 테고, 감정의 교류 없이 침묵 상태로 한 집에서 투명 인간으로 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봤던 오은영 박사님 프로그램에서도 5년 동안 문자로만 소통을 하는 부부가 있었다. 미움의 덩어리가 커지니 말도 섞기 싫다는 의미였다. 그 부부는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안 한다고 했다. 그게 진정 아이들을 위한 거라는 착각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뒷부분을 보지 않아서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숨 막히는 집에서 자랐을 두 아이가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결혼 유지든, 졸혼이든, 이혼이든 누구나  각자의 살아온 삶에 대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던 예전의 내가, 지금은  그들의 삶에 대해 되도록 '판단'을 하지 않으려 하는 건 내 주변의 성품 좋은 몇 사람의 이혼녀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철학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죽기 전에  덜 후회할 삶을 살라고. 그건 덜 후회할 선택을 하라는 의미이다. 선택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하루인데, 그 얼마나 무게 있는 말씀인가. 그래서 매 순간 고민고민하지 않도록, 우선순위와 넘지 말아야 할 선이랄까, 그런 걸 정해놓아야 할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 '내가 행복할 선택인가'에 대한 물음, '이 선택이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건가'에 대한 물음 등 자기만의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삶을 '공부'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 철학교수님 말씀대로 덜 후회할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좋은 물이 들도록 자기를 좋은 곳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 좋은 글과 좋은 책과의 만남, '나처럼 살아라' 말해주는 자연과의 만남...


그러면 될 것 같다. 내가 좀 더 맑히고 밝히려는 작은 노력들이 모여 꽤 괜찮은 삶을 만들어내리라 생각된다. 그저 작은 노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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