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마실까?"
한 사람이 말하면 상대방은 무조건 오케이다. 우리 부부의 결혼 34년은 그렇게 흘러왔다. 어머님을 모시고 살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밖으로 나가서 마셨고, 분가 후에도 그 습관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그냥 집에서 마시게 되었다. 어제는 내가 먼저 말을 꺼냈고, 남편은 미리 사다 놓았던 맥주 캔과 안주를 준비하여 상을 차렸다. 우리가 술을 마시고 싶어 할 때는 털어놓고 싶은 말이 많다는 뜻이다.
나보다 남편이 더 많은 말을 했다. 쌓인 할 말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남편의 이야기는 어머님이 자식들 키우면서 고생하셨던 기억을 계속 더듬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어제 새벽에 올렸던 글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눈물을 속으로 삼켰다. 코만 몇 번 훌쩍일 뿐이었다. 글을 쓸 때도 많이 울었던 나는, 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건 모를 거야. 내가 대여섯 살쯤일까? 엄마는 삼 남매가 어느 정도 자라니까, 보따리 장사를 시작하셨어. 집을 며칠씩 비우곤 하셨지. 누나가 우리들 밥을 챙겨주었고, 밤이 되어도 엄마가 집에 오지 않으시면, 누나랑 나랑 엄마 옷을 꺼내서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잠을 잤던 기억이 있어."
그래, 그랬구나!
이 남자의 기억 항아리에는 아프고도 그리운 것들이 너무나 많아 보였다.
'내가 잘해줄게. 더 많이 사랑해 줄게. 잘 자라서 남편 노릇, 아빠 노릇 잘하고 있어서 고맙고, 무엇보다도 어머니께서 사랑 많이 받고 떠나실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마워. 당신, 멋진 효자였어. 잘했어, 아주 잘했어.'
내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64세의 이 남자를 보며 나는 들리지 않게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