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혹은 푸른 눈의 신부
프롤로그(1954) : 4.3 혹은 푸른 눈의 신부
마치 누군가 아주 중요한 단어를 잊어버린 채, 그 단어가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같았다. 섬 전체가 거대한 실어증(失語症)에 걸린 듯했다. 사람들은 말을 잃었고, 말 대신 침묵하는 법을, 눈빛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이름이 사라진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었고, 어떤 이는 밤중에 끌려갔고, 어떤 이는 들판으로 불려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이 왔고, 군인들이 왔으며, 서쪽에서 말투가 거친 사내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묻지 않았고,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누구를 숨기느냐”고 물었고, “왜 대답이 느리냐”고 소리쳤다.
집은 불탔고, 아이를 안은 여자는 논두렁에 쓰러져 있었고, 사람들은 시신 위에 마른 억새를 덮었다. 눈물은 울음보다 적었고, 그마저도 저녁이 되면 말라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새벽에 개 짖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법을 배웠고, 눈빛으로만 서로를 확인하는 법을 익혔다. 말은 위험했고, 기억은 증거였다. 그리고 증거는 죄였다. 누군가는 빨갱이가 되었고, 누군가는 좌익의 가족이 되었고, 누군가는 그냥 거기 있었던 것만으로 사라졌다.
“그는 왜 죽었습니까?” 누가 묻는다면, “그저 그때,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가장 정확한 대답이었다.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Patrick James McGlinchey). 그가 처음 자신의 이름을 이 섬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은 그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이름은 제주의 거센 바람 속에서는 너무 길고, 복잡했으며, 쉽게 흩어지는 소리의 조합에 불과했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임피제(林彼濟)라고 불렀다. ‘저들을 구제한 숲’이라는 뜻의, 그들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름 없는 이방인이었고, 이 섬은 구원과는 가장 거리가 먼, 잊힌 땅이었다.
그의 세상은 원래 젖은 풀 냄새와, 소젖 짜는 소리와, 그리고 감자밭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아일랜드 더리의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밭에 나가 작물의 안색을 살피는 대신, 밭두둑에 앉아 몇 시간이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아버지는 밭에서 감자나 보리를 수확하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결을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패트릭이 아는 신은, 바로 그 아버지의 침묵과 땅의 흙냄새를 닮아 있었다. 비를 내리게 하고, 감자를 자라게 하며, 때로는 가축의 병을 가져가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변덕스러운 존재. 그는 신학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복잡한 교리를 배웠지만, 여전히 그의 신은 오래된 퇴비 더미에서 피어오르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1953년, 그는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부산항에 처음 발을 디뎠다. 스물다섯의 나이였다. 콜롬반회에서 왜 하필 그를 이곳으로 보냈는지, 그는 명확한 답을 알지 못했다. 그저, 오래된 지도 위를 흐르던 잉크 얼룩이 우연히 멈춘 곳이 한반도의 남쪽 끝이었을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부산의 공기는 잿가루와, 소독약과, 그리고 수많은 죽음이 남기고 간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1년을 보내며, 자신이 배운 모든 교리가 이 거대한 상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배웠다.
그리고 1954년, 그는 제주 한림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제주로 향하는 낡은 연락선 위에서, 그는 처음으로 그 섬의 바람을 마주했다. 그것은 아일랜드의 축축하고 부드러운 바람과는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제주의 바람은 건조했고, 날카로웠으며, 마치 아주 오래된 비밀을 이야기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어버리는 사람의 한숨을 닮아 있었다.
그가 마주한 한림의 사람들은 길 잃은 양 떼가 아니었다. 그들은 차라리,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 파놓고 잊어버린 우물들에 가까웠다. 4.3이라는, 그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비극이 할퀴고 간 그들의 마음은, 바닥 모를 어둠과 그 안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원망의 눈빛들을 품고 있었다. 그는 그 우물들을 그저 가만히 들여다볼 뿐, 섣불리 두레박을 내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의 하루는 지극히 단순하고 규칙적인 리듬으로 흘러갔다. 이른 아침, 낡은 풍로에 불을 붙여 주전자의 물을 끓이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는 미군 부대에서 얻어온 원두를 맷돌에 갈아 커피를 내렸다. 원두가 갈리는 서걱거리는 소리, 뜨거운 물이 부어질 때 피어오르는 구수한 향기. 그에게는 그것이 기도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성경을 펼치는 시간보다, 임시 거처의 좁은 툇마루에 앉아 한림의 바람이 들려주는 침묵의 언어를 해독하려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그는 논쟁 대신 홀로 삽을 들고 터를 닦기 시작했다. 그의 고독한 노동은 거대한 산을 옮기려는 어리석은 노인의 그것과 같았다.
그의 고독한 노동은 계절이 바뀌는 동안 계속되었다. 흙과, 돌과, 그리고 남들이 버린 나무 조각들. 재료는 보잘것없었지만, 그의 집요함은 멈추지 않았다. 멈춰 있던 시간 위로, 서툴지만 단단한 구조물이 아주 서서히,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투박한 한림성당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한 이방인의 고집과, 섬의 버려진 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기이하고 어색한 구조물이었다.
그날 밤, 첫 미사에 모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텅 빈 성당 안에서, 임피제는 제단에 서서 촛불 아래 드러난 몇몇의 무표정한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성당은 지어졌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사람들에게 비를 피할 지붕을 마련해주었지만, 그들의 마음속 깊은 허기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의 시선이 성당 밖, 차갑고 황량한 풍경으로 향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또 다른, 훨씬 더 근원적인 질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