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삽을 든 신부

by 고강아놀자

1부. 돼지은행 혹은 이시돌(1955~1959)

1장. 삽을 든 신부

1955년의 제주는 하나의 거대한, 말이 없는 생명체와 같았다. 4.3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태풍이 모든 것을 할퀴고 지나간 후, 섬은 통째로 숨을 죽이고 있는 듯했다. 바람만이 유일하게 소리를 내는 존재였지만, 그 바람조차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어버리는 사람의 한숨을 닮아 있었다. 바람은 섬의 나지막한 돌담들을 훑고, 억새의 마른 줄기를 흔들고, 바다의 표면을 잠시 주름지게 했다가, 결국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흩어졌다. 마치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그해 봄, 스물여섯의 아일랜드인 임피제(Patrick James McGlinchey) 신부가 그 침묵의 한가운데에 내려섰다. 콜롬반회에서 그를 이곳 한림으로 보냈을 때, 서류상의 목적은 ‘사목(司牧)’이었다. 양을 돌보는 일.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길 잃은 양 떼가 아니었다. 그들은 차라리,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 파놓고 잊어버린 우물들에 가까웠다. 어떤 우물은 맑은 물이 고여 있었지만 그 위로 두꺼운 이끼가 덮여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고, 어떤 우물은 바닥 모를 어둠을 품고 그저 침묵하고 있었으며, 또 어떤 우물은 마른 흙먼지만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그 우물들을 그저 가만히 들여다볼 뿐, 섣불리 두레박을 내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의 하루는 지극히 단순하고 규칙적인 리듬으로 흘러갔다. 이른 아침, 낡은 풍로에 불을 붙여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미군 부대에서 얻어온 원두를 맷돌에 가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원두가 갈리는 서걱거리는 소리, 뜨거운 물이 부어질 때 피어오르는 구수한 향기,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담긴 느리고 무심한 집중. 그에게는 그것이 기도와 다르지 않았다. 커피를 마실 때면, 그는 종종 고향 더리의 농장에 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밭에 나가 작물의 안색을 살피는 대신, 밭두둑에 앉아 몇 시간이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아버지는 밭에서 감자나 보리를 수확하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결을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임피제 역시 그러했다. 그는 성경을 펼치는 시간보다, 임시 거처의 좁은 툇마루에 앉아 한림의 바람이 들려주는 침묵의 언어를 해독하려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고인 물’이었다. 한림의 땅은 물을 잘 머금지 못하는 화산회토였다. 비가 오면 빗물은 땅속으로 스며드는 대신, 얕은 웅덩이를 만들어 며칠이고 그 자리에 머물며 썩어갔다. 여름이면 그 고인 물은 모기와 날벌레들의 요람이 되었고, 흙에서는 늘 축축하고 불쾌한 냄새가 났다. 아이들은 그 물웅덩이에서 놀다 이유 모를 병에 걸리곤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수백 년간 그래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고인 물을 피해 걷는 법을 배웠고, 썩은 물 냄새에 익숙해졌으며, 아이들이 아프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농부의 아들이었던 임피제의 눈에는 그것이 운명이 아니라, 하나의 잘못된 시스템으로 보였다. 마치 혈관이 막혀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하는 것처럼, 마을의 생명력이 어딘가에 정체되어 썩어가고 있었다. 물은 흘러야 했다. 바다로, 혹은 더 낮은 곳으로. 그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정체된 것은 무엇이든 썩기 마련이었다. 물도, 마음도, 그리고 희망도.

어느 날 아침, 그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커피도 내리지 않고, 낡은 단파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려 잡음 섞인 클래식 방송을 찾지도 않았다. 대신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낡은 삽 한 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삽날은 녹이 슬어 있었고, 자루는 거칠어서 손에 잡히는 감촉이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아무런 계획도, 설계도도 없었다. 그는 그저 가장 낮은 곳을 향해, 바다를 향해, 일직선으로 땅을 파내려갔다. 그의 첫 삽질은 서툴고 어색했다. 흙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고,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끊임없이 삽날에 부딪혀 쇳소리를 냈다. 아침 이슬이 마르기도 전에 그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의 기이한 행적은 곧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밭으로 나가던 농부들은 길을 가다 멈춰 서서, 멀찍이서 그를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의아함과 경계심이 뒤섞여 있었다. 코쟁이 신부가, 그것도 멀쩡한 아침부터, 대체 왜 땅을 파고 있는 것인가. 소문은 아침 안개처럼 마을로 퍼져나갔다.

마을 원로 고봉수는 사랑방에 모인 마을 남자들에게 곰방대를 털며 혀를 찼다. “미친놈이 따로 없구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함부로 파헤치다니. 땅에는 다 기운이 있고 혈맥이 있는 법인데, 저러다 땅의 기운이 다 달아나 버릴 텐데.” 그의 걱정은 이 섬사람들이 대대로 공유해 온, 땅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땅은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신당을 지키는 변씨 노인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그는 임피제의 삽질이 마을의 영적인 균형을 깨뜨리는 행위라고 여겼다. “저건 그냥 땅을 파는 게 아니여. 마을의 혈맥을 끊는 짓이란 말이다. 저러다 지신(地神)이 노하면, 가뭄보다 더한 재앙이 닥칠 것이여.” 그는 신당에 올라가 부정을 씻는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임피제는 그 모든 소란을 등진 채, 묵묵히 삽질을 계속했다. 그는 기도하지 않았다. 성경을 읽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땅을 팠다.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흙먼지와 뒤엉켰다. 물집이 잡히고 터져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것은 노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의식에 가까웠다. 그는 땅과 대화하고 있었다. 성경 대신, 사람들의 눈 대신, 그는 침묵하는 땅의 언어를 온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변화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4.3 때 아버지가 눈앞에서 끌려가는 것을 목격한 이후 말을 잃었던 소년, 영호였다. 다른 아이들은 돌멩이를 던지며 그를 놀려댔지만, 영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학교를 오가는 길에, 늘 멀찍이서 임피제의 삽질을 지켜보았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신부의 몸짓과, 점점 길어지는 도랑을. 어느 날 오후, 영호는 조심스럽게 집을 나섰다. 그의 손에는 찌그러진 양철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안에는 시원한 보리차가 담겨 있었다. 그는 임피제가 파놓은 도랑의 가장자리에 섰다. 임피제는 인기척을 느꼈지만,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영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 드세요.” 몇 년 만에 내뱉은 아이의 목소리였다. 임피제는 그제야 삽질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그는 땀을 닦으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없이 다가와 주전자를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시원한 액체가 마른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고맙다.” 그 한마디에 소년은 고개만 꾸벅 숙이고는, 뒤돌아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마치 꿈에서 본 것을 현실에서 확인하고는, 그 꿈이 깨질세라 서둘러 달아나는 것처럼.

임피제의 도랑은 하루가 다르게 길어졌다. 하지만 가뭄은 계속되었고, 비가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노력은 거대한 헛수고처럼 보였다. 바로 그날 밤,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슬비처럼 흩날리던 빗줄기는, 자정이 넘어가면서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폭우로 변했다.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 불안에 떨었다. 코쟁이 신부가 땅의 혈맥을 건드려 노여움을 산 것이라 수군거렸다.

다음 날 아침,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쳐 있었다.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늘 질척거리던 길바닥의 웅덩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밤새 내린 빗물은 모두 임피제가 파놓은 도랑으로 모여들어,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흙탕물은 도랑을 따라 기세 좋게 흘러, 저 멀리 바다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막혔던 혈관이 뚫린 것처럼, 정체되어 있던 마을의 물이 비로소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이방인의 기이하고 무모해 보였던 삽질이, 결국에는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지극히 단순한 원리, 즉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을 실행에 옮긴 결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기적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임피제는 자신의 거처 툇마루에 앉아, 그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감이나 기쁨이 아니었다. 차라리 하나의 과제를 끝낸 사람이 느끼는, 고요하고 깊은 피로감에 가까웠다. 물은 흐르기 시작했지만, 이 섬의 생명력은 여전히 다른 곳에서 정체되어 있었다. 그의 눈에 또 다른 ‘공백’이 들어왔다.

그가 보기에, 제주의 돼지는 하나의 완벽하게 닫힌 세계와 같았다. 외부로 향한 문도, 창문도 없이,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나는, 이를테면 잘 만들어진 테르모스 병 같은 존재. 물론 그 안에는 나름의 논리와 질서가 있었다. 사람들은 먹고 남은 것을 돼지에게 주었고, 돼지는 그것을 먹고 자랐다. 사람들은 배설을 했고, 돼지는 그것마저 처리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마을에 큰일이 있을 때면 돼지는 검은 피를 쏟으며 그 순환의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임피제 신부는 그 완벽함 속에서 어떤 근원적인 결여를 느꼈다. 그것은 마치 한 음이 빠진 채 끝없이 반복되는 재즈의 리프 같았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위생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단어에 관한 것이었다. ‘돗통시’라 불리는 그 공간은 언제나 축축했고, 무거운 냄새가 공기 중에 짙은 얼룩처럼 배어 있었다. 파리들은 마치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듯 윙윙거리며 날아다녔고, 모든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한, 원시적인 수프처럼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아주 조금씩, 매일매일 갉아먹는 보이지 않는 곰팡이와 같았다.

두 번째 문제는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제주의 검은 돼지는 이 섬의 척박한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이를테면 살아있는 화석 같은 존재였다. 무엇이든 먹었고, 웬만해선 병에 걸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강인함의 대가는 성장의 정체였다. 돼지들은 눈에 띄게 더디게 자랐고, 한번에 낳는 새끼의 수도 많지 않았다. 한 마리의 돼지가 자산이 되기까지는 하염없는 시간이 걸렸고, 그 자산이 스스로를 불려 나갈 가능성 또한 희박했다. 그것은 생존이었지만, 번영은 아니었다.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장의 굶주림을 면하게 할 최소한의 단백질이지,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자산이 아니었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시간을 살아갈 뿐, 미래라는 시간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임피제는 깨달았다. 이 섬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울 고기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개선될 수 있는 내일’이라는 관념 그 자체였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 그 가능성을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이 필요했다. 이 완벽하게 닫힌 시스템에,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던져 넣어야만 했다.

그는 결심했다. 이 섬에, 새로운 시간을 선물해야겠다고. 설령 그것이 하얗고, 불길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도랑 파기로 얻은 것은 사람들의 신뢰가 아닌, ‘예측 불가능함’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그는 이 기묘한 신용을 바탕으로, 더 크고 위험한 두 번째 퍼즐에 손을 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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