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과부의 눈물

by 고강아놀자

제3장. 과부의 눈물

1956년의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혹은 강매실에게만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더 이상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측정되지 않았다. 그것은 돼지가 여물을 먹고, 똥을 싸고, 다시 배고파하며 꿀꿀거리는 소리의 간격으로 측정되었다. 그녀의 세상은 낡은 집과, 그보다 더 낡은 뒷간 옆에 붙은 돼지우리, 그 두 개의 점을 잇는 짧은 선분 안에서만 존재했다. 그 선분 밖의 세상은 그녀를 향해 등을 돌렸다.

하얀 돼지가 그녀의 삶으로 들어온 이후, 마을은 그녀를 유령으로 취급했다. 그것은 노골적인 폭력이나 욕설이 아니었다. 차라리, 고장 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주파수의 소음 같은 것이었다.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는, 신경을 갉아먹는 그런 종류의 적의. 냇가에 빨래를 하러 가면 아낙들은 그녀의 그림자조차 밟기 싫다는 듯 자리를 피했고, 장에 가서 보리쌀 한 됫박을 사려 해도 상인은 그녀의 얼굴 대신 먼 산을 바라보며 돈을 받았다. 그녀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지 않음으로써, 그녀와 그녀가 짊어진 불길한 돼지의 존재를 자신들의 세계에서 지워버리려 했다.

가장 큰 고통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학교에 간 아이들은 ‘돼지 각시 아들’, ‘코쟁이 첩년의 새끼’라는 말을 돌멩이처럼 맞고 돌아왔다. 아이들은 울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말을 잃었다. 4.3의 그날 이후로 겨우 희미한 색을 되찾아가던 아이들의 세상은 다시 잿빛으로 가라앉았다. 아이들은 집 안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였고, 그들의 눈은 어미를 잃은 짐승의 그것처럼 공허했다.

강매실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돼지의 꿀꿀거리는 소리가 바람 소리에 섞여 얇은 벽을 뚫고 들어왔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 생각했다. 이것은 희망인가, 아니면 더 교묘한 형태의 절망인가. 그 푸른 눈의 신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게 이런 짐을 지운 것인가. 그는 마치 어떤 기묘한 실험을 하는 과학자 같았다. 쥐에게 미로를 주고, 그 안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 나가는지 무심하게 관찰하는.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 그리고 이 돼지는 그의 거대한 실험실 안에 갇힌 피실험체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하얀 돼지는 끊임없이 먹어댔다. 마치 세상의 모든 허기를 제 한 몸에 빨아들이려는 듯했다. 강매실은 돼지를 먹이기 위해 온종일 섬을 헤맸다. 밭에서 버려진 썩은 고구마 줄기를 줍고, 산에 올라 먹을 수 있는 풀과 뿌리를 캤다. 어떤 날은 텅 빈 광주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멀건 죽을 퍼서 돼지에게 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원망도, 이해도 아닌, 그저 텅 빈 슬픔만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여러 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밤중에 몰래 돼지를 끌고 나가, 절벽 아래로 밀어버릴까 하는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단지 신부와의 약속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느새 이 하얀 돼지와 기묘한 연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둘 다 이 섬에서 철저히 고립된 이방인이었다. 둘 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돼지의 생존은 곧 그녀와 그녀 아이들의 생존과 다르지 않았다.

임피제 신부는 그 실험실의 주인이었지만, 어떤 지시도, 개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아침마다 커피를 내렸고, 낡은 단파 라디오로 미군 방송을 들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너머로 들려오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차갑고 절제된 트럼펫 소리가 방 안을 채울 때면, 그는 툇마루에 앉아 멀리 강매실의 집 지붕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연기를 바라보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나 구호품이 아니라는 것을. 이 실험의 핵심은 ‘스스로 길을 찾아내는 과정’ 그 자체에 있었다. 외부의 개입은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모든 것을 방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방식은 독특했다. 그는 자신의 작은 거처 옆에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고구마와 배추, 무 따위를 심었다. 마을 사람들은 신부가 소일거리로 밭을 가꾼다고 생각했다. 그는 수확한 채소의 대부분을 자신이 먹지 않았다. 대신 이른 새벽,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마을 공동 우물가에 채소를 한 소쿠리 가져다 놓곤 했다. 마치 누군가 깜빡 잊고 두고 간 것처럼.

강매실은 매일 새벽 가장 먼저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다. 그녀는 처음 며칠간 소쿠리를 본체만체했다. 주인이 찾으러 오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쿠리는 며칠이 지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 후, 소쿠리에 담긴 싱싱한 배춧잎과 고구마 줄기를 자신의 물동이 아래에 숨겨 집으로 가져왔다. 그날 저녁, 돼지는 처음으로 포식을 했다. 아이들의 밥상에도 오랜만에 푸성귀가 올라왔다. 누구도 그 채소가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만의 암묵적인 비밀이었다.

강매실과 임피제 사이에는 단 한마디의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우물가의 소쿠리를 통해 기묘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나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이자,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응답이었다. 그것은 자선이 아니었다. 그녀가 새벽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부지런함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무릅쓰고 소쿠리를 집어 들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그 채소는 그저 썩어 없어졌을 것이다. 그것은 임피제가 설계한,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지극히 정교한 시스템이었다.

변화는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강매실의 큰아들, 열두 살의 영호였다. 4.3 때 아버지가 눈앞에서 끌려가는 것을 목격한 이후, 아이는 말을 잃고 그림자처럼 지냈다. 그 영호가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를 돕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돼지우리의 똥을 치우고, 꼴을 베어 왔다. 그는 돼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하얀 생명체에게서 어떤 동질감을 느끼는 듯했다. 어느 날 저녁, 강매실은 영호가 돼지에게 말을 거는 것을 들었다.

“야, 허연 놈아. 많이 묵고, 튼튼한 새끼를 낳아야 한다. 알았냐? 그래야 우리도 산다.”

그것은 아이가 몇 년 만에 내뱉은 가장 긴 문장이었다. 강매실은 부엌 아궁이 앞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그녀의 눈물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희미한 온기 때문이었다. 저주 같았던 하얀 돼지가, 닫혀 있던 아들의 마음을 열게 한 첫 번째 열쇠가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을의 냉기는 더욱 차가워졌다. 그해 여름, 극심한 가뭄이 섬을 덮쳤다. 밭은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졌고, 우물은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허연 살’ 때문이라고 수군거렸다. 신당을 지키는 변씨 노인은 이것이 하늘의 마지막 경고라고 떠들어댔다. 그의 말은 가뭄에 타들어 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어느 날 밤, 사건이 터졌다. 술에 취한 마을 장정 몇몇이 횃불을 들고 강매실의 집으로 몰려온 것이다. 그들은 당장 그 재앙 덩어리를 내놓으라며 사립문을 부술 듯이 흔들어댔다.

“이년아! 문 열어! 저 요물 단지를 당장 내놓지 못할까!”

“저것 때문에 마을이 다 망하게 생겼다!”

강매실은 다섯 아이를 품에 안고 방 안에서 공포에 떨었다. 4.3의 그날 밤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남자들이 횃불을 들고 몰려와, 남편을 끌고 갔었다. 그녀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바로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임피제 신부가 나타났다. 그는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성난 무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것은 저 여인의 것입니다. 누구도 손댈 수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이상한 힘이 실려 있었다. 술에 취한 장정 하나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 코쟁이 새끼가! 네놈 때문에 마을이 다 죽게 생겼다!”

임피제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남자의 주먹을 정면으로 맞았다. 그의 입술이 터지고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다. 그의 푸른 눈이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났다. 그 눈빛에는 분노나 두려움이 아니었다. 차라리 깊은 슬픔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그 시선 앞에서 장정들은 주춤거렸다. 한낱 코쟁이 신부의 저항이 아니라, 자신들의 폭력과 마주한 듯한 기묘한 기시감 때문이었다. 그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물러갔다.

그날 이후, 임피제는 자신의 거처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마리의 하얀 돼지를 우리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집 마당,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풀어놓고 키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의 선언이었다. 그는 이제 숨어서 실험하지 않겠다는, 이 모든 위험과 책임을 정면으로 감수하겠다는 무언의 선포.

이제 한림 마을에는 두 개의 기묘한 풍경이 생겨났다. 과부의 집에서 자라는 하얀 돼지와, 신부의 집에서 자라는 하얀 돼지. 사람들은 그 두 마리의 돼지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신부의 돼지는 날이 갈수록 살이 오르고 윤기가 흘렀다. 신부가 미군 부대에서 좋은 사료를 얻어다 먹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반면 강매실의 돼지는 겨우 굶주림을 면하는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강매실을 비웃었다. “제깟 게 뭘 안다고. 그러니 과부로 살지.” 하지만 그 비웃음 속에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종류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경쟁’이라는 이름의 호기심이었다. 과연 저 과부의 돼지는, 신부의 돼지를 이길 수 있을까.

강매실은 그 시선들을 느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녀의 눈물은 이미 지난겨울에 모두 말라버렸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오기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돼지를, 아니, 자기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녀는 이전보다 더 필사적으로 일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임피제 신부가 했던 것처럼, 자신의 집 뒤편의 작은 공터에 삽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그녀는 신부가 했던 것처럼,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고, 밭을 일구었다. 그녀는 그곳에 우물가에서 얻어온 채소의 씨앗을 심었다.

그녀의 작은 밭에서 첫 싹이 돋아나던 날, 임피제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렸다. 오스카 피터슨의 경쾌한 피아노 트리오가 잡음과 함께 흘러나왔다. 그의 시스템이, 이제 스스로 복제하고 확장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진짜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강매실의 돼지가 병이라도 들거나, 새끼를 낳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될 터였다. 혹은, 새끼를 낳는다고 해도, 그녀가 과연 그 ‘세상에 없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인간의 욕망이라는 가장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는 피아노 선율에 몸을 맡긴 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어느 지점을 가만히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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