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두 번째 돼지

by 고강아놀자

제5장. 두 번째 돼지

강매실이 약속을 지킨 그날 이후, 한림 마을에는 기이한 정적이 흘렀다. 그것은 하얀 돼지가 처음 나타났을 때의 그 적의에 찬 침묵과는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하거나, 그녀의 등 뒤에서 저주를 퍼붓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멀찍이서,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집요한 시선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난생 처음 보는 기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는 아이의 그것과 같았다.

강매실의 삶은 역설적으로 이전보다 더 고독해졌다. 마을의 일원으로서 미움받던 그녀는, 이제 마을의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난 미지의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전히 가난했고, 여전히 과부였으며, 여전히 다섯 아이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전에는 없던 것이 하나 생겨났다. 그것은 여덟 마리의 새끼 돼지라는 실질적인 자산이자, 동시에 ‘약속을 지킨 사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용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섬에서는 통용된 적 없던 새로운 종류의 화폐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변했다. 더 이상 새벽 우물가에서 누군가 두고 간 채소 소쿠리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일군 작은 밭에서 나온 수확물과, 산과 들에서 얻은 것들로 여덟 마리의 돼지와 다섯 아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배를 채웠다. 그녀의 허리는 더 깊이 휘었지만, 눈빛은 이전보다 꼿꼿해졌다. 그녀는 더 이상 세상의 동정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작은 왕국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내는, 고독하지만 온전한 여왕이었다.

마을의 진짜 관심사는 이제 강매실이 아니었다. 그들의 시선은 두 개의 새로운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하나는 아내를 잃고 세 아이와 함께 망연자실한 나날을 보내던 홀아비 김만수의 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그 속을 알 수 없는 임피제 신부의 거처였다.

임피제 신부가 강매실에게 돌려받은 새끼 돼지 한 마리를 김만수의 집 문 앞에 놓아두고 사라진 그날 오후, 마을은 다시 한번 술렁였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하필 김만수인가. 그는 강매실처럼 생활력이 강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신부와 특별한 교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아내를 잃은 슬픔에 잠겨, 술로 하루를 보내는 무기력한 사내일 뿐이었다.

“필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어.”

“김만수 그 인간이 돼지를 제대로 키우기나 하겠어? 며칠 못 가 잡아먹거나, 술값에 팔아버릴 게 뻔하지.”

사람들의 예측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그들의 생각은 자신들이 평생을 살아온 세계의 논리, 즉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더 잃게 된다’는 법칙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 법칙에 따르면, 김만수는 실패할 것이 분명했다.

김만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그날 아침, 문 앞에서 낑낑거리고 있는 하얀 새끼 돼지를 발견하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는 어젯밤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아내를 잃은 슬픔이 마침내 헛것을 보게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돼지는 분명히 실재했다. 따뜻한 온기를 가졌고, 배고프다며 그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그는 잠시 동안 그 돼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이것은 신부가 보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왜? 그는 지난 몇 달간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하얀 돼지 소동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강매실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그녀처럼 독하지도, 부지런하지도 못했다. 그는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남자일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돼지를 장에 내다 파는 것이었다. 몇 푼이라도 손에 쥐면, 당분간은 아이들을 굶기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방 안에서 아이들이 그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아이들의 눈에는 희미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강매실네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 하얀 돼지가 자신들의 삶에도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모른다는 그런 종류의 기대. 그는 차마 아이들의 그 기대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돼지를 우리 안에 가두고, 한숨을 내쉬며 마루에 주저앉았다.

임피제 신부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물리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방 안에서 낡은 단파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듀크 엘링턴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있었다. 수많은 악기들이 각자의 소리를 내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그 음악 속에서, 그는 자신이 설계한 시스템의 두 번째 사이클이 어떻게 시작되고 있는지 상상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김만수는 강매실과 다르다는 것을. 강매실이 ‘생존’이라는 절박함을 동력으로 움직였다면, 김만수는 ‘상실’이라는 거대한 구멍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동력이 없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다른 종류의 개입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직접적인 도움이어서는 안 되었다. 시스템의 자생력을 해치지 않는, 최소한의 개입.

며칠 후, 임피제는 말을 잃었던 강매실의 큰아들, 영호를 불렀다. 그는 영호에게 자신이 키우던 돼지의 우리를 청소하는 법과, 미군 부대에서 얻어온 사료와 섬의 풀을 어떤 비율로 섞어 먹이를 만드는지를 가르쳐주었다. 그는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며칠 동안 자신의 옆에서 일을 배우게 했을 뿐이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영호에게 작은 자루에 담은 사료를 건네며 말했다.

“이것을 김만수 씨에게 가져다주렴. 그리고 네가 나에게 배운 대로, 그 집 돼지우리를 청소하는 것을 도와주어라.”

영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이는 어느새 신부의 기이한 언어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는 사료 자루를 들고 김만수의 집으로 향했다. 김만수는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자신보다 훨씬 어린 아이가 묵묵히 똥오줌으로 가득 찬 돼지우리를 치우고, 먹이를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차츰 마음을 열었다. 영호는 일을 하는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김만수에게 그 어떤 위로나 격려보다 더 큰 울림을 주었다. 그것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렇게 임피제의 시스템은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신부와 수혜자 사이의 일대일 관계가 아니었다. 시스템의 첫 번째 성공 사례(강매실)가, 시스템의 새로운 참여자(영호)를 통해, 시스템의 위기 요소(김만수)를 지원하는 복잡하고 유기적인 네트워크로 발전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돼지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돼지를 얻을 수 있는 조건’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강매실처럼 독하거나, 김만수처럼 불쌍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영호처럼 신부의 눈에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답을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버려두었던 집 뒤편의 자투리땅을 일구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집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푸른 눈의 신부가 보고 있는 것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가난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라는 것을. 그들은 다음 차례의 ‘선택’을 받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마을 원로 고봉수는 사랑방에 앉아 그 모든 변화를 지켜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경멸이 아닌, 깊은 혼란이 담겨 있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저 코쟁이는 돈 한 푼 쓰지 않고, 쌀 한 톨 내주지 않으면서 마을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으니. 대체 저자의 무기는 뭐란 말인가.”

임피제 신부의 손에는 여전히 강매실에게 돌려받은 두 마리의 새끼 돼지 중, 마지막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돼지를 자신의 집 마당에서 정성껏 키웠다. 그는 그 돼지를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통제 집단’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스템을 통해 분양된 돼지들(강매실과 김만수의 돼지)과, 가장 이상적인 조건에서 자라는 자신의 돼지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비교하고 있었다. 그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다음 단계의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임피제는 마을 회관 앞에 작은 팻말 하나를 세웠다. 팻말에는 서툰 한글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돼지를 키우고 싶은 사람은, 돼지가 살 집부터 지으시오.>

그것이 전부였다. 어떤 설명도, 조건도 없었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은 마을에 그 어떤 긴 연설보다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곧 그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신부는 이제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적극적으로 ‘지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은 집안의 사정도, 개인의 능력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준비된 자의 의지’였다.

그날 이후, 마을 곳곳에서 망치 소리와 톱질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 옆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돼지우리를 짓기 시작했다. 어떤 우리는 튼튼했고, 어떤 우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허술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형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멈춰 있던 사람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임피제는 자신의 방 창가에 서서, 그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이 섬에 온 이후로 들어본 가장 희망적인 소리였다. 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를 들으며 생각했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제 시스템은 스스로 참여자를 모으고, 스스로 확장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시스템이 커질수록, 위험 역시 커진다는 것을. 더 많은 돼지는 더 많은 먹이를 필요로 할 것이고, 더 많은 먹이는 더 많은 갈등을 낳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시기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존재가 있었다. 신당의 변씨 노인. 그는 이 새로운 흐름이 자신의 영적인 권위를 어떻게 침식하고 있는지 분명히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그는 과연 언제까지 침묵하고 있을까. 임피제는 피아노 선율 너머로, 다가올 또 다른 폭풍의 희미한 전조를 느끼고 있었다.

이전 05화제4장. 세상에 없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