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한 회사이름과 직급을 떼고 명함을 내민다면 나를 어떤 사람이라 소개할 수 있을까? 공학을 전공하고 건설회사 밥 먹은지 10년이 되었다. 자는 시간 7시간, 출퇴근과 업무 시간 10시간 가량을 빼고 남은 시간 동안, 그러니까 '김과장'도 '수면모드'도 아닌 상태에서 하루를 기쁘게 보내는 활동은 기록, 바로 글쓰기 였다.
블로그를 10년 가까이 운영 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사는 이야기를 글로 나누었지만 점점 호흡이 긴 기록에 목말라 갔다. 브런치와의 첫만남이 언제 였는지 선명하지 않지만 첫인상은 종이책 감성을 옮겨 놓은 듯한 '있어빌리티'를 가진 플랫폼이라는 느낌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문턱이라 생각했지만 용기를 조금 보태어 브런치 작가가 되겠다는 선언을 ‘소망 노트’에 적었다.
2020.7.18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길 원한다.
투머치토커가 되고 싶은 디지털 수다꾼인 내가 진심을 담아 두번째로 문을 두드렸을 때 넓은 글쓰기 운동장의 입장권이 주어졌다. 나는 2020년 9월 24일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첫번째로 작가 승인이 나지 않았을 때 답은 내 안에 있다는생각을 했다. 기름기와 미사여구를 쫙 빼고 오롯이 나로부터 나온 글을 보여 주겠다는 다짐으로 돋보기를 들고서 내 머릿 속 그리고 내 삶 속 구석구석을 들여다 봤다.
첫째. 나의 ‘전문’분야와 ‘취미’분야는 뭘까.
둘째. 나만 가지고 있는 경험은 뭘까.
셋째. 내 블로그 글 중 공감을 많이 받은 글은 뭐였을까.
브런치는 스스로 기록하는 자를 돕는다. 다음카카오에 속해 있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는 작가들이 쓴 글을 엄선해 다음 메인 페이지에 띄워준다. 특히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얼마 안된 초창기 브런치 작가의 글은 다음 메인에 올라갈 확률이 높다.
처음으로 다음 메인에 내 글이 올라간 날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두 번째로 쓴 글 ‘퇴사할 때 동료들에게 뿌리고 온 퇴사 절차 안내서’ 이었다. 조리법과 재료가 좋았다기 보다는 소스가 맛있어서 잘된 맛집 같은 느낌의 글이었다. 다시 말해 글감이나 글재주가 좋았다기 보다는 첨부한 ‘짤’이 좋아서 뜬 글이었달까. ‘100명이 이 글을 읽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진동 알림이 왔다. 이후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는 더 빠른 주기로 진동이 왔다. ‘조회수가 3만을 돌파 했습니다!’ 알림화면을 캡쳐해 한참을 눈을 꿈뻑이며 보다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되는 상상을 하며 잠들었다.
다음 날 글을 다시 읽어 보며 다음 메인 페이지에 오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살면서 한 번 해 본 별거 아닌 경험이라 생각한 ‘퇴사’이야기를 툭 꺼내놓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재밌어 할 줄 몰랐다. ‘퇴사와 이직에 대한 글을 직장인들이 재미있게 생각하는 구나.’ 하고는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어 퇴사와 이직에 대한 글을 연재하기로 결심했다. 매거진 주소는 퇴사와 이직을 영어로 그러니까 음… ‘teoisanizic’ 이라 정했는데 괜히 뿌듯했다. 친구들에게 썰을 푸는 마음으로 내 사소한 경험들을 브런치의 바다에 던졌다.
영원한 글쓰기 짝꿍은 블로그 인줄 알았는데 브런치로 바람이 났다. 점차 내 글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구독자도 생겼다. 브런치 라이킷이 주는 뿌듯함의 무게는 블로그의 그것보다 묵직했다. 블로그 이웃이 늘고 줄 때보다 브런치 구독자가 늘고 줄 때 더 크게 일희일비했다.
블로그는 맛집이나 상품을 키워드로 검색해 유입된 독자가 많아 때로는 고깃집 냄새를 폴폴 풍겨야 했다. 늘 진실한 리뷰를 썼지만 가면을 쓴 기분이었다. 곱게 화장하지는 못해도 가면은 그만 벗고 민낯을 드러내며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맛집리뷰를 할 때 비추천 보다는 ‘어머, 이거 꼭 먹어 봐야 해요!’ 라는 추천글이 훨씬 많다.
https://unsplash.com/@pawel_czerwinski
추천이나 긍정적인 감정을 노란색이라 하고 비추천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파란색이라고 해보자. 블로그 글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노란색으로 바탕을 진하게 칠한 다음 파란 물감을 묻힌 붓끝을 통통 튀겨 파란색을 입혔다고 할까. 반면 브런치 글은 다채롭다. 때로는 마이너스 감정이 가득한 파랑이 바탕색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파랑과 노랑 잉크가 마구 섞여 마블링 가득한 한편의 글이 된다.
브런치에 50여개의 글을 남기며 느낀 브런치만의 특장점을 3가지로 꼽아본다.
https://unsplash.com/@daen_2chinda
첫째, 브런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마치 화이트 톤 카페 테이블에 놓인 KINFOLK 잡지 같다. 양질의 글에 맥을 끊는 광고도 없다. 작가에게는 세련된 인터페이스를, 독자에게는 아늑한 느낌을 주어 같은 글을 담아도 가독성이 더 높다. 독자들 또한 스크롤을 내리는 노력으로 잘 차려진 글을 탐독할 수 있다.
둘째, 생산적인 협업기회를 얻을 수 있다.
출판사에서 출간제의가 들어오기도 하고 협업 제안을 받기도 한다. 나 또한 협업제안을 받아 블로그를 하면서 한번도 해 보지 못한 생산적인 협업을 해 보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내가 직접 손을 뻗어 브런치 작가에게 인터뷰 제안을 하기도 했다. 블로그처럼 광고를 붙여 달라는 제안이 아니라 생산적인 아웃풋을 통한 ‘협업 제안’이었다. 이로써 회사 밖에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낼 수 있는 사람임을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https://unsplash.com/@glenncarstenspeters
셋째, 양질의 글을 발행하며 글쓰기 실력이 향상된다.
글감과 비유 표현이 쉴새 없이 머릿속을 드나들어 머릿속을 빠져나가기 직전에 날아가는 문장과 단어를 붙잡느라 바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늘 바라는 만큼 사랑받기에는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혼자 키득대며 쓴 글은 독자들 반응도 좋았다. 예전에 블로그에 남긴 글보다 요즘 쓴 브런치 글이 훨씬 글맛이 사는 걸 보면 글발이 좀 생긴건가 싶다.
흰 바탕에 '본고딕'체로 써 내려가는 브런치 글, 브런치 작가는 오늘도 좋아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