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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Aug 25. 2023

책상 공간에도 이름이 있나요?

집현전을 소개합니다


서재라고 하기에는 책장이 없는 나의 작은 지적 생활공간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안방에 있던 화장대를 당근마켓으로 떠나보내작은방에 있던 책상을 화장대 자리에 옮겨 두었다. 안방 한 구석뜬금없이 책상을 둔 모양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자취하던 원룸 시절이 생각날 만큼 아늑해졌다. 책상 위에 나의 장난감인 노트, 만년필, 스티커, 색연필 등등 이것저것 꺼내 놓고 꼬물거린다. 그 공간을 나는 '집현전'이라 이름 지었다.


'집현전'이라는 단어로 오글거리는 삼행시를 이것저것 지어보며 의미를 부여해 보았는데, 그보 더 '집현전'이라는 이름에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선유도역 근처에서 발견한 이 잡화점 덕분이었다. 문구, 잡화, 철물이 있는 이 공간의 이름도 '집현전'이로구나. 그 이름의 사연을 아직 알지는 못했지만 파란 간판에 반듯한 폰트로 쓰인 '집현전'의 간판은 나를 정말 가슴 뛰게 했다. 1989년도부터 집현전이 생겼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내가 1989년생이니 말이다. 언젠가 한번 꼭 퇴근길에 들러 주인분을 만나고 싶은 잡화점이다.


'집현전'의 이름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집현전을 상징하는 책상으로 눈을 돌려본다. 책상은 5년 전 결혼을 하며 작은방을 꾸밀 때 구입했다. '소프시스'라는 조립형 가구 브랜드에서 그 당시 3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산 이 책상은 어찌나 튼튼하고 쓰임새가 있는지 지금까지도 집현전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이 책상 공간은 집순이인 내게 정말 아늑한 공간이다. 아늑할 뿐 아니라 그 열기로 아주 뜨끈뜨끈하다. 온도 감지계로 안방을 찍었을 때 책상 공간은 안방에서 가장 빨간, 즉 온도가 높은 공간 일테다. 퇴근 후 부캐모드로 전환하여 글을 쓰기도 하고 책도 읽으며 열성을 다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는 의자를 뒤로 조금 젖히고 다리를 침대 위에 올린 자세로 읽어야 책 읽기가 가장 좋다. 다리도 허리도 편할뿐더러 무엇보다 안방 천장 정가운데 있는 조명이 그대로 책 위에 비쳐서 더 집중이 잘 된다.


집현전이라는 이 공간에 가족도 친구도 아닌 손님이 온 적이 있다. 그건 바로 '전원생활'이라는 잡지의 기자분과 사진작가분이다. '전원생활'  올해 2월호에서 '문구'라는 콘셉트로 이야기를 다뤘는데, 내 블로그에서 <월간 어른의 다꾸>를 연재한 것을 보고 나에게 인터뷰 제안을 해왔다. '집현전'이라는 공간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말씀에 나는 많이 놀랐다.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별 거 없는 공간, 때로는 책과 종이쪼가리, 가위, 풀테이프들이 널부러져 엔트로피가 최고조로 오르는 이 너저분한 공간을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건 상상도 해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어렵겠다고 조심스러운 거절의사를 말씀드린 후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었지만 카페에서도 사진촬영을 허용하지 않아 마땅한 장소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우리집, 안방, 집현전이라는 GPS 좌표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화장실에 누군가와 같이 들어갈 수 없듯이 개인적인 (물론 조금 다른 의미지만) 공간인 '집현전' 인지라 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노트와 문구용품, 만년필 등을 꺼내 보이며 <월간 어른의 다꾸>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편하게 풀어갈 수 있는 공간은 '집현전' 뿐이었다.  며칠 전부터 책상 정리정돈과 쓸고 닦기를 반복하며 그 작은 공간에 광을 내보았다. 인터뷰 당일, 기자분과 사진작가분이 왔고 나는 음료와 토스트를 내어 드렸다. 내 평생 인터뷰라는 걸 해본 적 없을뿐더러, 무엇보다도 '문구'에 대한 인터뷰는 내게 처음 있는 일이어서 많이 부끄러웠지만 사실 나는 말하면서 내심 신이 나기도 했다. 내 팔 너비만 한 지름의 조명을 놓고 '집현전'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집현전' 역사상 최고의 쓸모를 자랑한 날이었다.


나의 작은 지적 생활공간, 책상 공간 '집현전'. 할머니가 되어서까지도 이 공간에서 내 역사를 일기장에 남기고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를 키워나가고 싶다. 그때는 지금의 인터뷰보다 더 깊고 넓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기 위해.


전원생활 인터뷰는 아래 링크로 붙여둡니다.




다시 봐도 놀라운 Since 1989 문구 집현전.... 이것은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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