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라고 하기에는 책장이 없는 나의 이 작은 지적 생활공간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안방에 있던 화장대를 당근마켓으로 떠나보내고 작은방에 있던 책상을 화장대 자리에 옮겨 두었다. 안방 한 구석에 뜬금없이 책상을 둔 모양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자취하던원룸 시절이 생각날 만큼 아늑해졌다. 책상 위에나의 장난감인 노트, 만년필, 스티커, 색연필등등이것저것 꺼내 놓고 꼬물거린다. 그 공간을 나는 '집현전'이라 이름 지었다.
'집현전'이라는 단어로 오글거리는삼행시를 이것저것지어보며 의미를 부여해 보았는데,그보다 더 '집현전'이라는 이름에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선유도역 근처에서 발견한 이 잡화점 덕분이었다. 문구, 잡화, 철물이 있는 이 공간의 이름도 '집현전'이로구나. 그 이름의 사연을 아직 알지는 못했지만 파란 간판에 반듯한 폰트로 쓰인 '집현전'의 간판은 나를 정말 가슴 뛰게 했다. 1989년도부터 집현전이 생겼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내가 1989년생이니 말이다. 언젠가 한번 꼭 퇴근길에 들러 주인분을 만나고 싶은 잡화점이다.
'집현전'의 이름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집현전을 상징하는 책상으로 눈을 돌려본다. 책상은 5년 전 결혼을 하며 작은방을 꾸밀 때 구입했다. '소프시스'라는 조립형 가구 브랜드에서 그 당시 3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산 이 책상은 어찌나 튼튼하고 쓰임새가 있는지 지금까지도 집현전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이 책상 공간은 집순이인 내게 정말 아늑한 공간이다. 아늑할 뿐 아니라 그 열기로 아주 뜨끈뜨끈하다. 온도 감지계로 안방을 찍었을 때 책상 공간은 안방에서 가장 빨간, 즉 온도가 높은 공간 일테다. 퇴근 후 부캐모드로 전환하여 글을 쓰기도 하고 책도 읽으며 열성을 다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는 의자를 뒤로 조금 젖히고 다리를 침대 위에 올린 자세로 읽어야 책 읽기가 가장 좋다. 다리도 허리도 편할뿐더러 무엇보다 안방 천장 정가운데 있는 조명이 그대로 책 위에 비쳐서 더 집중이 잘 된다.
집현전이라는 이 공간에 가족도 친구도 아닌 손님이 온 적이 있다. 그건 바로 '전원생활'이라는 잡지의 기자분과 사진작가분이다. '전원생활' 은 올해 2월호에서 '문구'라는 콘셉트로 이야기를 다뤘는데, 내 블로그에서 <월간 어른의 다꾸>를 연재한 것을 보고 나에게 인터뷰 제안을 해왔다. '집현전'이라는 공간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말씀에 나는 많이 놀랐다.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별 거 없는 공간, 때로는 책과 종이쪼가리, 가위, 풀테이프들이 널부러져 엔트로피가 최고조로 오르는 이 너저분한 공간을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건 상상도 해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어렵겠다고 조심스러운 거절의사를 말씀드린 후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었지만 카페에서도 사진촬영을 허용하지 않아 마땅한 장소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우리집, 안방, 집현전이라는 GPS 좌표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화장실에 누군가와 같이 들어갈 수 없듯이 개인적인 (물론 조금 다른 의미지만) 공간인 '집현전' 인지라 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노트와 문구용품, 만년필 등을 꺼내 보이며 <월간 어른의 다꾸>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편하게 풀어갈 수 있는 공간은 '집현전' 뿐이었다. 며칠 전부터 책상 정리정돈과 쓸고 닦기를 반복하며 그 작은 공간에 광을 내보았다. 인터뷰 당일, 기자분과 사진작가분이 왔고 나는 음료와 토스트를 내어 드렸다. 내 평생 인터뷰라는 걸 해본 적 없을뿐더러, 무엇보다도 '문구'에 대한 인터뷰는 내게 처음 있는 일이어서 많이 부끄러웠지만 사실 나는 말하면서 내심 신이 나기도 했다. 내 팔 너비만 한 지름의 조명을 놓고 '집현전'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집현전' 역사상 최고의 쓸모를 자랑한 날이었다.
나의 작은 지적 생활공간, 책상 공간 '집현전'. 할머니가 되어서까지도 이 공간에서 내 역사를 일기장에 남기고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를 키워나가고 싶다. 그때는 지금의 인터뷰보다 더 깊고 넓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