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지영 Aug 11. 2020

당연한 것들, 당연하지 않은 것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언제부터였을까. 학교 졸업과 취업, 결혼의 나이가 정해져 있었는지를. 우리는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어 본 적은 없지만, 암묵적으로 이 모든 일이 정한 때와 기한이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디 삶이란 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있을까.      


  ‘오늘은 영서지방에 20mm만 내렸으면 좋겠어.’

  ‘코로나19는 이번 달 말까지만 있다가 소멸해주렴.’

  ‘우리 단지는 내일까지 단수 안되게 해 줘.’     


  스마트 기기에 대고 이 말을 했다고 치자. 이것이 당장 이뤄질 수 있을까. 매사 모든 시간을 내가 정할 수 있을까. 이중 내 맘대로 되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어떤 사람은 쓸데없는 망상이나 판타지를 준다는 이유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희망 고문이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현실은 현실일 뿐 달라질 건 없다는 거다. 어쩌면 요즘같이 각박하고 살기 힘든 시대에 제일 합리적으로도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바람조차 없어진다면 삶은 얼마나 절망적일까. 반대로 내 삶이 언제 어느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면 그만큼 재미없고 무료할 일이 더 있을까. 어떤 열정이나 결심을 갖지 않더라도 삶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되니, 속이 편해질까. 요즘처럼 종잡을 데 없이 혼란한 상황이라면 단 한 가지라도 그 결말을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확실한 건 아무리 한 치 앞의 일을 알고 싶더라도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나는 신이 아니기에. 모든 일의 시간과 때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란 걸 알기에.      


  49일째 그치지 않는 비를 바라보면서 맑은 날씨와 햇살이 얼마나 소중했던지를 생각한다. 그때는 너무 더워서 비라도 좀 왔으면 했었는데. 8개월이 넘도록 계속되는 전염병으로 마스크 없이 살던 때를 생각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해외여행을 더 많이 다녔어야 했는데. 마음껏 공연도 보고, 영화관도 가고, 전시회도 봤어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소중한 것은 잃어야만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시원한 바람, 따듯한 햇빛, 충분한 수분 섭취, 맑은 공기도 이제 당연한 것이 아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 그간 몰랐던 것일 뿐 애초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주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밤잠 설치는 날들이 많았다.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가고 싶지는 않지만, 지옥 같았던 전 직장도 내게 준 것이 있었다. 넉넉한 월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먹고 살 수 있게 해 줬으니까. 삶을 버티게 하는 밥벌이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였건 회사를 나와 혼자 몸이 되어 일하고 있다. 처음엔 홀가분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언젠가는 뛰쳐나가듯이 떠났던 곳이었지만, 다시 돌아온 걸 보면 어쩌면 이 일이 내게 천직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다. 이것 역시 그때 내려놓음이 없었다면 결코 알 수 없었던 부분일 것이다. 나를 괴롭혔던 힘든 순간이 돌아보면 현재의 자신을 살게 하는 자양분이 될 때가 있다.

  감사한 것도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 감사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불평과 불만이 올라오는 것도 한순간. 말 그대로 프리랜서가 되다 보니, 출퇴근이 따로 정해져 있지가 않다. 일이 있으면 하고, 없을 때는 없다. 물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기는 하다. 그러나 받던 월급의 절반도 못 미치는 품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났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화려하게 등단했어도 말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이쪽 생리다. 학부 때부터도 알고 있었고, 그만큼의 대단한 재능은 없었어도, 먹고사는 것이 급급했기에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기회가 왔다. 그렇게 나는 프리한 프리랜서가 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가장 돈 못 버는 직업 1위. 전업작가 연봉 500.”     


 그러면서 내 접시에 새우튀김을 하나 건네주었다. 맞다. 월수입이 아니라, 연봉이라고 했다. 전 직장에서도 월급이 높은 편은 아니었는데, 막상 작업물을 제출하고 건당 지급되다 보니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이 정도는…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남의 책이기는 하지만, 글을 써서 돈을 벌었다는 것은 액수를 떠나서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클라이언트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수정하고 만들어가는 작업이 제법 매력적이다. 앞으로도 계속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누군가는 고생이 선생님이라고 했다. 자신을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 아니라, 고생이었다고. 더는 힘들게 살기는 싫고, 생활은 안정되면 좋겠고. 하고 싶은 일은 계속하면 좋겠고. 인정받고 칭찬은 받고 싶고. 부모님의 한숨 소리는 이제 듣고 싶지 않고. 오랜 기간 더부살이를 하다 보면 사소한 기침 소리마저 다르게 들리는 법. 한편으론 마음속에서 또 다른 말이 있다.     


 ‘거저 되는 게 있을까.’     


 지긋지긋하게 내리는 이 비도, 마스크 없이는 버스도 못 타는 이 현실도.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는데 말이다. 얼굴과 체형, 키, 혈액형. 내가 선택한 것은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선택할 수가 없다. 나는 그런 존재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늘 그래 왔듯이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랄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즐길 수도 있다. 그래도 비는 올 만큼 올 것이고, 때때로 비를 맞아야 한다면 그 빗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꽃이 피기 전부터도 이미 그 작은 잎사귀는 꽃인 것을. 세상 너그럽고 초연한 사람처럼 남 이야기는 상담도 잘해주고 조언도 잘해주면서 그게 내 이야기면 왜 그렇게 어려운지…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배회하는 마음이 작고 안타깝다.

 상처를 입어본 사람만이 상처를 헤아릴 수가 있다.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그 아픔을 알 수 있다. 최근에 나는 각자에겐 자신만이 걸어갈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처의 크기 또한 상대적이라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코뼈 부러진 사람이 눈병 난 사람 마음 전부를 알 수는 없다. 그래도 그 아픔은 공감할 수 있는 것처럼, 그저 옆에 있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다시 동기부여가 되었다. 버텨 보자. 버티고 버티다 보면 나비가 되든 치유가 되든 그 어떤 것이든 되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