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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지영 Aug 14. 2020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손님

핑크빛은 아니더라도

가보지 않은 길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예전엔 그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선망하는 마음, 도전하길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일종의 격려라고 생각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어떻게 확언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가지 않은 길인데. 어쩌면 저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 말은 희망 고문으로만 들릴 뿐이었다.     


  핑크빛까지는 아니더라도 순항할 것만 같았던 나의 프리랜서 생활에도 기다렸다는 듯 손님이 찾아왔다. 피곤할 때면 입안이 헐거나 혓바늘이 돋아나는 거다. 회사 소속도 아닌 내가 왜? 무엇 때문에? 나 자신조차 놀랄만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나는 두 가지 병을 동시에 앓고 있다. ‘나 그만할래’ ‘다시 회사 갈래’라는 병이다. 프리랜서를 시작한 지 고작 석 달도 채 안 된 시기이지만 나는 ‘나 그만할래’와 ‘다시 회사 갈래’라는 병 가운데 저울질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내게 홧병이라고 했다. 이렇게 혓바늘이 돋아나는 경우는 열이 바깥으로 내뿜는 현상의 하나로 밖으로 다 나올 때까지 고생 좀 할 거라는 말과 함께. 회사를 나오면서 자유를 되찾은 내게 왜 이런 시련이 온 걸까. 발음이 새는 건 물론이고, 음식도 삼키기가 힘겨웠다. 아프다를 연발하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나는 지난 회사생활을 떠올리게 되었다.

 주 5일 빡빡하게도 모자라 주말 근무까지 해야 했던 직장생활은 퇴근하면 병원행이 일쑤였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았고, 잔병치레가 많았다. 퇴사한 뒤에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이 있었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일이다.

  그날따라 사장은 입술에 수포가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시선만 마주쳐도 일 안 하냐고 시비를 걸었기에, 모두들 모니터만 보면서 일에 열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장실로 호출했다.     


 “지영 씨. 내가 지금 바쁘니까 병원에 가서 처방전 받고, 약 좀 타 와.”

 “네?”

 “사람 말 못 알아들어? 나 대신 병원 좀 갔다 오라고.”

 “네? 그래도 되는 거예요?”

 “잔말 말고, 어서 가서 입술 주변에 수포가 커질 것 같다고 말하고. 처방전 받아와.”     


 365일 면접자가 있기를 바랐던 사장은 면접자가 없는 날엔 인사 담당자를 괴롭혔다. 일을 어떻게 했길래 면접이 안 잡히냐는 것이다. 그들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힘들게 면접을 잡아서 사람을 불러놓고는 막상 자기 마음에 차지 않으면 면접도 대강 보고 바로 돌려보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부랴부랴 다녀오니, 사장실에서 그는 명패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아파도 근무 시간에 병원 한 번 간 적이 없는데,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시늉 하며 입 벌리고 앉아 있으려니 울화가 치밀었다. 더욱이 코로나 19 덕분에 병원에 입장하는 절차도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핸드폰 꺼내서 실명 인증된 QR코드 찍고, 열 체크를 했다. 손수 기록까지 했다. 손 소독은 물론 필수였다. 멀쩡하다가도 병원 냄새만 맡으면 괜히 아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세상에 없는 갑질 횡포를 당하려니 두통이 날 것 같았다.

  바르는 약이 싫다고 해서 굳이 길 건너 병원까지 가서 처방전을 받고, 그걸로 약까지 타 오느라 30분이 싹둑 잘려나갔다. 이 고통은 누구한테 보상받아야 하는 걸까.      

  갈수록 부어오르는 혓바늘을 바라보다가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거울 속의 난 분명 같은 사람인데 이상하게도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갑작스럽게 퇴사를 하면서 프리랜서 편집자가 되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동안은 얼굴이 좋아졌다. 예뻐졌다는 말까지 들었다. 아니, 더 앞서 나가는 말도 들었다. 무슨 좋은 일 있냐. 혹시 날이라도 잡은 거냐 등등. 나는 그 모든 질문과 혹시나 하는 기대로 들떠있는 얼굴들을 향해 단 한마디로 답변해주었다.     


 “응, 나 퇴사했어.”
 

 퇴사하면 사람이 달라지나 보다. 일단 스트레스로 붙어있던 군살이 빠진다. 그러다 보니 얼굴에 생기도 있다. 마음에 잔뜩 껴있던 먹구름이 사라지니, 표정이 밝을 수밖에. 그러니 퇴사란, 확실히 좋은 일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다음이 중요했다. 우연히 쉬러 간 곳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었고, 나는 쉴 틈도 없이 직업이 바뀌게 되었다. 편집자(book editor). 예전에 잠시 일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왠지 그 제안은 제안 자체가 아닌 그 이상으로 들렸다. 그래서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전반적으로는 만족하는 생활이었다. 우선 내 시간이 확보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허구한 날 쥐어짜는 사장이나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동료들도 없었다. 기한 내 일을 해서 보내면 되었고, 풀타임 직장을 다니면서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어서도 좋았다. 몸이 안 좋을 때는 쉬어가면서 조정할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재미가 있었다. 월급 빼고는 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준비를 하고 들어선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덜컥 진입 먼저 하게 된 것이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석 달만 버텨보자. 해보고 그다음은 그때 생각해보자 했던 거였다. 전업 프리랜서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 혼자 일하는 체제로 갑자기 던져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문제와 마주했다. 세 권의 책을 냈어도 5년 차 프리랜서가 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사람의 존재를 모를 수 있다. 뭐 하는 사람인지 정체성이 무엇인지. 손에 꼽는 유명한 작가가 아닌 이상 글만으로는 먹고살 수가 없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책도 써야 하고 강연도 해야 하고 그 외의 일도 해야지만 겨우 버틸 수가 있다. 좋은 말로 ‘N 잡러’라고 한다더라.

  세상은 넓고, 넓은 세상엔 수많은 글쟁이가 있다. 아니, 글장이가 있다.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 속에서 내가 너무 작고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제일 서글펐던 건 가깝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서 느꼈던 차가운 시선과 말투였다.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씁쓸했다. 어떤 말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살기 바쁘다고 했다.     


  사람의 본심을 알려면 행동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 행동이 진정성이라고도 했다. 앞으로 혼자 걸어가야 할 수많은 길 속에서 느낄 서늘한 감정 또한 내 몫일 것이다. 회사 조직 내에서 느끼지 못했던 다른 경험들이 나를 채워가겠지.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흔드는 내면의 갈등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때때로 수포가 올라올 것이고, 어쩌면 더 아플 수도 있다. 지금보다 더 처절하게 밑바닥을 걸을 수 있고, 수없이 많은 거절과 냉대를 받게 될 것이다. 진심이 아닌 사람들은 더 냉정해질 것이고, 그들의 눈초리에 쿠크다스처럼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 다 가보지 않은 길을 너무 낙담하지 말자. 내 인생의 지침이 있지 않던가.     


 ‘너무 좋은 일이 있다고 들뜨지 말고.’

 ‘너무 슬픈 일이 있다고 낙심하지 말고.’     


 다행히 이제껏 너무 좋은 일은 손꼽을 수 있을 만큼 많이 없었다. 반대로 낙심할 일은 많았지만 몇 안 되는 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오늘만 살자. 하루하루. 담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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