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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discovers Mar 20. 2023

독일에서 일요일에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

2023년 3월 19일의 기록

20:00 PM(Yesterday), 08:30 AM(Today)
Cloudy as Usual


독일 집의 천장은 정말 높다. 독일 사람들이 키가 꽤 큰데, 그들도 사다리 없으면 천장에 닿지를 못할 정도니. 한국 집의 천장이 낮다고 생각할 이유는 딱히 없는데, 독일에 비하면 한국 천장은 갑갑한 느낌도 든다. 독일 친구들은 높은 천장과 벽의 공간을 활용해서 식물이나 이층 침대, 해먹을 설치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아직 짬빠가 차지 않은 우리는 음악소리도 천장에 닿지 않을 것 같은 그 선선한 느낌을 즐기는 것에 만족한다. 높은 천장에 곰팡이나 거미줄이 쳐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부터는 생지옥이겠지만 ㅋㅋ 다행히도 한국만큼 습하지 않다.


요즘은 해가 6시에 져서 한참 겨울일 때보다는 하루가 길게 느껴지지만, 영화를 보다 고개를 들어보니 공기는 어둡고, 천장만큼 높은 창문에서 달빛으로 환해진 바깥의 소리가 정말 낮은 채도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아직 여름이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한여름밤에 한강변을 산책하는 그런 착각이 들게 하는 밤이었다. 물론 방 안에서. 아침에는 일어나니까 물감이 다 떨어졌는지 다시 회색 하늘이 됐다. 딱히 우울하지도 않다. 나의 뉴노멀 ㅋ…


11:30 AM
Le Crobag, Limone - Coffee & Bagels
Tomaten mit Mozarella Sandwich, Butter Croissant, Bagel mit Frischkäse (Total 9€)


사실 제일 큰 문제는 글 쓰는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점이다. 성스러운 일요일에는 청소기 돌리는 것도 한 소리 듣고, 쓰레기를 버려도 안되고, 가게고 식당이고 죄다 닫는다. 어제 너무 귀찮아서 장을 못 봤다는 게 발목을 잡았다. 일단 아침식사는 바나나 하나에 커피 한잔으로 대충 때우고, 브런치인지 점심인지 모를 애매한 시간대쯤 빵을 사러 나갔다. 집 근처에 친절한 터키 아저씨가 운영하는 빵집이 있는데, 거기 가면 가끔 크로와상 하나씩 공짜로 주곤 한다. 은근 단골손님이 많아 북적거리긴 해도 책 읽으러 슬리퍼 신고 내려가서 햇살 쬐기 좋은 곳이다. 다만 진짜 슬리퍼를 신고 방문했을 시, 걱정 반, 희한한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 반 섞인 질문을 받을 수 있다.

말이 샜는데 오늘은 먹고 싶은 빵이 따로 있어서 거기 말고 조금 떨어진 빵집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그 빵은 없었다. 모차렐라와 토마토에 후추가 스며들어 거의 갈색빛을 띠는 샌드위치와 통통한 버터 크로와상을 집었다. 내가 먼저 도착해서 다행이게도, 내 뒤에 벌써 두세 명 줄이 생겨 있었다. 원래 먹고 싶었던 빵은 Frischkäse mit Kräuter를 바른 프레젤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사실 빵이 베이글이어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집 오다 발견한 베이글 집에 들어갔다. 진열장에 베이컨이고 야채고 잔뜩 끼워진 화려한 베이글들만 보여서 순간 실망할 뻔했지만, 어제보다 유창해진(ㅋ) 독일어로 “베이글에 크림치즈만 발라주세요!”라고 요청했다.


동글동글한 베이글은 마치 입술사이에 끼우고 불면 휘파람 소리가 나는 사탕과 모양이 비슷한 것 같아 귀엽다. 허브가 들어가지 않은 생 크림치즈여서 내가 기대하던 맛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2유로에 건강한 베이글이니 만족이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흔하게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베이글은 보통 보들보들한 타입인데, 독일은 베이글조차 견과류 박혀있는 통밀빵을 사용해서 좋다.


18:10 PM
Asia Restaurant Sonne (Neue Kantstraße) 
牛肉面, 酸辣汤, 宫保鸡丁 (Total 37,5 €)


저녁이 되어도 일요일인 건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게으름은 더욱 심해졌다. 나는 원래도 게으른 편이지만, 원래 부지런한 남자친구까지 일요일에는 게을러지니, 일요일에 우리가 부지런할 확률은 0에 수렴하는 것이다. 아침에 그나마 에너지가 좀 있었을 때, 오늘 저녁에는 나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자고 약속했었지만, 5시에 우리 둘 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꼬르륵 거리는 배만 서로 살포시 쥐어주다 누군지 모르게 배달 이야기를 꺼냈다. 그 뒤로는 모든 게 히스토리…


한국이 배달의 민족인 건 맞지만,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 골목골목 배달해 주는 서울과 달리 맥도널드 배달도 안 되는 청주 구시가지가 있고, 내가 사는 뤼네부르크에는 배달이 잘 정착하지 못하는 반면 대도시인 베를린은 일요일에도, 밤에도(밤 기준이 10시지만…), 어느 곳에서도 웬만하면 배달이 잘 되는 것 같다. 돈 없어서 배달을 자주 시켜 먹지는 않지만, 가끔 사용할 때 큰 불만은 없다. 배달비를 주는데 왜 또 팁을 줘야 하는지, 팁 문화가 없는 한국인 시각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게 가끔 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중식이 당겨서 메뉴는 그렇게 정했다. 가격이 좀 사악하긴 하지만, 중국에 살 때 먹었던 실제 중식과 비슷한 맛이었다. 너무 배부르게 먹어서 소화시키느라 좀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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