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싼 Jul 30. 2024

시작이 뭐가 중요해

미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게 된 계기

  “왜 선생님이 되고 싶어?”


  2016년 대학 졸업을 한 해 앞두고 ReWA (Refugee Women’s Alliance)라는 시애틀 난민 단체에서 봉사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커뮤니티 튜터를 지원했다는 내게 아베베가 반색하며 물었다. 잘 떠오르지 않는 대답에 한참을 생각하는데 침묵을 끊고 아베베가 말했다.


  “넌 잘할 것 같아.”


  아베베는 에티오피아 난민캠프에서 시애틀로 배정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 누나와 함께 센터에 살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대부분의 학교는 흙바닥에 교재도 없이 서서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컴퓨터나 아이패드는 상상도 할 수 없음은 물론, 선생님들이 매일 고함을 지르고 채찍을 휘둘러 무섭지만 그래도 학교를 갈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아베베는 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채찍을 들 수 있을 만큼 힘이 세 보이지도 않아서 좋은 선생님이 될 거라고 했다. 아베베의 말에 통역해 주던 디렉터는 물론 사무실 사람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을까, 그 시작점을 되짚어보면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아베베를 포함한 난민 고등학생들의 멘토로 일했던 경험이었던 것 같기도, 혹은 그보다 오래전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미국 이민학생으로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불공정함 때문인 것 같기도, 주말 한국학교에서 조교로 한국어 공부를 도우며 위안을 받았던 때인 것 같기도. 아니면 그보다 더 옛날, 한국에서 중학교 체육 교사이자 학생주임이셨던 아버지를 보며 자랐던 막연한 어린 시절 어느 때쯤인 것 같기도 하다. 


  원래 꿈은 작가였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순간을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것과는 다르게 작가가 되고 싶었던 순간은 너무나 생생히도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열 살, 오백 장 가까이 되는 페이지를 태어나 처음으로 앉은자리에서 다 읽고 말할 수 없는 전율에 몸을 떨며 나도 언젠가 나만의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학창 시절 내내 책을 정말 많이 읽었고 크고 작은 글쓰기 대회에서 제법 상도 많이 받으며 점점 내가 좋아하는 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커졌다. 문과 쪽은 늘 상위권이었지만 이과 쪽으로는 영 소질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처음 본 모의고사에서 국어와 영어는 1등급, 수학은 6등급이 나왔다. 담임선생님은 한국에서는 수학을 못하면 인서울도 힘들다며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닌 할 수 있는 공부를 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려고 미국에 왔다고 생각했다. 해서 남들보다 일찍 전공을 선택했다. 영문학 같은 인문학 전공은 졸업 후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에서 시간제로 일한다는 조롱이 만연하던 때였다. 시작은 호기로웠으나 1.5세 이민학생, 미국 역사나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얕았을뿐더러 아무리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췄다 할지라도 챗GPT도 없던 때, 그들의 문학에 담긴 은유,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며 원어민처럼 일주일에 몇 십장 분량의 리포트를 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성적은 밑바닥이었다. 이대로는 졸업할 수 없을 것 같아 전전긍긍하던 때 한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서 점수를 잘 주기로 유명한 교육학 과목들을 하나씩 듣기 시작했다. 소문대로 쉬웠던 건지 나도 몰랐던 소질이 발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연이어 만점을 받았고 교사 취직이 쉽다는 말에 이끌려 어느덧 나도 모르게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이게 가장 솔직한 대답이었던 것 같지만 아베베에게는 끝내 말해주지 못했다.       


  어느덧 미국 땅을 밟은 지도 햇수로 15년. 정확히 내 인생 반을 한국에서, 반을 미국에서 보내며 서른이라는 모호한 지점에 다다랐다. 그동안 나는 결혼했고 워싱턴주에 정착했으며, 공립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전히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느리더라도 꾸준히 내실을 쌓으며 성장해 가고 있고, 학교를 너머 내가 속한 다양한 공동체 속에서 교류하며 자아를 찾는 여유도 생겼다. 시작은 흐릿했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순간들로 가득한 일화들을 통해 미국 교육과 1.5세 이민자로서의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사이트가 되길 바라며, 내 경험과 생각들을 하나씩 나누어 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