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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싼 Sep 02. 2024

다시 학군지로 돌아가다

미국 워싱턴주 공립 1순위 초등학교로의 이직

  2019-20 학기를 마무리하며 결국 나는 Title 1 학교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다른 교육구로 이직하기로 마음먹었다. 미국에서 교육구 이직은 마치 회사 이직을 떠올리게 했다. 사직서를 제출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두고 다시 특권층, 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돌아간다는 결정이 새삼 이기적이게 느껴지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 때마다 어디선가 보았던 '교사는 성직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되새겼다. 나는 성직자가 아니다. 지난 일 년 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했고, 다양한 면에서 내실을 다졌다. 더 이상 도전으로 와닿지 않는 노동을 또다시 반복하는 것은 의미 없는 봉사일 뿐이었기에 더 이상 미련 두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코로나로 이직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생각보다 일찍 연락이 왔다. 이전에 교생으로 일했던 교육구였다. 1차 서류과정에 합격했으니 비대면 면접 일정을 잡자고 했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 면접까지 잘 마쳤고 나는 바라던 대로 이전 교육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별은 조용히 이루어졌다. 학교 생활 중 가장 친하게 지냈던 수위아저씨는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이사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따로 연락을 주셨다. 막내아들을 소개해주고 싶었다면서 코로나가 사그라들면 꼭 따로 연락 달라는 농담과 함께. 텅 빈 학교 건물은 고요하고 생경했다. 혼자서 짐을 정리하며 일 년 동안 모아둔 가구와 물건들이 제법 많았던지 작은 소형차로 열댓 번은 넘게 옮겼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교실 문을 잠그며 정들었던 공간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처음 시작할 때처럼 비어있는 교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스물네 살 새내기 교사의 풋풋했던 순간과 학생들과의 추억이 사진처럼 담겼다.


  아파트에 남아 있던 개인 짐까지 모두 챙겨 나왔을 때, 이제 정말 교직 첫 해의 모든 것과 작별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마 다시 돌아올 일은 없겠지? 그렇게 나는 나의 첫 직장, 첫 독립생활과 온전한 작별을 하고선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들어갔다. 본가에서 새로 배정받은 학교까지는 삼십 분 정도 통근시간이 걸렸지만 워낙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 지라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만끽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생겨 더 잘됐다고 생각했다.


  인사 차 처음 새 학교를 방문했던 날, 그림처럼 예쁜 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길 끝에 초등학교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세련된 모습의 신식건물이 눈에 띄었다. 외관 만큼이나 내부 시설도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입구에는 올해의 초등학교 상, 우수 학업 상, 인성교육 지정학교 등 다양한 상패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학년 팀별로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보안카드를 찍고 사무실로 들어서자 행정실장으로 보이는 여성이 밝게 인사했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교장실에 들어서니, 젊은 백인 여성 두 명이 자신들을 교장과 교감이라고 소개했다. 둘 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아무리 많아도 사십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나 편하게 부르라며 각각 킴, 니콜이라는 이름(first name)을 알려주었다.


  교장선생님인 킴은 4학년 아들과 1학년 딸이 현재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미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사가 근무하는 학교에 자녀를 등록시키는 것이 허용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평교사가 아닌 교장의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킴은 이 학교가 생긴 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은 신설학교로 Progressive 5라는 매우 진보적인 틀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와 탐구 기반의 학습을 하는 체계를 구축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교감선생님인 니콜은 겉모습만 봐서는 내 또래처럼 보였는데 이제 막 두 살이 된 아들이 있다고 했다. 올 해가 교감으로 부임한 첫 해인데, 워싱턴주 공립 초등학교 1순위 학교에서 그 시작을 함께하는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 적극적이고 의욕 넘치는 두 사람과 이야기하는 내내 왠지 모를 부담감이 느껴졌다. 특히, 킴이 내가 Title 1에서 일한 경험을 높이 평가하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새 학기부터 PBIS 부서(한국의 '학생부'와 비슷한 개념)에서 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을 때, 그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이곳에서는 업무분장(work team)이 선택사항이 아니라면서 모든 교사가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교내 위원회 (committee)에 가입하여 서너 가지 추가 업무를 맡는 것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과의 대화 이후, 또다시 2학년 담임으로 가르치게 될 교실을 찾아갔다. 세상에, 이렇게 다를 수가.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바닥, 낡은 책걸상, 그리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프로젝터로 사비를 쏟아부었던 이전 교실과는 완전히 달랐다. 새로운 교실은 스마트터치보드를 포함한 최신 시설로 잘 갖추어져 있었고, 새것처럼 깨끗한 가구들과 알록달록하게 페인트 된 벽면까지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높낮이가 조절되는 신식 교사 책상 위에는 환영 손카드와 함께 예쁜 화분이 놓여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시작이 기대되면서도, 과연 내가 이곳에서 잘 해낼 수 있을지 여러모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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