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싼 Sep 12. 2024

학군지에서의 비대면 수업 어떤데

운 좋게 잘 넘어간 역경이라 부르고 싶다

  새로운 교육구와 새로운 학교에서 시작하는 첫해는 Full Remote Learning (전면 원격 수업)으로 진행되었는데, 예쁘게 꾸민 교실과 첨단 기기들을 사용해 볼 기회도 없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개학도 하기 전에 매일 같이 6-7시간씩 온라인 수업 관련 연수를 받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난 3월 코로나가 창궐하며 워싱턴 주내 많은 교육구가 임시 휴교를 결정했고, 온라인으로 수업이 재개된 이후에도 일주일에 몇 번, 그마저도 2-30분 내지의 짧은 수업이 학구열 높은 지역의 학부모들에겐 큰 불만으로 이어진 듯했다. 교사들은 대부분 온라인 교육이 처음이었던 터라 여러 부분에서 서툴 수밖에 없었고, 교육구는 이런 점을 보강하며 장기적인 온라인 수업에 대비하고자 교직원 연수에 총력을 기울였다.

 

  새로 이직한 교육구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위치한 교육구로, 평소 지역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는 회사답게 공립 교육에도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었는데,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각종 기술적 지원과 함께 원격 학습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도움으로 사용하게 된 프로그램 이름은 "Teams (팀즈)" 였는데 기존의 사용 방식과는 다르게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공립학교를 위해 맞춤 기능을 추가한 점이 눈에 띄었다. 화상수업뿐만 아니라 학급 홈페이지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며 각종 자료를 올리고 댓글로 소통할 수도 있고, 한 번에 여러 명이 공동으로 한 작업물을 만드는 기능도 있었다. 평상시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든 활동을 좋아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도 즐기는 편이라 나에겐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새 학교는 이전의 학교에 비해 교사의 연령대가 무척 젊은 편이었는데, 50명 가까이 되는 교사 중에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계 교사가 나 혼자라는 점만큼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흑인이었던 4학년 담임교사 한 분을 제외한 모두가 백인 여성으로, 학생의 절반 이상이 유색인종인 것을 고려하면 다소 불균형한 구성인 것은 틀림없지만 누구도 이 점에 대해 크게 의문을 품는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도 2학년을 맡으며 함께 일할 세 명의 2학년 교사들을 만났다. 계속되는 온라인 연수로 인해 모두가 피곤했는지, 화상 회의에서 보이는 얼굴들이 하나같이 지쳐 보였다. 그중 '수지'라는 이름의 교사가 새로 온 나를 위해 학교에 대한 설명을 자처했다. 미리 알아본 바로 그녀는 주립대에서 다문화 교육학 박사 과정을 병행하고 있었고, 교장과도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였다. 수지는 우리 학교가 대부분의 미국 초등학교와 달리 팀장(학년부장)이 없는 체제로 운영되며, 2학년 교사 네 명이 동등하게 리더십을 분담한다고 설명했다. 매우 진보적인 학교답게 세세한 부분까지 수평적 구조를 지향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각자가 책임을 나누어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다. 내 얼굴에 드러난 걱정을 눈치챘는지, 수지는 "우리 팀은 잘 해낼 거야"라며 격려해 주었고, 다른 두 교사도 곁에서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고, 예상치 못한 비대면 수업을 준비하느라 여러모로 어수선했지만, 학년 팀의 분위기가 좋았고, 무엇보다 예전에 교생 실습을 하며 긍정적인 경험이 많았던 교육구에서 교사로 다시 시작하게 된 점이 나에게는 매우 희망적이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마음가짐 덕분인지, 개학 후 운 좋게도 다시 한번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우리 반 학생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학생들만큼이나 훌륭한 성품을 가진 학부모들이었다. 온라인 수업 첫 한 달 동안 여러 기술적인 문제와 시행착오가 있었음에도, 따뜻한 마음으로 기다려주고 진심 어린 격려를 보내준 학부모들 덕분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감사와 응원의 메세지가 담긴 다정한 학부모 이메일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급작스러운 온라인 수업이 시행되고 대다수 학부모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렇게 따뜻한 감사인사는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감사 메시지를 보냈던 학부모 중 한 분은 팀즈 초기 개발자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임원급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는 재택근무 중 아들의 온라인 수업을 모두 참관했는데, 아들이 내 수업을 매우 재미있어했고, 본인도 곁에서 즐겁게 참여했다며 호평을 보냈다. 기쁜 마음도 잠시, 팀즈 개발자 앞에서 프로그램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우왕좌왕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민망하기도 했다. 한 번은 감사하다며 100달러짜리 아마존 기프트 카드를 받았는데, 너무 고가의 선물이라 교장선생님께 보고해야 하는지 동료 교사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다들 그렇게 받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아 따로 교장선생님께 확인했더니 오히려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미국에는 한국의 김영란법과 같은 수수 금지법이 없으며, 교사 선물에 대한 제한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팬데믹 동안 내가 겪었던 일화들을 다른 교사들과 나눌 때마다,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새삼 깨닫곤 했다. 실제로 그 기간 미국 내 많은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불안정한 온라인 교육 체계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공교육의 질에 대한 비판, 나아가 교사들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온라인이라는 개방된 공간에서 교사의 모든 행동이 학부모들에게 실시간으로 노출되다 보니, 교사의 언행이나 학생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온라인 수업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들이 여과 없이 전달되며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학부모 참관수업인 셈이었을 텐데, 교사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시점에 미국 전역에서 이런 비판을 피해 갈 수 있는 교사가 얼마나 됐을까. 돌이켜보면 예외적으로 운이 좋았던 내 상황에 감사하면서도, 이 시기를 겪으며 교직을 떠날 정도로 힘들어했던 많은 동료 교사가 떠올라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