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등학교에서 경험했던 성(性)/젠더 문제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미국, 특히 진보 색이 짙은 워싱턴주에 살면서 어린아이들이 아주 어릴 적부터 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는 것과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이른 시기에 성전환을 결심한다는 것. 이전 학교에서도 같은 이유로 중성적인 이름을 사용하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사백 명 가까이 되는 초등학생 중 단 한 명. 자세한 자초지종은 모르지만, 오학년이 되며 사춘기가 일찍 왔다고 했다. 학교의 운영진을 포함한 담임교사와 학부모 모두가 그 학생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고, 본인이 원하는 이름으로 바꾸어주는 행정 처리도 마다치 않았다. 과연 한국이었다면 가능했을까? 그저 신기한 마음으로 진행 상황을 관망했던 기억이 있다.
새로운 학교에서 동료 교사가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이 학년, 만으로 일곱 살 혹은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저학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어 몹시 당황스러웠다. 다른 교사들 말에 의하면 우리 학교에서만 벌써 열다섯 명이 넘는 학생들이 성전환 문제로 이름을 바꿔 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중 대부분이 다 받아들여졌다고 했다. 그중에는 킨더와 일 학년을 포함한 더 어린 나이의 학생들도 있다고.
이미 충분히 충격적인 사태에 더욱 경악을 금치 못했던 건 교장과 동료 교사들의 반응이었다. 해당 학생의 담임인 수지는 제임스(가명)가 마침내 제니(가명)로 불릴 수 있어 너무 다행이라고 기뻐했다. 부모를 설득하는 데 오랜 노력이 필요했다는 말로 미루어보아 이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수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학교 전체에 성전환 요청이 늘어나며, 교장은 좀 더 많은 학생이 우리 학교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자유롭게 자신을 탐색하고 표출해 가는 과정이 "자랑스럽다"라고 표현했다. 덧붙여 6월에 있을 Pride Month* 기념으로 교사들이 더욱 다양하고 열린 활동을 준비할 것을 독려했다.
* Pride Month란 매년 6월에 성소수자(LGBTQ+) 커뮤니티의 권리와 다양성을 기념하는 달이다. 1969년 스톤월 항쟁을 기리며 시작되었으며,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그들의 자긍심을 축하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행사와 퍼레이드가 열린다.
더욱 다양하고 열린 활동이라니…. 현재 커리큘럼에서도 충분히 나와 다른 생김새, 언어, 문화, 가치관을 존중하는 법은 물론, 동성 부부 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모습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데 이걸론 부족하단 말인가? 의문을 제시하는 내게 교장은 아이들의 자아에 더욱 집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젠더(성별)는 스펙트럼(범위)이며, 남성과 여성뿐만이 아닌 더욱 다양한 자아에 대해 배우는 학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는 반발했다. 일곱, 여덟 살 아이들에게 게이, 레즈비언도 모자라 양성애자, 퀴어, 퀘스처닝, 데미섹슈얼 등 LGBTQ+로 나타내지는 모든 걸 가르치라는 뜻이라면 나는 절대 그렇게 못 하겠다고 대들었다. 교장은 요즘은 LGBTQ+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북미 원주민의 성정체성을 포함한 2 SLGBTQIA+ 가 더욱 존중적인 표현이라고 내 말을 고쳐주면서, 본인은 어디까지나 제안이지 강요가 아니라는 말로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했다. 교사 평가 체제에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사"란 바로 이런 면에서 유능한 교사들을 일컫는 말일 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왠지 마지막 말이 협박처럼 들렸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미국에서 교사가 된 후로 수없이 불공정하고 답답한 일을 겪어봤지만, 교장과 직접적으로 대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교장의 시선에서는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교사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교장이 요구하는 사항은 교사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교사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이 스스로의 생각과 정체성을 탐구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지,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거나 미리 정의된 틀을 주입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나이의 학생에게 다양성과 존중의 가치, 그 이상의 정치적 선전은 불필요하다는 나의 신념은 아직도 너무나 확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