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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싼 Sep 30. 2024

선생님, 인종차별 당하셨네요

얼떨결에 연수 발표를 떠맡다

  새로운 교육구에서 팬데믹과 함께한 첫해는 예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 내향적인 성격의 나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와 약간의 고립된 생활은 오히려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외향적인 백인 여성들이 많은 미국 초등학교에서 일하면서, 원치 않는 친목이나 사교 활동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온라인 수업이라는 플랫폼 또한 나한테 잘 맞았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행동 문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편했다. 학생들 간의 교류가 없으니 싸움도 없고, 그로 인한 책임도 사라졌다. 4시 수업이 끝나면 컴퓨터 화면을 닫는 순간 모든 일이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고, 더 이상 스쿨버스 감독이나 하교 지도로 인해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일도 없었다. 물론 팬데믹 자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비극적인 일이었고, 나 역시 걱정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덕분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 오히려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시작하면서 나는 오롯이 "가르치는" 교사로서 내 모습에 집중할 수 있었고 교직 첫해 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감과 자기 효능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해 맡은 학생들은 착하고 사려 깊을 뿐만 아니라 학업적인 면에서도 열성적인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학생들의 성취와 성장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학부모들도 하나같이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여주었다. 돌아보면 이때가 교사로서 가장 이상적인, 다시없을 꿈같은 해였던 것 같다.


  왜 행복한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르는지. 영원하기를 바랐던 교사로서의 두 번째 해는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교육구에서는 이제 코로나의 영향이 많이 사그라들었다며 곧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통보를 했다. 학기 마지막까지 고작 석 달을 남겨두었던 상황이라,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교사들의 반발이 심했다. 교육구는 학교를 하루빨리 열어달라는 학부모들의 아우성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며 전환을 강행했다. 교육구에서 말한 '하이브리드'란 가정의 선호도에 따라 일부 학급을 교실 대면 수업으로 전환하는 방식이었는데, 과반수의 선호에 따라 교사 역시 온라인으로 계속 남을 것인지, 아니면 대면으로 돌아갈 것인지 배치가 정해지는 체계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운 좋게 비대면으로 남게 되었는데, 사전 학부모 설문조사에서 우리 반 학생 25명 중 단 2명만이 대면 수업을 신청했다고 했다. 해서 나는 원래 기존 우리 학급 학생들이었던 23명과 대면으로 돌아가는 교사 반에서 비대면 수업을 신청했던 8명을 맡아 최종적으로 31명의 담임이 되었다.


  한 번도 30명 이상의 학생을 맡아본 적이 없어 당황스러웠지만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라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수업을 시작하고 나서 새로운 학생들이 잘 적응하는 듯 보였고, 큰 문제 없이 첫 주가 지났다. 새로 우리 반이 된 학생들과 학부모 상담 일정을 잡았고, 대체로 학부모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특히 아버지 한 분은 내 소개 글을 보며 고등학생 때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혹시 영어를 잘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내가 수업하는 걸 듣고 억양을 못 느낄 만큼 영어를 잘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아들이 터키에서 온 지 얼마 안 돼서 영어 발음이 좋지 않다면서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는 원어민 선생님에게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서도, 앞으로는 교사 소개 글에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쓰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왠지 내 출신 배경이 교사로서 장점보다 단점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머지않아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기회가 있었다. 온라인으로 진행했던 학년 회의에서 우연히 교사 소개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무심결에 우리 반 학부모와의 일화와 더불어 내년에는 출신 배경과 관련한 언급을 빼야 할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동료인 수지는 불같이 화를 냈다. 이건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며 반드시 그 학부모에게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엄청난 진보주의자이자 다양성 옹호자인 수지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수지는 당장 교장에게 말해야 한다며 본인이 아끼는 주변 사람이 이렇게 차별을 받고도 차별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더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기에, 이 상황이 무척 당혹스러웠다.


  보통 인종차별이라 하면 여태까지 나는 미디어에 등장하는 멸시적인 표현을 떠올리곤 했다. 가시적이고 경멸적인, 누구나 인종차별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표현과 제스처. 하지만 우리 반 학부모가 내게 했던 말은 그런 것들과 거리가 멀었다. 어떤 면에서는 칭찬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만큼 호의적이기도 했다.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사건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수지가 따로 연락했던지 교장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했다. 화상 면담을 위해 접속하자마자 교장 선생님은 거듭 사과했다.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학교 커뮤니티에서 이런 불상사가 생겨 부끄럽다고 했다. 계속 괜찮다고 무마하려는 내게 이런 일은 절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사건을 바로잡기 위한 두 가지 방책을 생각해 왔다고 했다. 첫 번째는 내가 해당 학부모와 직접 대화하여 그분의 말이 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곧 있을 교직원 연수에서 내가 인종차별을 주제로 발표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피해자가 된 상황도 난처했지만,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 후속 처리를 내가 감당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연수 발표라니? 교육구 형평성 위원회 주최로 일 년에 한 번 직장 내 차별과 형평성을 주제로 연수를 진행하는데, 학교 교직원 중 한 명이 발표를 맡게 된다. 워낙 민감한 주제라 다들 맡기를 꺼려서 매번 발표자를 찾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들었다. 졸지에 내 일화가 좋은 연수 주제가 된 셈이었다. 이때다 싶어 내 상황을 이용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교장선생님은 내게 restorative conversation (회복적 대화)라고 알려진 대화 방식에 관련된 자료들을 보내주었다. 거기에 나온 질문들을 이용해 학부모와 대화를 나누고 사과를 받으라고 했다. '회복적 대화'는 내게도 익숙한 대화법으로 주로 쉬는 시간에 싸운 학생들과 문제해결을 위해 사용하곤 했었다.

  

  나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고,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불편한 대화를 나누어야만 했다. 회복적 대화에서 권장하는 질문들을 사용할 용기는 나지 않아, 그 학부모가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언급한 부분이 나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다른 교사에게는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점만 간단히 알리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교장 선생님이 그렇게 강조했던 사과도 받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동안 학부모들과의 통화 중 불편하고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번 통화는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힘든 경험이었다.

 

  전화도 전화였지만 발표는 더욱 기이한 경험이었다. 교육구에서 제시한 여러 주제 중 그나마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microaggression (미묘한 차별, 소극적 공격)을 선택해 발표를 준비했지만, 아직도 내가 겪은 일화가 차별의 예시가 될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화면으로 연수를 진행하며 교사들 반응을 보기 위해 채팅창을 힐끗 보았는데, 맙소사. 채팅창이 온통 유감이고 미안하다는 글로 도배되어 있었다. 일부 교사들은 내 일화를 듣고 눈물까지 고였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내가 겪은 일이 과연 그런 반응을 불러올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단순한 푸념으로 시작된 일이 상상을 초월하는 전개로 이어지면서, 나는 교사 회의에서 그 일화를 꺼냈던 것을 수십 번도 넘게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이전 교육구에서 함께 일했던 흑인 동료 교사의 말을 떠올렸다. 조지 플로이드 시위가 한창이던 때, 그 친구는 백인 친구들의 호의가 마냥 고맙지만은 않다면서, "이런 시위가 정말 우리(흑인)를 위한 건지, 아니면 그들만의 'morality game'(윤리 게임)을 하는 건지 모를 때가 많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그 말이 다시금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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