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질병, 인종문제
이제는 더 이상 놀랄 일도 없을 것 같던 2020년 5월의 끝자락. 예기치 못한 팬데믹 상황으로 시작된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점차 익숙해질 무렵, 또다시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이슈가 생겼으니, 바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망 사건이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은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위조지폐 사용 혐의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이 약 9분 동안 그의 목을 무릎으로 눌렀고, 플로이드는 결국 사망했다. 이 사건의 영상이 SNS에 퍼지면서 큰 논란이 일어났고, 대표적인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포함하여 미국 전역에서 인종 차별과 경찰의 과잉 진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이후 데릭 쇼빈은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미국의 인종 문제와 사법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내가 교사로 근무하던 동네는 흑인 인구가 많았는데, 우리 학급만 해도 거의 절반이 흑인 가정의 학생들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워싱턴 주 자체가 워낙 진보적인 성향이 뚜렷한 주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학교를 포함한 지역 커뮤니티 전체가 이 문제를 매우 날카롭고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신호등마다 시위에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그중에는 학령기 학생들뿐만 아니라 갓난아기에 휠체어를 탄 노인들도 있었는데, 정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거리로 나와 시위에 동참했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대부분 백인이었다는 점이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해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흑인 동료 교사에게 물어봤더니, 'Because this is not something new for us (우리한텐 새로울 것 없는 일이기 때문이지)'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녀는 백인 친구들의 호의가 마냥 고맙지만은 않다면서, 이런 시위가 정말 우리(흑인)를 위한 건지 아니면 그들만의 'morality game (윤리 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때가 많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덧붙였다.
미국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할 때, 공교육 방침은 주로 '연령대가 낮은 학생이라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입장과 '굳이 알려서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는 두 입장으로 나뉜다. 이는 각 주의 정치적 성향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인데, 진보적인 주는 보통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권장한다. 예로, 대표적인 진보 주인 워싱턴 주의 교사 커뮤니티에서는 "If you don't teach, something else will fill the void (당신이 가르치지 않으면 다른 무언가가 그 공백을 채울 것이다)."라는 표어가 등장하면서, 민감한 문제일지라도 반드시 교사가 학생들에게 직접 지도해야 허위 정보가 아닌 올바른 방향으로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여기서 말하는 민감한 문제란 인종 문제뿐만 아니라 성 문제, 종교 문제,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워싱턴 주에서 가장 뜨거운 성 정체성 문제 등을 일컫는다. 이러한 주제들과 관련해, 미디어나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무분별하고 단편적인 정보를 얻는 대신, 교사의 지도를 바탕으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도록 장려하는 부분이 열린 교육의 큰 장점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문제의 성격이나 학생의 연령에 따라 열린 교육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한데 특히 성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는 열린 교육에 반대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다른 에피소드에서 풀어볼 예정이다.
사건이 뉴스를 통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 학교 교수 코치 (Instructional Coach - 교내 임원직으로 교사들의 교수법 향상과 학습 성과 증진을 돕는 역할 수행하며 한국의 장학사와 비슷한 직책)가 전 학년 모든 학급에서 플로이드 사건을 다뤄줄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왔다. 일전에 흑인(Black)을 아프리카계 미국인 (African American)이라고 표현했던 어느 백인 학부모에게 ‘미국 내 흑인 대부분이 아프리카는 가본 적도 없는 미국 태생인데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결례’라며 지적했던 사람이었다. 인종 문제에 매우 민감한 백인 교사였다.
공문까지 받게 된 이상 플로이드에 대한 수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제 갓 여덟 살이 된 2학년 학생들과 나누기에는 다소 무거운 내용이었고 신임교사이자 이민자인 나에게는 특히 더 어려운 주제로 다가왔다. 교수 코치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녀는 독서 수업(read aloud) 때 쓰라며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었는데, "Something Happened in Our Town (우리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이라는 제목의 아동용 그림책이었다.
이 책은 에마와 조시라는 두 아이가 각각의 가정에서 경찰에 의해 흑인 남성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인종 차별과 공평한 대우의 중요성을 배우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찰을 다소 부정적이게 묘사하고, 백인 학생들에게 과도한 죄책감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논란이 많은 책으로 보였다.
책을 훑어보는 내내 우리 반 학생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하고 난해할 뿐만 아니라, 다소 편향되거나 과장된 표현도 많이 보였다. 이제 막 경찰로 채용된 동생이 떠올라 더더욱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것이 꺼려졌다. 교수 코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이런 교육이 더욱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점을 이해한다고 했다. 사회적 편견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이 상황에 적용되는지 의아했지만 딱히 더 묻지 않았다. 왠지 더 파고들었다간 순식간에 인종 차별 교사로 낙인이 찍힐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독서 수업이 예정되어 있던 날 온라인 수업에 불쑥 교수 코치가 들어왔다. 도와주려고 왔다는데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눈빛이 나를 감시하려고 들어왔다는 의심을 들게 했다. 이토록 난감한 주제를 학생들 뿐만 아니라 몇몇 부모님과 교수 코치까지 지켜보는 앞에서, 그것도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수업 진행을 하려니 다리가 덜덜 떨렸다. 이럴 땐 모니터를 통해 상체만 보인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우선 여덟 살의 눈높이에서 대화의 포문을 열어야 했기에 학생들이 이전에 플로이드 사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부터 물었다. 제각각 알고 있는 사실과 관찰한 모습들을 나누었다.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거리에서 이 문제에 관한 시위를 목격했거나 미디어에 나오는 영상들을 통해 해당 사건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종 차별 (racism)’이나 ‘노예제도 (slavery)’와 같이 학생들이 생소하게 느낄만하거나 무거운 역사를 담고 있는 어휘들을 미리 추려내어 그림과 함께 설명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학생들의 눈빛이 호기심 반 놀라움 반으로 반짝거렸다. 여기까지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사전 독서 활동으로 몇몇 질문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가졌는데 대개 아이들은 책 제목인 Something Happened in Our Town 이 무슨 일을 의미하는지 읽기도 전에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등 꽤 성숙한 자세로 토의에 임해주었다. 교수 코치도 한결 누그러진 표정과 몸짓으로 학생들의 대답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나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워주기도 했다.
문제는 정작 본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학생들 중 한 명이 울음을 터뜨렸다. 유럽 국가 출신이자 백인인 자기 할아버지가 너무 미워진다면서 왜 흑인들을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었는지 속상하다고 했다. 자폐가 있는 학생은 눈물에 감정이 동요되었던지 갑자기 "Bad White, Bad White!" 하며 백인이 나쁘다고 반복해서 소리치면서 어느덧 반 학생들도 따라 하나둘씩 어디선가 들었을 Justice for George Floyd!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를!) 같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해하자 교수코치가 음소거 버튼을 누르라는 시늉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학생들이 진정된 모습을 보였고 나도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일 년 동안 우리 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토록 격양된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학생들의 반응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사회 정의 교육인지 사상 교육인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이어진 문답 활동 시간에도 학생들은 하나같이 조지 플로이드가 불쌍하고 경찰들이 못됐다며 '영웅'이나 '신'과 같은 단어를 그의 이름 앞에 붙였다. 책 내용이 의미하는 바는 백인이 모두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며, 경찰이 무조건 폭력적이고 악의적이라는 것은 편견이라는 내 설명이 여덟 살 아이들에겐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침내 나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핸드폰 사진첩 속 현직 경찰로 근무하는 동생의 사진을 보여주기까지 이르렀다. 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누가 봐도 왜소한 체구의 동양 여성 경찰 모습을 보자, 경찰을 모두 없애야 한다며 과격하게 말하던 학생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일부의 모습만으로 전체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그 가치를 전해주고자 그 후에도 한참 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내가 전달하려던 의미를 학생들이 얼마나 받아들였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