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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싼 Aug 18. 2024

비대면 수업의 세계로

교직 첫 해, 생이별로 마무리할 순 없지

  교사로서 이미 충분히 다사다난한 첫 해를 내디뎠던 2019년. 안젤로 사건으로 삭막했던 겨울이 지나고 새해의 봄을 만끽하려는 찰나 교육구로부터 알 수 없는 전염병 창궐로 2주간 임시 휴교를 감행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불쑥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공휴일도 없고 2학기 학부모 상담 주간으로 정신없는 3월에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있을까. 오히려 2주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 못내 아쉬웠다.


  임시휴교를 휴가로 착각하며 한참 들떠있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휴교 기간에도 비대면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라는 공지였다. 수업 일수를 채우기 위한 주 정부 방침이었다. 학생 개별 기기 없이, 컴퓨터 서른 개가 담긴 카트 하나로 네 학급이 돌려 쓰는 시국에 온라인 수업이라니. 난민 출신, 저소득 지원 대상. 머릿속으로 대충 세어 보아도 우리 학급만 열 가정이 넘는데 과연 이 모든 학생들에게 온라인 수업을 강요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다.


  이번에도 여전히 나만 안달복달할 뿐, 교장과 교감을 비롯한 교육구 관리자들은 천하태평이었다. 주 교육부에서 수업 참여도에 관한 자세한 지침이 없었다면서 비상 상황이니 교사 각자 재량껏 결정하되 당장 온라인 수업은 필수로 진행해야 한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학습 자료나 교구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쫓겨나듯 교실을 떠나야 했던 교사들 입장에선 무척 당혹스러운 요구였다. 구체적인 대책이나 준비 없이 무작정 온라인 수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은 참담했으나 늘 그래왔듯 그저 시키는 대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2주인 줄 알았던 임시휴교는 금방 한 달로 늘어나더니 이내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무제한 연장되었다. 날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가는 추세에 지역 커뮤니티 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혔고, 사태가 점점 더 심각해지자 안 그래도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교육은 더 이상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같은 주 내에서도 교육구마다 사정이 제각각이었는데 일부 학군지에서는 되려 교사들을 배려해 일정기간 수업을 멈추고 온라인 수업을 대비하는 교사 연수에만 집중하는 통에 학구열 높은 학부모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로선 누군가 지어낸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그나마 참여율이 높다며 칭찬받곤 했던 우리 반은 매 수업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고정적으로 참여했는데 늘 똑같은 학생들이었다. 대면 수업할 적에도 내게 문의 이메일을 보낸다거나 학교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부모를 둔 학생들, 너무나도 당연하게 집에 컴퓨터가 있는, 소위 말하는 서포트가 좋은 집안의 학생들이었다. 내 브런치북을 구독하는 독자들이라면 내가 이런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교사라는 걸 이전 일화들을 통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안젤로 사건을 겪으며 다소 패기가 꺾이긴 했지만 참여도만큼은 누구보다 불굴의 의지를 태우는 교사로서 이번 사태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우선은 교육구에 컴퓨터, 기자재 지원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워낙 예산이 빠듯한 상황에서 설사 비상 지원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고학년들이 우선이었기에 내가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커뮤니티 지원 웹사이트인 DonorsChoose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 전국의 모든 학교들이 너도나도 후원을 요청했고 내가 올린 게시물은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또다시 두 발로 뛰는 것뿐. 거리마다 "Stay Home"이라는 문구가 발목을 잡았지만 이기적 이게도 나는 내 학생들, 특히 나의 아픈 손가락들이 세상과 단절된 채 무기력한 가정환경에서 멈춰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했기 때문에 그 무엇도 나를 저지할 수 없었다. 첫 학부모 상담 기간에 그랬던 것처럼 휴교 이후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한 나머지 스무 명 가정에 차례로 문을 두드렸다. 대개는 문 앞에 학습지, 교구, 수업 안내문을 묶은 꾸러미를 두고 잽싸게 떠나는 방식이었지만 가끔 운이 좋으면 차에 올라타기 직전 창밖으로 우리 반 학생이 얼굴을 빼꼼히 내민 채 반갑게 손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력에 보상을 받는 것만큼 큰 행운이 어디 있을까. 학습 물품을 전달한 지 이주 차. 너무나 감사하게도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방법이 적힌 안내문이 효과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는 듯했다. 이후로 나는 점차 더 많은 도전을 시도했는데 이 과정에서 온라인 환경이 오히려 대면 학습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How to Writing'이라는 정보문 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한국식 계란말이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회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예상치 못했던 팬데믹으로 소풍이 좌절된 상황에서는 함께 샌디에이고의 동물원 영상을 모아둔 비대면 동물원 방문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재택근무를 해야 하거나 안타깝게 직장에서 해고된 부모님들도 초대하여 함께 참여함으로써 더욱 활기차고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업이 되었다는 점도 보람 있었다.


  기분 좋은 결실과 성취의 즐거움도 잠시, 나는 곧 교육구로부터 코로나로 인한 예산 부족과 학생 수 절감으로 당초 계획했던 한국어 이중언어 프로그램이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중언어 프로그램에 걸었던 희망은 홀로 아무런 연고 없는 낯선 도시에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기에 그 여파가 매우 크게 다가왔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계속해서 이곳에 교사로 남아야 할 가장 큰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1년 차가 이제 막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나는 앞으로의 진로를 떠올리며 딜레마에 빠졌다. 봉사와 희생정신, 그리고 현실적인 어려움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년에도 같은 학교에 머문다면 또다시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과연 올해처럼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아무런 확신 없이 어느덧 학기의 마지막 달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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