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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싼 Aug 12. 2024

서툴고 부족한 선생님이라 미안해

처음으로 학부모를 아동보호국에 신고하다

  학년 부장이었던 로리는 종종 “완벽한” 교사가 되는 법을 귀띔해주곤 했다. 학생, 학부모, 관리자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완벽한 교사가 되는 방법을. 


  우선 학생을 혼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고 교장, 교감도 골치 아플 일이 생기는 거라며. 좋은 게 좋은 거니 참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다음으로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그게 학생이 됐건 학부모가 됐건. 할 수 있는 만큼 가르쳐주는 게 교사의 역할이지, 배울 준비와 자세가 안된 학생을 끌고 가느라 에너지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좋은 말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학부모 상담에서 듣기 좋은 말만 하면 일 년이 편해진다면서 학습 장애 평가니 행동 장애 진단이니 하는 복잡한 일로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다고. 부모도 모르는 걸 괜히 우리가 들춰내서 없는 일을 만드는 거야 말로 정말 불필요한 일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담임으로서의 첫 학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겨울. 나는 열정 넘치는 신임교사와 완벽한 교사, 그 가운데에서 계속 방황하고 있었다. 몇 번을 되풀이해서 겪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손 놓게 되는 부분들이 생겼고, 구태여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 그러면서도 간혹 오기가 드는 순간이 있었는데 예컨대 교사회의에서 ‘여태껏 해왔던 대로 하면 되지’라는 말을 들을 때였다. 매번 학생들이 달라지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다른데 왜 작년과 똑같은 학습 활동을 하는지, 왜 학습지들을 하나 같이 다 구시대적인지. 나도 모르게 불끈하며 반대 의견을 스스럼없이 내곤 했었다. 하지만 이것도 차차 시간이 갈수록 얼굴을 붉히는 대신 몰래 우리 반이 사용할 학습지를 따로 만드는 것으로 변모해 갔다. 이것을 터득한 지혜라고 불러야 할지 어쩔 수 없이 몸에 익혀진 적응이라고 불러야 할지. 그저 그렇게, “불필요한” 일을 만들지 않으며 나름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던 것 같다.


  안젤로를 맡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젤로(가명)는 겨울방학을 일주일 앞둔 시점 갑자기 켈리 반에서 우리 반으로 이동된 학생이었다. 초콜릿색 피부에 까만 곱슬머리. 빼빼 마른 체구에 내 허리춤도 되지 않는 키가 매우 작은 편이었다. 약간 처진 눈매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로 복도를 오갈 때마다 눈에 띄었던 학생인데 이렇게 갑자기 하루아침에 우리 반으로 배정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교장선생님은 나중에 설명해 주겠다며 일단은 가능한 한 빨리 안젤로가 우리 반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당부했다. 등교하자마자 전 담임이었던 켈리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우리 반으로 끌려 온 안젤로는 예상대로 그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친구들이 있는 반에서 왜 나만 옮겨야 하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귀엽게 생긴 겉모습과는 다르게 걸걸하고 흑인 억양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켈리와 내게 번갈아가며 욕설을 퍼부었다. 우리 반 학생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욕설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곧이어 자폐를 가진 학생이 그중 몇 마디에 동요되었는지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덩달아 어수선해지는 분위기에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만큼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선생님이 어떻게 해주길 바랐을까. 낯선 반과 학급 친구들의 이목이 쏠린 자리가 얼마나 불편할까. 정신을 부여잡고 최대한 일곱 살 아이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수업 종이 울리면서 캘리는 본인 반으로 돌아가고 나도 언제까지나 학생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었기에 그 시간이 더욱 초조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지나가는 보조교사가 도움을 제안하셨고, 그분께 잠깐 우리 반 휴식 공간에서 안젤로와 함께 있어 줄 것을 부탁드렸다. 푹신한 흔들의자와 대형 모래시계, 감각 장난감 등 휴식 공간에 있는 물건들이 흥미로워 보였는지 안젤로가 순순히 보조교사를 따랐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안했을 학생들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설명하자 역시나 착한 우리 반 학생들, 이해할 수 있다며 나를 안심시키는 것은 물론 놀랐을 내 마음까지 걱정해 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쳐 안젤로가 새로운 반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다짐했고 학생들 모두 약속대로 안젤로에게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그런 진심에 안젤로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반 학생들과 곧잘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상황 설명을 해주겠다던 교장선생님은 겨울 방학에서야 연락이 닿았다. 처음엔 방학이니 이메일로 남겨도 될걸 왜 굳이 전화로 했을까 의아했다. 사연인 즉, 안젤로가 켈리반에서 지속적으로 같은 반 여자아이를 괴롭혔고, 그 수준이 엉덩이를 발로 차고 가슴을 꼬집으며 창녀라고 욕하는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 행동을 동반했기 때문에 안젤로를 다른 반으로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무거운 사안이라면 보통 정학(suspension) 처분을 내리지 않나요 라는 나의 질문에 교장선생님은 안젤로가 흑인 학생이고 교육구에서 흑인 학생을 행동문제로 정학 조치하는 것에 민감하고 절차 또한 일반 학생들보다 더 까다롭기 때문에 본인은 이 사안이 “유연하게”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사안의 본질도 충격적이었지만 누가 들어도 “옳지 않은” 대화를 문서로 남기지 않으려고 통화로 대신 했던 교장의 속내가 경악스러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그 잘못을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 친하게 지냈던 동료교사 한 분은 이거야 말로 역차별 아니냐며 나보다 더 화를 내셨다. 모든 게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안젤로에게 피해를 입었던 학생은 2세 한국인 가정이었는데 학교를 고소하겠다고 변호사를 알아본다는 소문이 돌다가 이내 잠잠해지더니 결국 사립학교로 전학 갔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다행히 우리 반으로 옮긴 뒤 안젤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여전히 말투는 거칠었지만 한결 다정하고 상냥한 표현들을 쓰기 시작했고 학업도 꽤 잘 따라왔다. 다른 반 선생님들은 안젤로가 영 다른 학생이 되었다며 신기해했다.


  내가 한 것은 방관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엔 안젤로의 성장이 모두 다 내 덕분인 것 같았다. 나야말로 참 교사라는 오만함에 취해 일부러 안젤로에게 더욱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그래서였을까. 안젤로가 지나가듯 던지는 말에도 귀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자면 집에서 밥을 제때 주지 않고 때린다든지, 부모님은 침대에서 자는데 본인은 형제들과 바닥에서 잔다든지, 유튜브 영상을 크게 틀었다고 아빠가 총으로 위협했다든지 따위의 말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영화에서 봤을 법한 상황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안젤로의 패딩 조끼에서 대마초 냄새를 맡았을 때 내 짐작은 기어이 확신이 되었고, 나는 결국 아동보호국 (CPS)에 신고하자는 결심에 이르렀다.


  대학원 시절, 교수님 한 분이 강의해 주셨던 의무 신고 (mandatory reporting)는 법적으로 교사와 같은 특정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이 아동 학대나 방임을 의심할 경우 꼭 당국에 신고해야 함을 명시했다. 어머 요즘 세상에 진짜 신고하는 교사들도 있어요?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동기들.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내가 어디서 갑자기 그런 정의감이 생겼는지 호기롭게 아동보호국에 전화를 걸었다. 생각보다 쉬웠다. 간단히 내 근무지와 학생 신원, 관찰 사항들을 이야기하고 조사하겠다는 답변을 받기까지 채 오분이 걸리지 않을 만큼 짧은 통화였다.


  내 무모했던 선택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는데 그중 하나는 학교 내에서 나의 평판에 관한 변화였다. 익명의 신고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학교에 조사원이 드나들며 조사 대상이 안젤로라는 사실과 그 담임이 나라는 상관관계가 너무나도 분명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가 최초 신고자라는 사실은 순식간에 온 학교에 퍼졌고, 교사 휴게실의 핫토픽은 어느덧 내가 돼버렸다. 부장 로리를 비롯한 우리 학년 팀 교사들은 하나같이 내가 “불필요”한 일을 했고 그래서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관리자들이 성가시게 됐다고 걱정했다. 마치 내부고발자가 된 기분이었다. 가르치는 업무 만으로도 버거운데 이젠 사람들 눈치도 봐야 한다니.


  첫 번째 결과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라면 다른 하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갔는데 그건 바로 부쩍 안젤로의 부모를 자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워낙 학부모 상담이나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유명했고 나 또한 안젤로를 맡게 되고 한 번도 본 적 없던 사람들이었는데, 신고 이후에는 증거라도 남기려는 듯 매번 직접 안젤로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가끔은 교실 안까지 들어와 아무 인사도 없이 나를 무섭게 노려보는 날도 있었다. 한 달 정도 그런 불편한 만남을 이어갔을까. 결국 무송치로 결론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CPS 측에서는 한참이 지나도 별다른 후속 조치나 통보 없이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내가 받은 통보라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안젤로 관련해서 가정문제는 앞으로 일절 신경 쓰지 말아 달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언제부턴가 예전처럼 그 부모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사건 이후 안젤로는 눈에 띄게 어두워졌으며 말수도 적어졌다. 몸에서는 여전히 대마초 절은 냄새가 났다. 적어도 그런 면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맞다고 믿어왔던 일을 했는데도 남는 건 자괴감과 후회뿐. 무엇보다도 교사로서 느끼는 무능력감이 나를 끝도 없이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무모한 패기로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을 뿐 아니라, 내 책임이라고 믿었던 학생이 결국 내 아이가 아니라는 것과 더불어 부모에 비해 일개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절실히 깨닫게 됐다. 기껏해야 학교에서 몇 시간 담임으로 함께 하며 학생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허황된 꿈이었을까?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완벽한 교사도, 열정 넘치는 교사도 아닌 아직 많은 것이 서툴고 부족한 교사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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