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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싼 Aug 09. 2024

매일같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고

교사, 이대로 괜찮은 걸까?

  첫 담임을 맡고 석 달 동안은 정말 숨 쉴 틈이 없었다. 밀려 있는 행정 업무, 빼곡한 달력의 학년 회의와 연수, 추가로 떠맡은 업무분장까지. 매일 가방 가득 활동지, 시험지, 일기장을 집에 가져가서 채점해도, 다음 날이면 똑같은 분량이 또다시 책상 위에 쌓이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침 조회 후 곧바로 두 시간 가까운 수업이 시작되는데 쉬는 시간 하나 없이 지난밤 내내 준비한 학습 활동을 몇 번씩 바꿔가며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른다. 그 끝에 얻은 귀중한 20분. 체육관에 학생들을 데려다주고 나면 벌써 그 소중한 쉬는 시간 절반이 사라져 있다. 급했던 화장실도 다녀오고 서둘러 칠판 정리도 하고. 다음 수업 시청각 자료를 화면에 띄우기가 무섭게 체육시간이 끝났다는 알람이 울리고 나는 다시 잰걸음으로 체육관으로 향한다. 


  영상을 보는 동안에도 가만있을 수 없는 선생님. 감각 처리 장애가 있는 학생을 위해 헤드폰을 조절해 주고,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겐 영상에 나오는 그림 단어집 정리한 자료를 설명해 주고, 자폐가 있는 학생이 또 지난번처럼 창문을 깨려고 하지 않는지 예의주시하면서, ADHD 있는 학생이 계속 교실을 탈출하려고 하진 않는지 살피면서, 옆 친구에게 몸싸움 거는 금쪽이들에게 틈틈이 주의도 주면서. 


  눈 깜짝할 새에 점심시간이 되면 이제야 숨 좀 돌려볼까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오피스에서 전화가 온다. 천식이 심한 우리 반 학생이 또 구토를 했다고. 카페테리아 아주머니 도와서 함께 치우고, 우는 학생 달래서 오피스 데려가 부모님께 전화드리고 환복 시키고, 교실로 돌아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으로 시작하는 이메일로 체육교사에게 이 학생은 특별히 달리기 열외 부탁드린다던 학부모님 말씀 상기시키는 것으로 또다시 점심시간 절반을 잃고. 


  내가 없는 동안 또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까, 재차 오피스에 불려 갈 일이 생기기 전에 서둘러 냉동 도시락을 데워먹고 체기를 누르며 운동장으로 종종걸음. 아니나 다를까 옆반 친구를 때리고선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식식 거리는 우리 반 금쪽이와 곁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서 계신 보조교사를 마주한다. 


“교장실로 가자는 데 꼼짝도 안 하네요.”


  구원투수처럼 나를 바라보시는 선생님 눈길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어르고 달래기를 여러 번. 운동장 구석에 마주 앉아 ‘그럼 화가 나는데 어떡해요’ 대드는 아이에게 나도 사람인지라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가르침이 부족했던 내 잘못이지. 화나는 것 이해한다만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고 화를 풀 수 있는 방법 배웠던 것 기억하지? 기억 안 날 수 있어. 감정이 격해지면 더더욱 그럴 수 있어. 그래서 선생님이 있는 거지. 계속 알려주려고. 당장은 힘들 거야. 지금은 네 기분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질 거야. 그렇지만 연습해야 해. 내가 내 감정의 주인이 되는 것.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를 위해서.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줄게. 


  우리 반 학생을 타이르며 되려 내가 깨우친다. 정신없는 하루 속 잊고 있었던 내 필요의 이유와 역할을 다시금 되새기고 그렇게 나를 추스르고. 조금은 숨통이 트인 마음으로 두 손 꼭 잡고. 돌아가 또다시 전쟁 같은 오후를 이겨낼 힘을 얻고. 


  누군가 나에게 미국 내에서도 악명 높은 Title1 학교에서의 첫 해가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힘들었다고 말할 것이다.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서 어떻게 버텼냐는 질문엔 사실 운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교사로 근무하며 이런 마법 같은 순간들은 내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나를 필요로 받아 준 천사 같은 학생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아직도 미국의 수많은 Title1 학교에서는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는 신입교사들이 많다. 또한 운 좋게 착한 학생들을 만나 이런 작은 보람마저 느끼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6년 차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꼭 Title1이 아니더라도 코로나 후 학습장애나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매일이 공개수업이었던 비대면 현장에서 최선을 다했던 교사들이 고생의 대가는커녕 평가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상황 속에서 많은 교사들이 교직을 떠났다. 


  얼마 아는 지인이 작금의 교사 부족 사태를 안타까워하며 요즘 젊은 교사들은 조금 힘든 것도 못 버티고 그만둬서 문제라던 지적이 떠오른다. 교실에서 시간도 보내본 없는 그녀의 말에 대꾸할 의미를 찾지 못했다. 분명한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왜 유독 그렇게 교사들에게만 엄격한지. 이제는 시선을 돌려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 살펴봐야 할 시점인데 정작 중요한 당사자들은 쉬운 비판의 대상만 찾을 뿐, 현 상황의 핵심은 외면하는 것 같다. 교사, 이대로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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