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로 와닿았던 Title1 학교의 현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새로운 학급에 적응을 마칠 무렵인 10월은 보통 conference 또는 connection meeting이라고 불리는 학부모 상담 주간이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다. 지역에 따라 10월이 아니라 9월 개학 직후에 바로 하는 학교들도 있고, 교육구나 학교의 재량에 따라 시기와 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일주일 정도 특정 주간 동안 교사와 1:1 상담 약속을 잡고 2-30여 분간 학생의 학습 성향이나 성적, 지도사항들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무래도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0월은 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료도 딱히 없고 아직 개별 학생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보통 학생의 성향이나 장, 단점, 가정에서의 목표 등 오히려 부모님 측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전달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나는 학생에 대해 잘 아는 것이야말로 교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의무이자 가르침의 시작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특히나 더 상담 주간만을 기다려왔다. 1:1 상담 이전에도 교실에 잠깐 들러 선생님과 인사하거나 (Meet and Greet/ Open House) 학교에서 배우는 커리큘럼이나 학급 운영에 대해 선생님에게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설명회 (Curriculum Night)등 크고 작은 이벤트가 있었지만 참석하는 학부모들도 많지 않고 대화를 나누더라도 어수선한 환경에서 아주 짧은 시간뿐이기 때문에 심도 있는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상담 일자와 시간을 정할 수 있는 링크를 만들자마자 곧바로 온라인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학기 초 설문조사에서 학급 부모님들의 절반 정도만 주기적으로 이메일을 체크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잊지 않고 종이로 된 가정통신문도 따로 보냈다. 하루가 지나고 이제 곧 물밀듯이 스케줄이 채워지겠구나 설렘과 기대로 캘린더 앱을 켠 순간 이게 웬 걸, 스물네 명 반 학생들 중 일정을 등록한 학부모는 딱 한 명뿐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이전 학군지에서의 교생시절 땐 가정통신문 ‘보내기’ 버튼을 클릭하자마자 벌떼같이 새로운 일정이 예약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곤 했었다. 심지어 그때는 상담 가능 기간도 3일밖에 없었고 선택할 수 있는 시간대 옵션도 많지 않았는데도 학급 모든 학부모들이 이틀 만에 예약을 마쳤던 것은 물론, 원하는 시간대가 이미 예약된 경우 내게 따로 시간 약속을 잡자는 적극적인 요청도 자주 받곤 했었다. 당황스러웠다. 한 명이 등록했으니 링크가 잘못되었을 리도 만무했다. 이 지역의 학부모들은 대개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군(blue collar)이고 풀타임으로 하루 종일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교육에 대해 크게 관심도 없을뿐더러, 설사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상담까지 일일이 챙길 여유가 없다던 동료교사의 말이 떠올랐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그래서 일부러 상담 시간도 아침 8시부터 수업 시간 제외한 저녁 8시 사이, 자발적 야근까지 해가며 최대한 많은 시간대를 열어두려고 했던 건데, 딱 한 명이라니.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다행히 그 후 일주일 간 등록 수가 열세 명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학급의 절반 정도가 등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주변 학급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내내 고민하며 학부모들에게 전화도 돌려봤지만 대부분은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고, 운 좋게 연결되었던 몇 명 마저도 개인 사정이 있어 참석하기 어렵다는 말을 전할 뿐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어려움에 당황했던 건 오로지 나 하나. 옆 반 교사들은 매 년 겪어온 상황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상담 적게 하면 편하고 좋지 뭘 그렇게 아등바등하냐며 속 모르는 소리를 했다. 팀장 로리는 어차피 보나 마나 등록 숫자도 저조할 텐데 가정통신문에 상담 가능일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로만 표기하고, 금요일은 비워서 자체휴가를 내겠다고 했다. 교장도 허락한 사항이라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3,40년 된 교사들이 말하는 경력에서 나오는 여유란 바로 이런 꼼수를 말하는 걸까. ‘이런 방법을 쓰니 참여율이 올라가더라'와 같은 노련한 요령을 가르쳐주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동료교사를 바랐는데. 혹시나 교장선생님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우습게 빗나갔다. 학기 초 존경해 마지않았던 나의 제프 교장선생님은 되려 나에게 먼저 로리처럼 하는 게 어떻겠냐며 선심 쓰듯 제안했고, 한 술 더 떠서 연락을 안 받는 학부모들에게 ‘학교 측에서는 분명 연락을 했으나 본인이 답하지 않아 상담이 취소되었다’는 통보 메일을 보내서 증거를 확실히 남겨야 한다고 했다.
교육학에서 배웠던 이론들은 하나같이 가정과 학교가 하나로 뭉쳐 학생을 서포트해야 한다는 협력을 강조했다. Title1 학교에서 정식으로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그동안 석사과정에서 배웠던 모든 이론들이 마치 먼 옛날 설화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학부모와의 협력 중에서도 학기 초 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해 버린다면 나 또한 내가 혐오하는 모습의 교사로, 그들처럼 벽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20, 30년이 지날 거라는 생각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손잡이를 찾자고 다짐했다.
우선은 편지를 써서 학생 편으로 보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가정에는 그 나라 언어로 번역된 주석도 달았다. 이메일로도 답장이 없는데 편지가 웬 말이냐 싶겠지만 10분만이라도 좋고, 만나지 않고 통화로라도 좋으니 학생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아이의 중요한 1년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 호소하는 손 편지에 의외로 서너 명의 학부모들이 이렇게까지 노력해 줘서 고맙다며 면담 약속을 잡았다. 전화를 받지 않는 학부모들에게 꾸준히 음성메시지도 남겼다. 아이에게 배우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2학년이 얼마나 중요한 단계인지 20분가량 설명하는 메시지를 남겼고 그 결과 또 다른 세 명으로부터 전화 혹은 면담 스케줄을 잡을 수 있었다. 마지막 세 명은 생각보다 더 난이도가 높았는데, 편지도 음성메시지도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거나 심적 여유가 없는 분들일 거라는 생각에 직접 가정 방문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한국 아파트에서 살던 때 현관문틈으로 전단지나 교회 광고지 같은 것들이 끼워져 있던 것이 생각났다. 일전에 써두었던 편지들을 문틈에 끼워 두고 왔다. 방문했던 세 곳 모두 정부 보조 아파트였다는 점이 꽤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중 한 명만 등록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지만, 성과를 넘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스스로 뿌듯하고 대견했다.
대망의 상담 시작 날. 문을 열고 한 가족이 들어왔다. 아빠, 엄마, 우리 반 학생 그리고 아장아장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여동생까지. 삼 년 전 베트남에서 왔다는 가족은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해본다고 했다. 여태껏 한 번도 베트남어로 된 가정통신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 상담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아내가 운전을 못해서 학교에 오려거든 아빠가 차를 끌고 와야 하는데 일하는 식당 사장 눈치가 보여 도저히 여덟 시 전엔 일을 뺄 수가 없었다면서,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언어, 운전, 근무시간. 미국에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운전 면허증과 차가 있으며 원하면 언제든지 휴가를 낼 수 있는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벽들이 하나둘 씩 드러났다. 우리 반 가족들에게 또 얼마나 많은 벽이 있을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그들을 문으로 바꿀 수 있을까. 상담하는 주 내내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학부모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 큰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