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문의 시작, 교사 휴게실
2학년 교사들은 나를 포함해서 총 네 명이었다. 부장을 맡은 로리는 교사경력만 35년이 넘는 베테랑교사로 손녀들을 넷이나 둔 백인 할머니였는데 가족들이 모두 애리조나에 살고 있어 항상 여름은 그곳에 있는 별장에서 보낸다고 했다. 내 바로 옆반이었던 켈리 역시 30년 가까운 경력의 교사로 2학년 팀 내에서는 영재반 학생들을 맡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켈리가 맡은 반은 보통 ‘highly capable’이나 ‘gifted and talented’로 불리는 영재반이라기 보단 accelerated program (빠른 진도/심화 프로그램)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교육구에서는 꿋꿋이 gifted라고 부르며 해당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들 홍보에 열을 올리는 듯했다. 영재반을 맡은 켈리의 학급에서 사실상 교육구에서 자격 인정을 받은 "영재생"들은 절반뿐, 나머지는 보통 학생들이었는데 켈리는
differentiation (차별화) 수업 준비만 더 성가시게 되었다며 추가 수당도 없는 일을 떠맡은 걸 내내 후회했다고 했다. 이참에 내가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학부 시절 영재 교육원에서 단기 프로젝트를 맡아 일했던 적은 있지만 관련 특수 자격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망설였더니 켈리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면서 기존의 커리큘럼에서 학습활동 난이도만 좀 더 상향 조절하고 진도만 빠르게 나가는 “간단한” 추가 업무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아니 세상에 영재교육이 간단하다니, 엄연한 특수교육의 한 분야를 적합한 교육과 자격 없이 가르쳐도 괜찮다니. 대체 얼마나 많은 미국의 초등학교들이 영재교육을 이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건지. Title1의 열악한 학교라 그렇다고 하기엔 같은 교육구의 Title1이 아닌 다른 학교들도 같은 체계를 따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더욱 회의감이 들었다. 좀 더 속속들이 알고 싶은 마음에 그래, 내가 그 “간단한” 업무를 맡아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교직 첫 해, 적응하는 것만도 벅찬데 또 새로운 업무를 맡는다는 건 어렵겠다는 판단 하에 결국 정중히 사양했다.
우리 학년 팀 마지막은 선샤인이라는 이름의 교사로, 교직을 시작한 지 이제 3년 차가 된 비교적 신참교사였다. 신참교사라고 해서 나이까지 젊은 건 아니었다. 교사로 시작하기 전 꽤 오랫동안 paraeducator (특수교육 보조교사)로 일했었고 중학생, 고등학생 딸을 둔 40대 후반의 엄마이기도 했다. 두 딸 중에 둘째는 심한 자폐를 갖고 있었다. 엄마 교실 꾸미는 걸 도와준다고 방학 동안 두세 번 정도 놀러 왔을 때 본 적이 있는데 초록색 눈동자가 휘어지도록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던 게 기억에 남는다. 선샤인은 이름답게 무척 밝은 사람이었는데 워싱턴 주 열 곳이 넘는 초등학교에서 일하며 수없이 만났던 외향적 성향의 백인 여성 교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대문자 E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처음 만났던 날 무척 더웠던 날씨 탓에 우리 둘 다 나시를 입고 있었다. 어깨부터 팔 전체를 뒤덮은 문신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선샤인은 내가 아시안이라 너무 좋다며, 학교 학생들 중 1/4 가량이 아시안인데 어째서 교육구는 주야장천 백인 여교사들만 뽑아대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Social justice (사회적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보적인 성향이구나. 그녀를 보며 워싱턴 주 자체를 사람으로 의인화한다면 딱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선샤인의 유일한 단점은 말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는데, 그 말들로 인해 때로는 학년 팀이, 학교가, 교육구 전체가 흔들렸던 일화들을 다시 떠올리자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선샤인은 교사 휴게실에 살다시피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휴게실을 찾았고, 그녀가 자리를 잡은 곳 주위에는 늘 다른 교사들이 벌떼처럼 북적거렸다. 대부분은 노조(union)나 청원(petition)과 같은 묵직한 단어들이 섞여 들렸다. 이전 학교에서도 교사 휴게실은 항상 수많은 소문이 시작되고 이야기가 퍼지는 소통의 메카였으나, 그 이야기들이 매번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첫 교직을 시작한 Title1 학교에서의 휴게실은 첫날부터 위험한 경고와 출처를 알 수 없는 흉흉한 소문으로 가득했다. 라오스 출신 수위 아저씨인 미스터 캄은 매우 괴팍한 성격이며 그분의 눈 밖에 나면 일부러 쓰레기통도 비워주지 않고 차별하니 조심하라는 둥, 내 옆 반 교사였던 켈리가 실은 극심한 우울증 환자이며 남편이 그것 때문에 자살했으니 거리를 두라는 둥.
그러거나 말거나.
캄 아저씨는 교직 첫 해, 내가 수많은 업무량에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출근했던 시절 아침마다 커피를 나눠 마시며 일과를 시작했던 가까운 친구였고, 모두가 퇴근하고 텅 빈 저녁 8시. 무섭지 않느냐며 음악도 틀어주시고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시던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켈리는 다사다난했던 내 첫 직장 모든 동료교사들을 통틀어 지금까지도 허물없이 연락하고 지내는 유일한 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