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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버스

by 김은하 Mar 24. 2025


시내버스가 도착했다. 차에 올라 교통카드를 대었다. 카드가 먹통이다. 순간 당황하는 나를 보며 운전기사는 “오늘이 5·18 기념일이라 버스 요금이 무료입니다.”라고 했다. 버스 요금이 공짜라니 이런 횡재가 …. 그런데 기분이 좀 묘했다. 5·18이라는 무거운 수식어를 붙이고 타는 공짜 버스를 무작정 기뻐할 수도 그렇다고 슬퍼할 수도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표정 관리가 복잡해지는 동안 차가 움직였다. 나는 서둘러 빈자리에 앉았다.      

2024년 5월 토요일의 분주한 버스 창밖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1980년 5월 하얀색 깃의 하복이 반짝거리던 중학생 시절의 기억을 더듬거렸다. “만감이 교차한다.”라는 감정이 이런 느낌일까? 덜컹거리는 무료 버스는 사십여 년이라는 긴 시간의 건너편 기억을 순간처럼 눈앞에 흩뿌리고 있었다. 그날의 숨소리처럼 거칠게 내어 달리는 버스 창문으로 오월의 햇살이 눈부시게 들이쳤다.    

  

1교시가 끝난 즈음에 담임선생님은 종례를 서둘렀다. 선생님은 “다른 데로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라. 혼자 다니지 말고 집이 같은 방향인 친구들끼리 모여서 귀가하도록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버스정류장에는 이미 주변 학교에서 쏟아진 학생들로 가득했고 버스마다 학생들이 넘쳐났다. 이리 저리 밀리는 버스 안에는 아직 못 먹은 도시락 속의 신김치 냄새와 끈적이는 땀냄새가 어우러져 있었다. 흔들리며 달리던 버스는 광주 땅에 펼쳐질 운명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버스는 금남로에 멈췄다. 기사 아저씨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며 공설 운동장쪽으로 방향을 돌린다고 했다.    

  

나와 친구 은영이는 금남로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아 고속도로처럼 넓은 금남로를 걸었다. 군복 입은 사람들이 보였고 국방색의 군대 지프차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길게 주차해 있었다. 자신의 손바닥을 몽둥이 같은 것으로 툭툭치며 군인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마우신 국군 아저씨에게”라는 위문편지 쓰기 숙제를 줄기차게 했었던 우리는 해맑은 인사를 그에게 건넸다. 


군인은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집에 가요. 버스가 못간데요.” 집이 어디냐고 물은 군인은 금남로 건너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우리에게 “곧바로 집으로 가야한다.”라고 하며 돌아서 다른 군인들에게로 갔다. 우리가 주차되어 있던 지프차 옆을 지나갈 때는 아무도 없는 깨끗한 빈 차였다. 그날 은영이와 내가 걸었던 금남로 거리의 지프차와 군인들을 몇 해 후에 사진에서 다시 볼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리고 광주는 속울음을 삼키는 달이다. 끔찍한 기억에 몸부림치는 통곡의 달이다. 눈물도 메말라버린 어머니들이 빈껍데기뿐인 가슴을 움켜잡는 달이다. 어찌할 수 없었던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묵묵히 아픔을 견디고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안아주고 싶다. 애썼다고 다독여주고 싶다. 그 모습, 그 아픔, 그대로 살아내어 주어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시내버스에서 내렸다. 멀어지는 버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따사로운 햇살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나누지 못한 언어들은 눈물이 되고 바람이 되어 하늘의 별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 오늘 밤 별빛은 얼마나 밝을까? 이런저런 말이 안 되는 수다를 혼자 중얼거리며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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