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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단 Mar 25. 2022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중2 딸과의 냉전 시간을 보내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성향의 생명체가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그것도 매일매일 그 일을 반복하며 서로 공존하는 그 자체는 참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특히 사춘기와 갱년기에 접어든 이들이 균형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건 웬만한 인내력이 아니고는 쉽지 않음을 더욱 실감한다.



며칠 전 사춘기 중2 딸과 오랜만에 스파크가 일었다. 평소에 많은 것을 공감하고 나누는 모녀 사이였기 때문에 이번 일의 스파크는 더 강하게 튀었는지 모른다.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했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같이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를 돕기 위해 아침 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방에서 나온 딸은 내가 담아놓았던 반찬 그릇을 가져가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담겨있던 반찬 중 미역줄기 볶음을 지저분하게 먹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남편이 식탁에 앉지 않은 상황에 그렇게 먹는 딸을 보면서 한마디를 하게 됐다.


"OO야, 혼자 먹는 반찬이 아닌데 음식을 그렇게 지저분하게 먹으면 어떡해."

"몰랐어요"

"..."

"몰랐다는 한마디로 끝날게 아니라 '몰랐어요. 죄송해요'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니?"

"모르는 게 왜 죄송해야 하는 건데요"

"..."

나는 순간 욱하는 감정이 올라와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어떻게 눈앞에 바로 보이는데 모를 수가 있어? 모른 척한 거 아니야."

"모르는 척한 게 아니라 못 봤다고요."


딸은 억울하다는 듯이 울먹이며 입안에 밥을 삼키기도 전에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젓가락으로 또 손으로 거세게 식탁을 치면서 화를 냈다. 시간이 지나 이 타이밍에서 내가 놓친 게 여러 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랬어. 못 봤구나. 엄마가 몰랐네. 하지만 가족이 같이 먹는 반찬이니까 깨끗하게 먹으면 좋겠어."

공감과 설득의 말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아이의 날카로운 반응에 나도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바람에 차분하게 말을 건네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반찬으로 시작된 모녀 사이의 냉전은 이틀을 침묵으로 보냈다. 아이는 억울한 마음으로, 나는 아이의 태도에 화가 나 버린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딸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로 하고, 아이와 거리두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 엄마인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안아주는 딸이었기 때문에 아쉬운 사람이 딸이라는 생각이 들어 먼저 사과하고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다다음날에도 움직이지 않는 딸을 보면서 '독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벌써 다가왔을 아이인데 역시 '사춘기의 절정에 들어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름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면서 이틀 동안 독서도 하고 글도 쓰면서 나만의 충전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냉전을 마치는 게 서로에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제저녁 그 일을 마무리했다.


사실 내 성격상 냉전을 오래 하지 못하는 것도 있어서 내가 먼저 다가간 것도 있다. 예전 같으면 몇 시간 뒤에 아니 몇 분 뒤에 죄송하다고 사과했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면 먼저 다가오지 않는 아이가 됐다는 생각에 좀 씁쓸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 딸과 나와의 관계를 점검했다. 평소에 나는 딸에게 친구 같은 엄마이면서 인생의 조언자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여겼다. 아이의 고민을 들어주고, 필요를 채워주면서 엄마와 삶의 조력자, 인생의 선배 역할을 적절하게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딸은 단지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같은 엄마로만 생각했다는 마음이 들어 이제는 (권위적인 부모가 아닌) 권위 있는 부모와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저녁 아이의 방문을 노크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OO야, 네가 몰랐다고 하는 말을 엄마가 인정하기로 했어. 하지만 엄마는 그다음의 너의 태도에 대해 화가 났던 것 같아. 그래서 엄마도 모르게 언성이 높았었고. 이 부분은 엄마가 사과할게. OO도 격하게 행동했던 부분은 사과하는 게 맞겠지? 그리고 몰랐다고 해도 누군가 불쾌할 수 있는 부분은 사과하는 게 맞다고 엄마는 생각해."


"네. 죄송해요. 그런데 앞으로 엄마한테 사랑해요 라는 말은 이전처럼 편하게는 못할 것 같아요. 이번 일로 마음이 많이 닫혔거든요."

"다투고 나면 그럴 수 있어. 네가 하고 싶을 때 해. 대신 엄마가 많이 할게."



이렇게 우리 모녀는 서로 안아주면서 이틀간의 냉전을 마무리했다.

"엄마, 기분이 겁나 좋아요."

질풍노도의 시간을 걸어가는 사춘기 아이다운 표현력에 나는 크게 웃고 말았다.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면 사과와 용서에 먼저 용기를 낸 자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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