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인 만큼 채워지는 단단한 만족
▣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더니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는 말에 어느 부분 동의한다. 살만 뺐을 뿐인데, 살을 빼고 나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예뻐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눈이 커지고, 눈매가 또렷해지고, 묻혀있던 코가 솟아 나오고, 턱선이 날렵해지고, 얼굴이 반쪽이 되어 보이는 마법을 시술 없이 다이어트 하나로 부릴 수 있다.
다이어트로 10킬로그램을 뺀 나는 예뻐졌느냐?
10킬로그램을 뺀 후 이번 다이어트의 강력한 동기였던 꽉 끼는 바지가 만족스럽게 잘 맞는다. 원래 헐렁하게 입어야 하는 바지를 다시 헐렁하게 입을 수 있게 되어서 만족한다. 얼마 전에는 여름을 맞아 새로운 반바지를 한 장 구입했는데 M 사이즈와 L 사이즈를 놓고 고민하다 M사이즈를 주문했는데 다행히 예쁘게 잘 맞는다. 몹시 만족스럽다.
하지만,
무려 10킬로그램이나 뺐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예쁘지는 않다. 살 빼기 전 무슨 상상을 한 걸까? 살 빼면 되게 예쁠 줄 알았나? 20대로 돌아가기라도 할 줄 알았나? 대체 뭘 기대한 걸까?
예전에 예쁘게 입었던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나. 분명히 괜찮았었는데. 예전에 괜찮았던 나는 현실엔 없는 것 같다. 20대 때 입었던 옷을 입는다고 20대가 되지 않는 건 당연한 건데 당연함을 빤히 보면서도 과거의 영광을 찾는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겪은 뒤 조금은 편해지고 있다. 나는 40대다. 20대에 비해 약간 늙었다. 오늘도 늙어가고 있다.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살을 빼는 기간만큼 노화의 시간이 진행되었다. 20대, 30대는 짧은 것 같아도 노화의 시간은 더디게 간다. 하도 더디게 가서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바로 마주치는 노인들을 보면서도 나에게 노화는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고 착각한다.
노화의 진행은 티가 잘 나지 않다가 마흔이 넘어가면 외모가 시간을 따라가는 것이 확실히 눈에 보인다. 밀렸던 숙제를 하듯 한 해, 한 해 외모의 변화가 다르다. 춥고 건조한 겨울을 보내는 동안 늙는다. 연둣빛 새싹과 봉우리들이 올라오는 봄에 내 얼굴엔 노화가 꽃 핀다.
싱그러움 다 어디 갔을까? 풋풋함 다 어디 갔을까? 순수함은 다 어디 갔을까? 절정은 참 짧구나. 이렇게 빨리 시간이 갈 줄 알았으면 젊음을 더 즐겨볼걸. 내 얼굴에 핀 노화에는 시간과 굳어버린 성격만 담겨있다.
케이와 저녁 산책을 하다 잠시 벤치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영점 조절을 하고 있을 때 케이가 아득히 하늘을 바라보는 내 옆모습을 찍었다. 인공지능 카메라는 내 광대와 각진 턱을 두드러지게 드러내주었다. 밤하늘을 아련히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는 여주인공 같은 모습이어야 하는데 밤하늘을 노려보며 다짐을 하는 강인한 여전사의 얼굴이다.
“사진은 더 별로다”라고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데 케이는 사진 잘 나왔다고 딴소리를 한다. 케이는 빈말을 태연하게 하는 사람인지, 나와는 동공의 구조에 차이가 있는 건지, 아니면 내 실물이 사진보다 못한 건지 의아하다.
“다시 찍어줘.”
“사진 잘 나왔다.”라며 흡족해하는 케이 말에 다시 한번 찍고 싶은 도전적인 마음이 생겼다.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왕이면 예쁘게 나왔으면 좋겠다.
“잘 나왔어? 봐봐.”
카메라가 놀라우리만큼 민낯의 표정을 잡아내버린다. 싱그러움이란 찾아볼 수 없고,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 이렇게 지쳐 보이지? 나는 분명 활짝 웃은 것 같은데 삶에 찌들어 고단해 보이는 중년 여자가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한때’의 모습이 담기지 않으니 애처롭기까지 하다.
“살을 빼지 않는 편이 나을까? 볼살이 있는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지만 싱그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살이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일초, 이초, 시곗바늘에 맞춰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노화의 시간 때문인지도. 더는 다이어트를 해도 젊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살을 빼고 멋을 부려도 젊을 때만큼 예뻐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감하고 있었다. 과거의 나를 놓지 못하면서 왜 다이어트를 했을까.
▣ 도대체 왜 다이어트를 하는가? 이 나이에.
다이어트 내내 ‘도대체 다이어트 왜 하는 거지?’계속 물었다. 그리고 확인했다. 내가 진심으로 다이어트 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 확인한 마음이 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날씬해야 한다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넘어 무엇보다 자기만족. 자기만족에 타인의 시선과 사회문화적 배경이 섞여 있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자기만족.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이대로 계속 살이 찌고 싶지는 않았다. 절제가 안되는 내가 만들어내는 불편한 마음을 감당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나 스스로 나를 조절하면서 얻는 만족감이 나의 행복의 큰 축이었다.
예쁘지 않아도 상관없다.
20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20대로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잘 먹고, 잘 자고, 움직일 수 있음에 만족한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맛집도 갈 수 있고, 예쁜 카페도 가고, 미술관도 가고, 박물관도 가고, 전시회도 보러 가는 자유로움을 누리는 것에 감사한다.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돌아다니고, 걸어 다닐 힘이 있는 것에 만족한다.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해냈다는 것에 만족한다.
나는 아직 젊다. 나이 들면 마른 것보단 살이 좀 있는 게 예쁘다고들 한다. 그래도 나는 지금은 날씬하게 살고 싶다. 라지 사이즈 바지 정도는 낙낙하게 입고 싶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 도대체 언제까지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걸까?
도대체 언제까지 날씬하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언제까지 외모 관리를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도대체 언제까지 다이어트를 해야 한단 말인가?
60대 지인은 코로나 때 찐 살을 뺐다고 흐뭇해한다. 낼모레 70인 지인은 의사가 3킬로그램을 감량하라고 했다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동한다. 식단도 철저하게 관리한다. 낼 모레 60인 지인은 요가, 수영, 걷기와 같은 운동을 일주일 내내 스케줄 짜서 한다. 가천대 이길여 총장만큼 쌩쌩한 80대 지인은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새벽 두어 시간을 운동한다. 70대인 우리 엄마는 배 나온다며 저녁을 소식하신다. 내 주변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한다.
▣ 지치지 않기 위해선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단 2kg의 체중 감량이라도 기쁘게 받아들인다. 약간의 체중도 감소하지 않고 미동도 없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조금 더 해본다.
* 긍정적인 미래를 그린다.
-살이 빠지고 있다, 뱃살이 들어가고 있다, 허리가 잘룩해지고 있다, 날씬해지고 있다. 예뻐지고 있다. 근사해지고 있다. 좋아지고 있다. 이런 긍정들이 오늘도 다이어트를 유지하게 해준다.
* 긍정적인 생각을 구체적으로 한다.
-예쁜 옷을 입을 생각을 하니 설렌다.
-마음에 드는 옷은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생각하니 설렌다.
-살이 빠지고 있어 설렌다.
-뱃살이 들어가고 있어 설렌다.
-나를 흡족하게 보는 나를 생각하니 설렌다.
▣ 줄인 만큼 채워지는 단단한 만족감.
문득 더하면 더할수록 뿌듯함보다 더부룩하다고 느낄 때, 어느 순간 도망가고 싶을 만큼 갑갑하다고 느낄 때가 비워내야 하는 시간이다. 기름지고 느끼한 것들을 덜어내고, 덜어낸다. 줄이고 비우고 덜어내는 동안 만족감이 차오른다. 다이어트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내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다. 낼 모레 아흔인 지인이 새벽마다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나도 나의 내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