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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20kg을 드는 여자, 나는 오늘도 잘 살아낸다.

내가 지키고 싶은 삶

by 비단구름

▣ 마른 몸보다 내가 지키고 싶은 삶이 있다.


요즘 나의 적정 체중은 60kg 전후가 된 것 같다. 적당히 사람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고, 적당히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적당히 삶을 즐기는 맛이 좋다 보니 60kg 정도를 유지하게 된다.


이제 다시는 50kg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마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얼마 전에도 케이에게 당당하게 외쳤다. “나는 50킬로그램으로 못 빼는 것이 아니야! 안 빼는 거지!” 50킬로그램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지금의 나에게 만족한다.


다이어트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찌우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는 즐거움으로 시간을 채우고 싶다.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면을 성찰하는 잔잔하면서 평안한 고독을 영혼에게 주고 싶다. 마른 몸보다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매일 알아가고 있다.


8-1.jpg 10kg 감량한 일반식 다이어트 식단


▣ 나는 힘쓸 일이 많다.


어제는 외출했다 돌아오니 엘리베이터 앞에 몇 개의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열두 개 팩 우유 한 박스,

해시브라운 2박스,

그리고 해남 쌀 20kg.


현관문을 열고 하나하나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우유는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이번 주말 아침으로 기름지게 구운 해시브라운과 계란 프라이를 먹을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해시브라운을 냉동실 서랍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그리고, 쌀20kg. 4인 가족의 식사 담당을 맡고 있는 나는 쌀 20kg이 배송 오면 번쩍 들어 집안으로 들여놓아야 한다. 10kg짜리 쌀 두 포대를 사도 한 상자에 함께 오기 때문에 집안까지 들여다 놓으려면 20kg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 20kg 쌀 포대 드는 법


쌀 20kg 들 정도의 힘은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


쌀 20kg을 들려면 나로서는 요령이 필요하다. 쌀 20kg을 어깨 위로 번쩍 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해서 몹시 주의 깊게 자세를 취한다. 손가락으로만 들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손목으로만 들려는 생각도 버리는 것이 좋다. 자칫하다간 허리를 삐끗하거나 손가락을 다칠 수 있다. 애써 가꾼 손톱이 깨질 수도 있다.


1)먼저 팔을 쌀 포대 바닥으로 깊숙이 넣는다.

2)쌀 포대를 들기 전 하체에 야무지게 힘을 준다.

3)흉곽에 힘을 넣어, 마치 흉곽에서 힘이 나오듯 쌀 포대를 퍼 올린다.

4)쌀 포대가 바닥에서 분리되는 즉시 흐쌰, 하면서 신속하게 끌어안듯이 당긴다.


팔을 축 늘어뜨리고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걷는 것보다는 최대한 상체까지 들어 올리는 편이 이동거리를 늘려준다. 이 자세, 저 자세 취해보고 터득한 나름의 요령이지만 쌀 20kg을 들고 나르는 일은 매번 쉽지 않다. 그래도 해낸다. 케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안으로 들여다 놓는다. 먹고사는 건 중요한 문제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까.


20kg 쌀을 보고 있으니 만석꾼이 된 것 같이 든든하다. 나 잘 먹고 잘 살고 있구나! 나를 보살펴주는 모든 행운과 사랑에 감사하다고 느낀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8-2.jpg 운동&체중변화


▣ 50kg으로 돌아갈 수 있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


케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효자 아들 금조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오기 전에 제자리에 둔다. 힘이 없어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고, 이런 것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나 자신은 별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힘이 닿는 만큼 해내고 싶다.


무언가를 해내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있어야 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돈과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장 먼저 체력을 떠올린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힘.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


내가 어릴 땐 힘이 있어야 해,라고 하면 대게 이 말을 떠올렸다.

“체력이 국력이다.”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

국민체조를 하며 자란 나는 여전히 체력은 국력이라고 믿는다. 건강한 신체가 건강한 정신을 이끈다고 믿는다.


쌀 20kg을 햇빛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곳에 옮겨두어야 한다. 강아지 사료 15kg~20kg을 현관에서부터 들고 들어와 정리해두어야 한다. 마트나 시장에서 장을 보는 일만 해도 상당한 힘이 필요하다. 두루마리 휴지, 샴푸, 린스, 간장, 고추장, 된장, 물엿, 양파 한 망, 감자, 바나나, 우유, 이런 걸 사는 날엔 양손에 각각 6kg 이상의 아령을 들고 체력 단련하는 기분이다.


장바구니를 들고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유지하고 싶다.

지하철 계단을 지치지 않고 한 번에 올라가고 싶다.

힘이 있으면 사는 게 여러모로 홀가분하고 편하다.


누군가에게 도움받을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가 되기보다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약하다고 타인의 도움을 쉽게 구하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


보호받을 생각하지 않는다. 강한 자에게 보호받으려고 하기보다는 강해져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다. 지금은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킬 수도 있다. 앞으로는 서로를 지켜주어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쌀 20kg 적어도 쌀 10kg 정도 들 힘은 남겨 두려는 이유다.


힘이 없다고 도움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힘이 약하다고 누군가를 부려먹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힘이 없다고 누군가를 시켜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가 아닌 이상, 도움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힘을 길러 사회적 약자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 체중보다 체력을 유지하기로 했다.


나의 힘은 약간의 체중에서 나온다. 쌀 20kg를 들 수 있으면서 보기 좋은 체형, 내가 만족하는 체형, 나에게는 55kg-65kg. 그래서 나는 일정 수준의 튼실한 체중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체중은 더 이상 줄지 않아도 마음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가족을 지키는 대장군이 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라이프 오브 사만다’를 보며 아령을 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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