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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는 다정함을 믿기로 했다

정서적 발달의 마지막 단계에서

by 비단구름

◉ 인상파처럼


나는 좋은 에피소드들을 글에 담아 두려고 했다. 좋은 사람들, 좋은 경험들을 남겨두고 싶기 때문이다.


산 위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황홀한 광경을 보고 사진을 찍어 간직하듯, 여행지의 아름다움을 보고 사진을 찍어 간직하듯, 길가에 핀 이름 없는 꽃에 반해 사진을 찍어 간직하듯, 나는 아름다운 순간을 글로 남겨둔다.


하늘과 구름과 꽃과 나무와 동물 같은 자연은 즉시 사진을 찍어 언제고 다시 볼 수 있지만 사람과 경험은 매번 사진으로 찍어둘 수 없으니 나는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눈과 귀로 담아 글로 남겨둔다. 정밀화처럼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으면 좋은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릿해지니 인상파처럼 찰나의 빛나는 순간을 묘사해 내가 본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애쓴다.


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 사람은 뭔데 착한 척이야. 기분 나쁘게.”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늘 좋은 척을 하다니, 실성했나 보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닭살 돋아. 가식적이야.”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생애 발달 주기처럼 정서적 발달 주기를 겪은 후의 최종 단계이다.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이십 대까지, 어릴 때 교육의 영향

현실적으로 좀 살아보자.-->성인이 된 후&삼십 대

삐딱하게 생각할 테다.-->삼십 대 후-사십 대 초

어찌 됐건 긍정으로 살겠어.-->사십 대 이후


대략 이런 정서적 발달 단계를 거쳐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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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을 준 사람


수영(가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겼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바지런한 챙김을 알아보고선 성가실법한 일들을 부탁하기도 했는데 수영은 귀찮아하지 않고 챙겨주곤 했다. 나도 수영의 지인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가끔 만나 점심을 먹곤 했는데 그럴 때면 수영이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왔다. 무려 집 앞까지. 내가 그녀의 집 앞으로 가겠다고 해도 어차피 차 가지고 가니 그냥 있으라고 배려해 주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서는 아무 데나 내려달라고 해도, 수영의 집에 내려줘도 괜찮다고 해도,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수영의 그런 세심한 배려는 별거 아닌 것 같이 보여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 기뻤다. 나는 나의 지인이자 수영의 지인이기도 한 경숙(가명)에게 수영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이야기했다.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 나서 경숙이 물었다.


“나도 그렇게 하라는 거니?”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나는 시야가 확 열리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보기에 수영(가명)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뜻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었다. 수영은 방학이나 긴 연휴가 시작되면 수영의 딸과 친한 친구 진주를 데리고 호캉스를 가기도 했다. 당일치기 호캉스를 하기도 하고, 일박 여행을 하기도 했다. 진주 엄마가 동네 엄마들을 만나선 수영이 연휴에 호텔을 잡고 진주를 데리고 간다고 자랑을 했다. 나는 진주 엄마가 배포 좋은 사람과 친구가 된 것을 자랑하는 줄 알았다.


“진주 좋겠네. 그나저나 수영이 대단하네. 예약이며 비용까지 다 하다니.” 누군가 말하자 진주 엄마가 삐죽거렸다.

“자기 딸 심심할까 봐 그러는 건데, 뭐.”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나는 내가 순진해도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어도 너무 어리석구나, 하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내가 시골 출신이라 그런 걸까? 이곳은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서울 옆 신도시. 나는 언제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도시인의 마음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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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함과 맞닥뜨리기


매 순간 몹시 의심하며 살아야 하는 줄 알던 시기가 있다. 타인의 선행조차도, 나라는 사람이 좋아 건네는 호의조차도 목적이 있다고 의심해야 한다고 불손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서울을 지나 눈 뜨고 코 베이는 시대가 된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누군가의 다정함과 호의에는 눈에 빤히 보이는 속셈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정함과 호의에 목적이 있다고 삐딱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다정함과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간혹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다가도 내가 시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면, 목적을 가지고 들이대도 뽑아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면 떨어져 나가곤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미리 상대를 ‘잠재적 소시오패스’라고 짐작하는 대신 나는 맞닥뜨리기로 했다. 코 베어가려고 하면 손모가지를 즉시 잡아버리기로 했다. 깔끔하고, 긍정적으로.


왜냐하면 목적 없는 호의를 건네는 사람들이 진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목적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고, 그저 사람이 좋아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서 다정한 사람들이 있다. 많이 만났다. 종종 만난다. 여전히 만난다. 어제도 만났다. 아마 오늘도 문밖을 나서면 만날 것이다.


◉ 수호신이 있다면,


수호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든, 조상 할매든, 조상 할배든, 나를 지키려는 내 의지든, 만약 수호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내 수호신은 내가 삐딱해지는 것만큼은 막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다정한 사람들을 걷어차 버리며 제 발로 지옥으로 걸어들어가는 것만큼은 막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의 호의와 다정함에 목적이 있다고 의심하며 날선 채로 살기보다는 일단은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배신당하면? 그럼, 안녕, 하는 거지. 그의 삶을 살도록 보내주는 거지.


◉ 현실을 지탱하는 평범한 다정함


허구의 세계에선 평범함은 관심을 끌지 못한다. 까딱, 요즘은 저렇게 살아야 하나 봐,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평범하고 묵묵하며 다정한 사람들이 현실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 나는 평범하고 순순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현실을 보고, 그들에게 공감하고 감사함을 느낀다.


나의 세계에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그들의 달달함을 충분히 표현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가끔 기분 나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오래 간직하지는 않는다. 나는 기분 나쁜 사람들을 점차 아무렇지 않다고 느끼게 되었다. 목적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고, 그저 사람이 좋아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서 다정한 사람들이 서로를 보살펴주기 때문이다.


기분 나쁜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불행하다는 사실을 계속 알아가고 있다. 비 오는 날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듯, 미세먼지로 뿌연 도시를 사진으로 찍듯, 언젠가 기분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였으면 좋겠다.


◉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


신의가 없어진 듯한 사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을 갈망한다는 생각이 든다. 제발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은 사람이 나타났으면, 함께 좋은 얘기를 나누고, 함께 웃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 나타나주기를 바란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만나 사람들의 눈빛을 볼 때마다 든다. 사람들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늘 고대한다. “요즘 그런 사람이 어딨어?” 하면서도 기다린다. 아마 이 기다림이 사람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꺼지지 않는 마지막 희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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