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동안 온라인 교육을 한다고 하니 화장을 하기로 했다. 화장이라고 해봤자 피부 톤을 살짝 밝혀주는 톤업 선크림을 바르고 눈썹을 칠하고 입술에 색을 입히는 정도지만 예뻐지고 있다. 피부가 화사해진 것을 보자 기분도 밝아진다. 노트북을 켜고 비디오 화면을 조정했다. 언제부턴가 사진을 찍으면 ‘내가 이렇다고?’ 하며 실망한다. 비디오를 꺼 놓고 싶었지만 호스트가 비디오를 켜 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켜두었다. 오후 두 시, 역광을 받아 화면엔 검은 실루엣만 비친다.
온라인 교육 내용은 무난했다. 많이 어렵지 않았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이왕 플로깅 활동을 하는 김에 교육 내용을 숙지해 제대로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싶었다. 강사가 제공하는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 두고두고 되새겨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사진 찍지 말아 주세요.”라는 강사의 요청에 메모를 하기로 결심했다. 다이어리를 펼치고 메모를 시작한다. 오랜만에 쓰는 손글씨는 강의 내용을 따라가기엔 속도가 턱없이 느리다. 글씨도 엉망이다. 요령 없이 중구난방으로 메모를 했다. 내가 쓴 거니까 나중에 알아보겠지, 뭐, 이러면서. 머릿속에 강의 내용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듣다 보니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고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
1. 모든 유리병은 재활용된다?---------N
녹색, 갈색, 투명 유리병은 재활용된다. 대부분의 화장품 용기는 재활용되지 않는다.
2. 유리 냄비 뚜껑은 재활용된다?------N
유리 냄비 뚜껑은 내열 유리로서 내열 유리는 잘 녹지 않아 재활용되지 않는다.
3. 플라스틱 칫솔은 재활용된다?-------N
칫솔은 여러 재질이 혼합되어 재활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거.
1. 투명 페트병을 압축해서 뚜껑을 닫아 자원순환가게에 가져가면 돈으로 바꾸어준다. 각 지자체에서는 자원순환가게를 운영하여 재활용품을 현금 또는 포인트로 보상해 준다.
2. 우유팩, 두유팩, 주스팩을 씻어서 펼쳐서 말린 후 동 행정복지센터에 가져가면 화장지로 바꾸어준다.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교육을 받다 보니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다 보면 이런 생각까지 미치게 된다. 누가 뭐라 해도, 상처받더라도, 손해 보더라도, 아프더라도 이왕이면 선하게 살아야지.
그런데 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손해 보는 것이 선인가. 나는 그저 현실 감각 없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인지도. 당해도 반격하지 않고 무대응 하는 것이 선인가. 그저 약하고 비겁한 거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플로깅 활동에 참여해서 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행위는 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늉만 하는 선, 마음이 편해지고자 하는 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선, 보여주기 위한 선, 자가당착에 빠진 선으로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세시대 면죄부를 사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쓰레기 몇 개를 주우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내가 행하는 선이 최선이다,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선과 무엇이 다른가. 내가 선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쉽게 악을 행한다.
자기 선에 도취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처한 상황에서 선을 행한다. 자신의 선이 우월하다는 어설픈 오만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책임감이 선이다. 한 마리당 950원을 쳐주는 참치를 어깨에 올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묵묵히 걸음을 떼는 아버지의 행위가 선이다.
큰일과 대의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멀리 뜬구름 잡는 선보다 가까운 보살핌이 선이다. 국민의 종이 되겠다는 언행불일치의 사람들보다 오늘 아침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고 전쟁터 같은 일터로 묵묵히 출근한 아버지와 남편과 아내가 훌륭하다.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표리부동한 사람들보다 우리 집 현관 앞까지 택배를 배달해 주는 젊은 부부와 우리 동네 작은 식자재마트에 사람 사는 것 같은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근면한 직원들과 내 머리를 예쁘게 만들어 기분까지 올려주는 미용실의 앳된 디자이너와 시장에서 이십 년째 치킨을 파는 치킨집 사장과 뜨거운 불가마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무쇠솥을 찍어내는 노부부를 마음을 다해 존경한다.
선을 행하면서 우쭐한다면 선이 아니다. 선을 행하여 추앙받고자 하는 것도 선이 아니다. 고작 이 정도의 선으로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도 선이 아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역사는 선에 대한 강박적이고 맹목적이며 순수한 믿음의 점들이 이어진 선이다. 선에 집착하여 모두를 악으로 규정하는 오만함을 범하지 않는 일에 마음을 쓴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의미는 그저 좋아서이다. 남지 않기를 바란다. 지나가기를 바란다. 무색무취의 향기를 전하다 다시 무색무취로 돌아오는 것으로 만족한다.
쓰레기를 줍는 동안 나는 나은 사람이 되고 있을까? 플로깅을 할 때면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찰나의 이 짧은 순간 나는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찌 된 일인지 쓰레기를 주우며 거리를 깨끗하게 정돈하는 동안 마음속에는 선한 생각이 담긴다. 연두부 같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하얀 마음이 차올라 지나치는 거리의 사람들마저 그런 눈으로 보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다 보면 조금은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어른으로 나아지겠지.
#플로깅 #줍깅 #쓰담달리기 #쓰레기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