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으실 거예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사회

by 비단구름


사회에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 지인들로도 당장 열 명 이상은 줄줄이 이름을 댈 수 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사회는 법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법 적용이 잘 되는 사회, 사회적 합의로 만든 법이 잘 지켜지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다.


공원 헬스장에 설곤약 봉지와 젤리 비닐과 담배꽁초 네 개가 떨어져 있다. 역시 운동과 아무 상관없는 모양이다.


놀이터에 버려진 하얀 플라스틱 용기를 보니 화가 솟구친다. 집에서 밥을 먹어도 먹고 난 뒷정리는 하는 법인데. 곱창전골을 먹었는지 빨간 기름때가 구불구불한 용기 전체에 범벅인 꼴을 보니 비위가 상한다. 놀이터에서의 취식을 전면 금지해야 하는 걸까? 질서를 어지럽히는 소수 때문에 다수의 준법시민이 피해를 입고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정책일까?


사람을 공격하여 물거나 상해를 입히는 강아지에 대한 합리적인 처벌 대신 전국의 강아지가 목줄을 착용하게 되었다. 보이스 피싱 범죄로 인한 피해가 심각해지자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 까다로워졌다. 한편으론 비대면 계좌개설 및 대출이 보편화되고 있다. 오래 쓰지 않는 잔액이 적은 계좌는 심지어 계좌 주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지되어 버린다.


법질서를 무시하고 어지럽힌 사람들에게 법 적용의 예외가 많고, 참작 사유가 많고, 감형 이유가 많다 보니 다수의 선량한 사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잠재적 피해자, 내지는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생전 남에게 피해 끼치는 법 없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 선택인 것처럼 권한다. ‘그냥 다 목줄하고 다니라고 해.’ ‘안 쓰는 계좌? 다 정지시켜 버려.’ ‘계좌? 아무나 개설해주지 마.’ ‘그냥 다 규제해 버려.’ 깊은 고민 없이 편하게 일한다.


다수를 압박하고 통제하는 것은 무능한 공권력이 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이다. 서로를 혐오하고 적으로 돌려 권력을 유지하는 교활한 꼼수이기도 하다. 덕분에 규제와 규칙은 애초에 관심 없이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만 더욱 편해지고 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자유마저 속박하고, 규칙을 어기지 않은 사람들 대다수를 미리 억제하는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




오늘은 날씨가 선선해서 활동하기 좋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걸을 때마다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동네에는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바뀌는 베이커리 자리가 있었다. 베이커리는 좀 나은지 몇 년은 버텼으나 같은 자리에 새 베이커리로 교체되던 자리였다. 장사가 아주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몇 년마다 임자가 바뀌던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서고 안정을 찾은 듯 보인다. 자기 자리가 있는 모양이고 자리에 맞는 역할이 있는 모양이다. 애초에 대충 가게 차려놓고 운영하다 몇 년 뒤에 적당히 권리금 받아 나가려던 계획이 포함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편의점 앞마당을 이른 아침 시간 머리가 하얀 은백색의 할머니가 쓸고 있다.


개업 후 육 개월도 못 버티고 폐업한 마트 앞에 버려진 담배꽁초 한 개비, 비닐 두 개, 플라스틱 뚜껑 한 개를 주웠다. 음악이 꺼지고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 폐가 꼴을 한 마트 자리는 매번 일 년을 못 버티고 폐업하는 자리다. 올 초 그곳에 또 마트가 개업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걱정됐었다. 저 마트 들어오기 직전에 있었던 마트도 일 년을 못 버텼는데. 그전에 운영했던 마트도 고작 삼 년 정도를 버텼을 뿐인데. 저 자리에서 마트로 살아남기란 장사의 신이 와도 돌파구를 찾기 힘든 일일 것인데.


마트 사장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몰랐을 수도 있지만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알면서도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도전했을 수도 있다. 불구덩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덥석 잡아버렸을 수도 있다. 때로는 선택지가 없어 망해 나갈 걸 알면서도 선택하기도 한다. ‘신이여, 제발.’ 간절히 신을 부르며. 어느 책의 문구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떨어져 봐야 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날개가 있기는 한 걸까. 날개가 있었다는 기억조차 희미한데.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집어 들자 막대기에 모여 있던 수십 마리의 개미가 허겁지겁 흩어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 의하면 개미의 30% 정도는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고 열심히 집을 짓는 일꾼개미이고, 대략 30%의 개미는 아무것도 안 하고 왔다 갔다만 하는 개미이고, 나머지 30% 정도는 애써 날라둔 음식을 반대로 가져간다던가, 기껏 지은 집을 부순다던가 하는 등 심지어 방해가 된다고 한다. 봉사자들 중엔 감탄이 나오는 분들이 있다. 벌써 30회가 넘게 플로깅을 한 봉사자들도 있고, 한 번에 몇 백 개의 쓰레기를 줍는 봉사자들도 있다. 그들은 확실히 사회에 꼭 필요한 30%의 개미들이다. 봉사자들이 올려주는 쓰레기 사진, 데이터를 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나는 그냥 왔다 갔다만 하는 개미인 것 같다.


거리 곳곳에 나뒹굴고 있는 쓰레기를 보면 아, 진짜, 인간들, 왜 그러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화내고 불평하는 시간에 쓰레기를 줍는 편이 쉽다. 머리를 쓰지 않고 단순히 줍기만 하면 되니 편하다. 손과 발과 몸을 움직이는 단순노동은 복잡한 머리를 단순하게 해 주고 심란한 마음을 잊게 해 준다.


골목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회색의 짧은 단발을 하고 밤색 블라우스를 입은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빤히 보시더니 가까이 다가오신다.


“건강 받으실 거예요.”


“네?”


‘건강 받으실 거예요,’라는 말이 생소해서 네? 하고 반사적으로 되묻자 할머니께서 웃으시면서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시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복 많이 주실 거예요.”


얼마나 고운 할머니인가. 타인을 축복해 주는 고운 마음씨라니.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정말 고운 심성을 가진 할머니시다. 누군가를, 그것도 모르는 사람을 축복하기란 어지간히 고운 심성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이다. 대게 사람은 복을 빌 기회가 있으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에게 복을 달라고 한다.


나는 줄곧 허물의 길에 대해 생각하며 걷고 있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가슴팍에 대고 있는 노인의 미소와 축복은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 지난날을 속죄하고 앞으로 복을 지으며 걸으라고. 허물의 길에서 벗어나 속죄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복 받으실 거예요.’라고 나도 있는 힘을 다해 진심을 담아 응원할 것이다.



#플로깅 #줍깅 #쓰담 달리기 #쓰레기 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