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는 행위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아. 꼭 철학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과. 사과를 매일 꾸준히 먹어야 할 것 같아.”
“아무래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인류 문명의 파멸을 보고야 말 것 같다!”
심상치 않은 기후 변화, 보편적 도덕관념의 상실, 전통적으로 추구해 왔던 인간성 탈피와 거리, 골목, 주거지, 관광지에 늘어가는 쓰레기들은 묘하게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간 영화에서나 보던 험한 꼴, 못 볼꼴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패러노이드일까. 차라리 혼자만의 근심이길 바라지만 이상기후의 시그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서 불안이 가중된다. 다행히 땅의 쓰레기를 주우며 편집증적인 망상이 조금 수그러든다. 사회 곳곳에서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의로운 사람들에게서 희망도 보았다. 이왕이면 이로운 생각을 하자, 고 쓰레기를 주우며 부록처럼 다짐한다.
플로깅을 하다 보니 두 가지 문제가 선명해진다. 쓰레기 발생 문제 vs 쓰레기 무단 투기 문제
➀ 쓰레기 발생 문제 ----->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쓰레기 발생을 줄이려면 기업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감수해야 하느냐 하면, 산업 혁명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야 한다(거의 공장을 운영하지 말라는 지경이다). 기업의 이익을 줄이지 않는 방법은 실현가능성이 낮다. 생산=증가하지 않는 상황은 정체 또는 감소이다. 소비자는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적어도 조선시대 정도로는 돌아가야 할 것이다. 몹시 극단적인 생각이다.
물건을 구입하여 최대한 오래 쓰고 아껴 쓰고 나눠 쓰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기업이 망하면 경제가 망하고 국가가 망하고 모든 것이 망하는 것인가. 우리의 삶도 망가지는 건가.
기업의 이익은 둘째 치고,
오늘만 해도 커피전문점에 가서 바닐라라테를 주문했다. 키오스크에서 ‘매장’과 ‘포장’ 중 ‘포장’을 선택했다. ‘텀블러’ 버튼이 있었지만 텀블러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투명 플라스틱 컵에 커다란 얼음과 함께 시원한 바닐라라테가 나왔다. 빨간 플라스틱 빨대를 꽂아 매장을 나왔다.
간식으로 시장에서 구입한 찹쌀떡을 먹었다. 찹쌀떡은 하얀 스티로폼 접시에 담겨 있고 비닐 랩이 씌워져 있다.
저녁엔 마트에서 구입한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다. 돼지고기도 하얀 스티로폼 접시에 비닐랩에 싸여 있다. 식용유가 다 떨어졌다. 참기름도 똑 떨어졌다. 빨래를 할 때 사용하는 액체 세제도 떨어져 새로 구입해야 한다. 연유도 떨어졌고 마요네즈도 없다. 모두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다. 과연 일상의 불편함을 조선 시대 수준으로 감내할 수 있을까.
매일 쓰레기가 넘쳐나는 현상을 이대로 두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지. 고작 거리의 쓰레기를 주워 어딘가에 쌓아 두거나 재사용할 수 있는 쓰레기를 분류하는 소극적 행동만이 가능한 건가.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고민이 깊어간다.
➁ 쓰레기 무단 투기 문제 ----->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 걸까.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버리는 사람이 치워야 하는데, 어지른 사람이 정리해야 하는 건데. 애초에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 물건은 각자의 공간으로 가져가 치워야 하는 것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이벤트는 저탄소 마라톤이다. 단순히 쓰레기를 한데 모아서 땅에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은 깨끗하게 씻어서 분리 배출하는 것을 지향한다. 그런데 어떻게?
최근 서울 동작구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에서 네프론, 오늘의 분리수거, 이노버스 등의 스타트업이 개발한 순환자원회수로봇을 운영 중이다. 플라스틱, 캔, 종이팩, 일회용 컵 등을 넣으면 포인트가 적립된다. 일정 포인트를 적립하면 현금으로 환전 가능하거나 앱에 설치된 쇼핑몰에서 우유, 커피, 피자, 할인권 등을 구매 가능하거나 또는 종량제 봉투나 음식물 쓰레기봉투 등으로 교환가능하다. 담배꽁초를 주워오면 그램 당 가격을 매겨 지급해 주는 지자체도 있다.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모색해야 한다. 매번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시민들이 뒤치다꺼리를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리의 쓰레기 중에는 보기만 해도 너무 지저분하고 손으로 잡기에도 끔찍하게 더러워서 재활용 불가한 쓰레기가 많다. ‘이걸 수세미와 세재를 사용해서 씻어야 하는 건가? 알 게 뭐야, 그냥 버릴까. 이걸 다 땅에 묻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쓰레기 집하장에서 직원들이 재활용 쓰레기 선별작업을 한다. 하지만 오물이 심하게 묻은 쓰레기는 그대로 매립 소각된다. 내적 갈등 후에 약간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런 바람을 갖는다. ‘깨끗하게라도 버려주세요.’
플로깅은 더 나은 환경을 꿈꾸며 환경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활동이다. 거리의 쓰레기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위기감을 쓰레기를 줍다 보면 맞닥뜨린다. 단순히 쓰레기를 버리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우리 사회가 거리에서부터 붕괴되는 조짐이다. 우리 사회는 오염된 환경이 사람을 오염시키고 오염된 사람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굴레에 막 들어섰다. 지금 당장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거리의 쓰레기들이 경고한다.
까마귀는 기억력이 좋다. 일종의 퍼즐 놀이가 가능하다.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며 나쁜 사람에게 복수도 할 수 있다. 까마귀는 일족이 죽으면 장례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고양이는 은혜를 입으면 쥐를 잡아다 선물로 준다. 고양잇과 동물들은 기척 없이 목표물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호랑이는 결초보은 하기 위해 사슴을 물어다 준다고 호랑이의 땅에 살며 호랑이를 섬기는 부족이 말했다.
말은 재난이나 재앙을 일찍 감지할 수 있다. 자신을 학대한 장수를 적군에게 데려가기도 한다.
먹이가 있는 곳이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 같아 보이는 하이에나는 생존 능력의 바탕이 되는 체계적인 조직 운영을 대대로 전수하기 위해 학교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한다.
나무 가지 위에 앉아 꼬리를 흔들고 있는 청설모는 나무 기둥을 붙들고 서 있는 강아지가 나무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물들의 언어와 소통 체계를 이해하는 대신 인간은 인간만이 가장 우월하다고 자만한다. 동물들도 인간 못지않게 똑똑하며 인간이 가지고 있지 못한 퇴화된 감각과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똑똑하지만 오만한 면이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이중적인 면도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지구를 예정된 파멸로 이끌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쭐대면서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듯, 오늘 할 일을 한다. 조금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기를 기도한다. 매일 꾸준히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환경은 여러 면에서 달라지고, 좋아지고, 개선될 여지가 있다.
자원봉사로서 쓰레기를 줍는 것뿐인데, 아무래도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누가 버리는지, 왜 버리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줍기만 하면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