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번 사랑한다고 말하기로 했다. 나에게도

“사랑해!”라는 말을 들어본 지가 꽤 되었다

by 비단구름

누군가로부터 “사랑해!”라는 말을 들어본 지가 꽤 되었다. 사랑해,라고 자주 외치기는 한다. 나에겐 “사랑해.”라고 말하면 “알았어.”라고 당당하게 사랑을 받는 자식이 있다. 기분이 좋은 날이면 “사랑해.”라고 맞받아쳐주는 자식도 있다. 무뚝뚝한 이유는 아마도 피곤해서일 거다. 자식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자식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내 탓이거나 녀석 마음이다. 사랑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케이에게 “사랑해,”라고 말한다. 자동 응답기가 장풍을 날리는 것처럼 장난스러운 “사랑해~!!”가 즉각 반사되어 돌아온다. 개의치 않는다. 장난이라도 자꾸 말하다 보면 사랑하겠지, 뭐.


파란색 피가 흐르는지도 모르는 아빠한테 “사랑해,”라고 말하면 당장 전화를 끊어 버리실 것이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아빠는 내가 엄마가 되자 “이제 자식 노릇할 생각 말고 부모 노릇할 생각 하라.”라고 일찌감치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는 배려를 주셨다. 그런 아빠께 혹시 몰라 문자로는 “아빠, 사랑해!”라고 보내봤다. 역시 대꾸가 없다. 개의치 않는다. 오백 년 된 몸통 굵은 느티나무처럼 오늘도 이 세상에 존재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천사 같은 엄마만이 ‘엄마도 사랑해,’라고 보내주었다. 이모티콘을 쓸 줄 몰라 오직 글자뿐이지만 엄마의 사랑해, 에선 다정함이 느껴진다.


이 사람들 말고 나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을까? 가족 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 또래 여자 사람들은 각자 그녀들의 가족을 사랑하느라 바쁘다. 나는 이제 남자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 큰일 난다. 우리는 인류애와 애로스적 사랑을 종종 혼용해서 자칫 잘못했다간 있지도 않을 말들이 돌아다닐 것이다. 이웃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면 슬금슬금 나를 피할 것 같다. 대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한다.


그러니까 나의 가족 외에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나라도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실컷 사랑해 주어야지. 나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해주어야지. 응원해 주고 잘 대해 주어야지.





지난밤에는 오랜만에 엄마가 집에 오시는 꿈을 꾸었다. 차멀미를 하시는 엄마는 잘 다니지 않으신다. 옛날부터 차를 타면 머리가 아프다며 힘들어하셨다. 차멀미가 아니더라도 엄마는 몸이 약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기운이 떨어져 누워 있어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관리하셨다. 그리곤 “아이고, 힘들다,” 하시면서 누워 쉬시다 금세 일어나서 저녁 찬 거리를 준비하시곤 했다.


“엄마, 우리 집에 놀러 와.”하고 말하면 “엄마가 힘들어서 어떻게 가니.”하고 한사코 다니지 않으셨다. 가족들에게 온 신경이 뻗쳐 있던 엄마는 바지런히 다니며 자식들 얼굴을 보는 대신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을 꿈으로 꾸셨다.


“꿈에 네가 보이더라. 오늘은 어디 나가지 말고.”

“일 나가야 되는데 어떻게 안 나가.”


“그럼 길 건널 때 차 조심하고.”

“알았어, 알았어. 잔소리는.”


“엄마 없어봐라. 누가 잔소리라도 해주겠니.”

“알았어, 알았어. 엄마나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엄마 걱정은 하지 마. 너나 잘 지내.”


꿈속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집에 방문한 엄마는 가장 먼저 화려한 꽃과 식물 문양이 새겨진 수저가 각각 두 개씩 있는 수저 세트를 주셨다. 엄마의 선물은 수저뿐이 아니었다. 초를 여러 개 꽂을 수 있는 커다란 촛대도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옷장 서랍에 돈다발이 가득 든 봉투를 넣어두셨다. “밥 먹고 가.” “아빠 기다려. 너희 아빠가 어디서 자는 사람이니.” 금방 가시려는 모양인지 아빠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럼 차라도 한 잔 하고 가.” “아빠가 그러겠니. 어딜 가도 후딱 가는 사람인데.”


이른 아침 벌써 동이 트고 있었다. 잠에서 깬 나는 창밖으로 밝아오는 아침을 보며 엄마를 생각했다. 멀리서도 자식 생각뿐인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먹먹했다. 우리 사이에 예정된 것은 막을 수 없는 이별뿐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네가 양보해라, 네가 이해해라.”라고 했다. ‘왜 자꾸 나보고 양보하라고 하지?’ 야속했다. 이제는 이해한다. 요즘은 특별히 더 이해한다. 어느 날 문득 선물이 내 앞에 툭 떨어지듯 작은 깨우침을 얻었다. 내가 가진 복의 크기가 크기 때문이었다. 노력이라는 것을 등한시했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기울인 노력에 비해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죽을 둥 살 둥 다투지 않아도 감사하게도 언제나 복을 받았다. 나는 받은 사랑의 크기도 컸다. 어린 시절부터 아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 동네 사람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고 감사하게도 지금도 사랑받고 있으며 꿈속에서조차 받기만 하는 사랑. 엄마는 알고 있었다. 나에게 사랑을 준 사람들은 내가 받은 사랑을 깨닫는 철든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받은 사랑을 나눠주는 내리사랑을 하는 거야.”

‘이제는 받은 사랑을 세상에 돌려주겠어.’ 거리의 쓰레기를 주우며 엄마를 생각하며 다짐한다.

그나저나 기쁜 일이 생겼다.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것이 전혀 쑥스럽거나 민망하지 않다. 이제는 밭에서 잡초를 솎아내듯 무심하고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주워 담는다. 뭐든지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 지는 거구나, 새삼 느낀다.


플로깅을 하면서 가장 고역스러운 것은 비위다. 나는 비위가 약하다. 토사물, 길거리에 버려있는 개똥, 한여름 음식 쓰레기, 침 묻어있을 담배꽁초, 검은 참깨처럼 우르르 쏟아지는 개미떼.


손이 무거운 것은 아니나 더러운 것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무겁다. 비위가 상해도 이 행위를 하는 의미가 있으면 해야 한다. 힘들어도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참고 견딘다. 때로는 희생을 감수하고 기꺼이 양보한다.

쓰레기는 거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는 쓰레기 같은 감정들도 있다.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며, 내 마음속의 쓰레기 같은 감정들을 정리하며 조금씩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간다.


남 탓을 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온전히 나로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나 타인의 삶의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위아래 구분 없이 누구라도 존중하겠다는 마음가짐을 확인한다. 내면의 행복으로 충만한 나의 삶을 온전히 즐긴다. 달관적 자세로 삶을 관망하며 내가 서 있는 이곳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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