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삶은 처음으로 가득하고 매일 새로운 것이 기다린다

by 비단구름
플로깅(에코플로깅)은 스웨덴어 플로카 업(plocka upp: 이삭을 줍다)과 영어단어인 조깅 (jogging:달리기)의 합성어이다. 건강과 환경을 함께 지키기 위해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보호운동으로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돼 북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방법과 준비물은 간단하다. 동네, 공원, 들판 등 원하는 장소와 시간을 선택한다. 조깅 시작 전 쓰레기를 담을 봉투와 장갑을 챙기고, 목적지까지 달리면서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주워 분리수거를 한다.

쓰레기를 줍기 위하여 무릎을 구부렸다 펴거나,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이 하체 근력운동인 스쿼트나 런지의 자세와 비슷하다. 수거한 쓰레기를 들고뛰기 때문에 일반 조깅보다 칼로리 소비가 많다.

걷기나 산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행동도 일반적으로 플로깅이라 불린다. 등산을 하면서 산에 있는 쓰레기를 줍거나, 바닷가 산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행동 모두 플로깅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한 용어로 ‘줍깅’, ‘쓰담 달리기’를 사용한다. 플로깅 하는 사람들을 플로거 (plogger)라고 부른다.
[출처: 네이버시사상식, 두산백과, 나무위키]


두 달 동안의 ‘저탄소 마라톤’ 활동이 끝나갈 즈음 센터에서 주관한 오프라인 플로깅 활동에 참여했다. 오프라인 플로깅을 하던 날 주임의 설명으로 저탄소 마라톤 1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삶은 처음의 운명을 갖고 났다.


나는 엄마 아빠의 첫 번째 자식이며 집안의 첫 번째 딸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후 부모님이 지으신 첫 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히메나 선생님을 닮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교대 졸업 후 처음 부임한 교사였다. 부활한 교복 1세대로 중고등학교 내내 교복을 입었다. 88년 완공된 새 아파트에 입주했으며, 오픈 호텔의 첫 공채 사원으로 입사했다. 형제 중 처음으로 부모가 되었다. 아빠가 사주신 컴퓨터라고 하는 기계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위해 알파벳을 떼자마자 처음으로 MS DOS 명령어를 외웠다. 새 버전이 나올 때마다 바꿔 주셨던 286 컴퓨터, 386 컴퓨터, 펜티엄, 윈도우를 사용하여 처음으로 ‘한컴 타자’, ‘마법의 성’, ‘나 홀로 집에’와 같은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보았다. 아빠가 선물해 주신 양면 녹음 가능한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용하여 처음으로 라디오 노래를 녹음해 보았다. 고등학교 생일 선물로 사주신 회색 삐삐를 사용하여 처음으로 암호 같은 숫자들을 잔뜩 외우고 다녔다. 대학교 때 개인 전화가 유행하기 시작해 PCS폰에 이어 스마트폰까지 처음으로 내 폰을 가져보았다.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긁으며 부자가 된 기분을 잠시 가져보았다. 매번 새로운 날이었고 매번 처음 같은 오늘이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매일 변하고 발전했다.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 새로 생기는 기업에 취직하는 것과 같이 처음 경험하는 것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경험에는 교훈이 있다.”라고 재니퍼 애니스톤이 말했다.(내가 한참 외웠던 영어 교재의 예문이다.) 애초에 삶이란 각자 고유한 인생길을 걸으며 처음 경험하는 것투성이다. 나의 처음은 많은 부분에서 서툴렀다. 처음으로 맡은 반장은 어리숙했고, 회장은 뭐가 뭔지 파악할 즈음 끝났다. 처음으로 맡은 자식 역할도 잘 해내지 못해 만년 불효자식이다. 전통적인 여성상과 변화하는 시대의 여성상 사이에서 기준을 잡지 못해 처음 하는 아내 역할의 개념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심지어 부모 노릇은 가장 어려운데 어째서 나같이 미성숙한 사람이 엄마가 되었을까, 예방할 수는 없었을까, 고찰하며 갈팡질팡하는 사이 자식들이 다 커버렸다. 사는 동안 처음으로 누군가를 깊이 미워해 봤다. 죽을 만큼 괴로운 것이 이런 거구나,를 처음으로 느껴봤다. 아픔을 잊는 것이 진정으로 삶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아픔과 괴로움은 지나가게 되어 있다는 사실, 그냥 살면 살아지는 별 거 없는 오늘도 나를 위해 웃어야 한다고 처음으로 어른스럽게 생각했다.

처음으로 살아본 내 인생 죽을 때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바리 허둥지둥 대다 죽을 때 돼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모르겠다.”


나의 삶은 여전히 처음으로 가득하다. 늘 새로운 것이 기다린다. 요 근래 들어 카이막이라는 음식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았다. 밥을 안칠 때 생선을 통으로 넣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가족을 위해 어깨에 많은 짐을 올려놓아 고왔던 얼굴 간데없이 중년이 된 케이의 고생을 처음으로 들여다보았다. 처음으로 길 위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을 느꼈지만 처음으로 혼자 있는 것이 외롭다고 느끼지 않게 되었으며 처음으로 고독이 허락하는 깊은 선물을 열어보았다.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삶과 소통하는 기분이다. 처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회가 조금 더 좋아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기억해내야 한다. 우리는 어려울 땐 힘을 내고 슬플 때도 웃을 줄 알았다. 우리는 가뭄과 홍수와 전란으로 곤경에 처한 이웃을 가족의 마음으로 도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웃에게 이모, 삼촌, 어머님, 아버님, 언니, 오빠, 형, 동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던 것은 언제든 돕겠다는 무언의 사인이었을 것이다.


부조리에는 풍자로, 고루하고 혹독한 삶은 해학으로 상대하며 강인하게 버티어 낸 것은 우리 예술의 정체성이고 우리의 얼이다. 우리는 원래 콩 한쪽도 나눠 먹고, 없는 살림일지언정 집에 오는 손님에게 국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해 보내는 넉넉한 품의 사람들이었다. 이제 그럴싸해 보이는 깍쟁이들 대신 원래의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줍는 백 개의 쓰레기보다 더 많은 쓰레기가 쏟아져 나와 부질없는 일 같아 보여도, 상관없이 쓰레기를 하나씩 치워나갈 다짐을 한다.


처음을 맞닥뜨리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침을 얻었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 뒤늦게 알았다. 예전이라면 도망갔을지 모를 중간 과정을 이제는 꾹꾹 밟고 지나가려고 한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경험을 체화할 작정이다. 삶의 행복과 즐거움과 고통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모두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진행형이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려고 한다. 부딪히고 깨지고 터지면서 앞으로 나가는 즐거움과 아무려면 어때, 자체로의 오늘이 좋아졌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나버렸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집으로 걸음을 재촉하는데 쓰레기가 계속 눈에 띈다. 하루 종일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한 시간 동안 거리의 모든 쓰레기를 한 번에 다 주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은 이만하고 오늘 할 일을 해야지. 내일 일은 내일 해야지. 내일의 태양이 뜨면 내일의 쓰레기는 내일 또 주워야지. 처음처럼.

[참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플로깅 #줍깅 #쓰담달리기 #쓰레기줍기